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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책임 May 03. 2022

서지 않는 성기(性器)를 대신해 우뚝 선 뭉크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 에드바르 뭉크, 1940, 뭉크미술관 소장

언뜻 보아도 우중충하고 불쾌한 느낌을 주는 지저분한 분위기의 그림이다.


화면 중앙에 노년의 뭉크가 우두커니 서 있다. 머리는 벗어졌고 볼은 움푹 페여있으며, 러리는 굽어있고 다리는 오다리다. 화면 우측에는 빨강과 파랑 줄무늬가 있는 침대가 있다. 화면 좌측에는 뭉크의 키보다도 큰 진 갈색의 시계가 우뚝 서있다. 벽면에는 뭉크가 여태까지 그렸던 여러 점의 그림들이 걸려있고, 벽의 윗면은 노란색으로, 벽의 아랫면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바닥은 광택이 있는 재질인 듯, 방 안의 물체들을 반사하고 있다.


시계와 뭉크, 방문, 침대 모두 세로로 곧게 서있다. 마치 도미노를 연상시키는 구도로, 하나를 무너뜨리면 연달아 쓰러질 듯 보인다. 은근한 불안감을 야기하는 구도랄까.


뭉크의 진한 남색 자켓, 초록 바지, 붉은 얼굴은 지저분하고 낮은 채도의 색이다. 반면, 침대의 붉은색과 벽면의 노란색은 맑고 높은 채도의 색이다. 통일되지 않은 분위기의 색상들이 불협화음을 이룬다.


뭉크의 그림은 흔히 표현주의로 분류되지만, 자화상만큼은 사실주의적이다.


그 예로, 다 늙어빠진 뭉크의 얼굴을 보라. 움푹 들어간 뭉크의 얼굴은 남성의 정력精力이랄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언가에 기운이 쏙 빨린 것처럼 보인달까.


뭉크는 이상한 작업 습관이 있었는데, 술에 만취한 상태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린 뒤, 열정적인 화후畵섹스를 즐기는 것이다.


뭉크는 평생 2만~3만 개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작게 잡아 2만 점 그렸다고 치자. 그럼 매번 섹스를 즐기진 않았을 테고, 반절만 섹스를 즐겼다고 가정하면, 예상컨대 뭉크는 평생 1만 번의 열정적인 화후섹스를 즐겼던 것이다. 평균적으로 인간은 평생 5천 번 정도의 섹스를 하는데, 뭉크는 그 두 배의 섹스를 했던 것이다.


뭉크는 다 늙어서 정기가 다 빨린 자신의 몰골을 보고 허심탄회하게 자화상을 그렸을 것이다. 노년에 얻은 부와 명예로 얻은 집과 가구는 맑은 색으로 경쾌하게 그려졌지만, 뭉크 본인은 우중충한 색으로 떡칠된 이유는 아마도 그의 꼬락서니에서 비롯된 것.


세로로 우뚝 서있는 시계, 방문, 침대 프레임은 뭉크의 '발기에 대한 염원'이 표현된 것 같다. 노년에 마음처럼 서지 않는 자지를 야속하게 생각하며, 뭉크는 그림 속 사물이라도 세웠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뭉크는 이 자화상으로 사실주의와 표현주의를 모두 이뤘다.


늙어빠진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림에 옮겼다. 굽은 허리도, 까진 머리도, 마른 신체도, 움푹 페인 두 볼도 말이다. 이는 자신을 미화하고픈 인간 본성에 대한 이성의 승리이며, 사실주의의 정수라고 할 만하다.


있는 그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면서도 부수적인 조형요소로 내면을 표현하기도 했다. 수직적 구도를 통해 발기의 염원을 표현했고, 대비되는 색채를 통해 부를 얻고 나니 늙어빠져있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주의와 표현주의를 동시에 이룬 대작이지만, 그래도 집에 걸어놓긴 싫은, 그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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