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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ㅁㅎ Oct 06. 2020

방콕에 가지만, 성매매는 하지 않겠습니다.

스물한 살의 나와 스물아홉의 나에게 전하는 누나의 염려

방콕? 조심해라 명환아 나는 사실 동남아 다녀온 남자는 잘 못 믿겠다.


8년 전, 20대 중후반이었던 그 누나의 염려 섞인 반응에 내색은 안 했지만 스물한 살의 나는 꽤나 불쾌했다.


동남아 여행 간다고 다 저러는 건 아닌데 일탈 저지르는 몇몇 때문에 왜 저렇게 왜곡해서 보나


 스물아홉의 나는 올해 초 한 달간 해외에서 살아보려는 계획을 세웠고, 결정된 곳은 방콕이었다. 한 달 살기의 도시로 방콕을 뽑은 이유는 치안, 한국과의 거리, 날씨, 비용 등 현실적인 거였지만 사실 방콕으로 결정이 났을 때, 8년 전 누나의 저 한마디가 나의 클릭을 좀 망설이게 했다. 스물한 살의 나와 스물아홉의 내가 이 말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꽤나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래는 어쩌다 나의 태도가 바뀌었을까에 대한 이야기다.


 평범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술 담배를 하는 친구들도 반에는 더러 있었고, 약한 애들을 괴롭히며 관심을 구걸하는 그런 학생들도 있었다. 문제없는 조직이 어디 있겠나. 저런 행동과 문화가 지배적이지는 않았기에 일탈 정도로 받아들였고, 사실 성매매도 나에겐 '뭐 그런 애들도 있긴 하겠지' 정도의 일탈로 여겨졌다. 그랬기에 스물한 살의 나는 불쾌했나 보다.


 나는 소방서에서 보조 역할을 하는 의무소방으로 대체복무를 다녀왔는데, 이 결정을 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군대에 가면 휴가 때 성매매 업소를 가는 게 의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는 이야기를 꽤나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실제로 잘한 결정이었다. 같이 군생활을 한 동료들과 야한 농담 정도야 했지만, 선을 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불행히도 의외의 지점에서 선을 아주 넘는 장면을 마주했다. 한 반장님이 휴가로 필리핀을 다녀온 이야기를 해줬다. 어딜 갔는지 등은 별로 이야기 안 했고, 한 영상을 보여줬다. 10대 후반?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현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영상이었다. 친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을 하셔서 보여준 듯하다. 재밌다는 듯 웃는 얼굴에 뭐라고 하겠나. 그리고 나는 군인 신분이기에 "오?" 정도의 리액션과 "근데 이거를 어떻게 찍었어요...?" (뭐 특별한 대답이랄 건 없었지만 이건 정말 궁금하긴 했다) 질문을 하며 넘겼다. 지금은 몰래카메라 등에 대한 이슈가 많아서 이런 걸 보여주는 건 꽤나 용기 있는 행동일 텐데, 6년 전은 이런 영상이 충분히 놀잇감으로 소비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동남아로 여행을 가면 관광의 일부처럼 성매매가 있다는 이야기도 한번 더 듣게 됐다. 해병대를 나온 한 반장님은 휴가를 다녀온 나에게 암호를 보내듯 찡긋하시며 "오 명환이 물 잘 빼고 왔어?" 친근하게 물어봐 나를 난감하게 했던 건 덤이다.


 막연하게 국제 NGO에서 일하기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기에 또래 친구보다는 이쪽 뉴스를 조금 더 자세히 봤는데 나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 뉴스를 접했다.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구호단체의 직원이 구호현장에서 성폭행, 성매매 등을 저지른 일. 이런 일이 이전부터 문제가 되어왔고,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이 뒤를 이었다. 열심히 노력하고 기회가 주어져 커리어적으로 정말 잘 풀리면 아프리카나 아시아 현지에 가서 자부심을 갖고 구호활동을 할 수 있겠구나 상상하며 미소 짓던 나는 충분히 좌절할만한 뉴스였다.


 실제 NGO에서 일하는 지인들에게는, 회식을 하는데 2차로 가면서 여자 직원들은 슬쩍 보내는 분위기길래 어떤 건가 했더니 도우미 있는 회식장소로 가는 거였다는 이야기도 들으며 내가 너무 순수한 건가 싶은 착각도 들었다.


 그런 친구 있지 않은가? '얘는 정말 착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참 멋지다, 본받을 점이 많다' 하는 친구. 그런데 그 친구도 성매매 경험이 있었다. 궁금해서 가봤다며 스치듯 말했지만 내 머릿속엔 스치듯 지나가지 않았다. 성매매를 하는 남성들이 지배적이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학창 시절 일탈을 저지르는 학생처럼 소수라고 보기에도 어렵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순간이 이때인 걸로 기억한다.


 이외에도 친구들이 같이 성매매업소를 가며 같이 가기를 제안했던 일, 이를 거부하기 위해 윤리나 도덕의 이유는 (너무 애처럼 보일까 봐) 대지 못하고 그런 곳 다니면 실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가질 때 영향을 줄 거 같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핑계를 대야 했던 일, 한 동남아 국가는 대한민국 관광객의 성매매가 유독 심해서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일 등 지난 시간 성매매와 관련한 다양한 자료가 쌓였다.


 8년 전 그 누나는 국제구호단체를 통해 동남아에서 장기간 체류했는데, 이 누나도 그동안 적지 않은 자료가 쌓였던 것이 아닐까. 방콕에서 한 달 살기를 계획하는, 이제는 그 누나보다 나이가 많아진 나에게 저 누나가 다시 저 이야기를 한다면?


지금은 불쾌감으로 고개를 젓기보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라고 할 것 같다는 다소 씁쓸한 결론이다.



#항공기 티켓팅을 한 직후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퍼져 나의 해외 한 달 살기는 취소됐고, 이 글의 영감만이 남아 이제서야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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