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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Jan 11. 2019

스페인어를 배우다

영어로 배우는 제2외국어

2019년 새해가 되면서 목표했던 것 중에 하나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형사 사건을 많이 다루다 보니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중남미 이민자를 대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부분 통역을 대동하더라도 급한 경우에는 그마저도 어렵고 진정한 의사전달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실용적인 이유 외에도 같은 이민자 출신으로 타국에서 고생하는 라틴계 의뢰인들에 대해 동병상련을 많이 느낀 감정적인 이유도 있다. 다들 가난, 갱단, 마약, 폭력, 억압 등을 피해서 기회의 땅으로 왔는데, 낯선 타국의 법과 제도에 익숙하지 못해서 의도치 않게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물론 요새 넷플릭스에서 재밌게 보고 있는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도 스페인어에 대한 관심에 일조) 마침 알링턴 카운티 커뮤니티 센터에서 스페인어 초급자 과정을 시작한다고 해서 과감히 200불이 넘는 수업료를 결제했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 30분까지 2시간 반 과정이었다. 언어를 배우기에는 조금 부족한 시간이지만, 바쁜 스케줄을 고려하면 그 정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언어는 연습이 더 중요하니까.


2015년에 봄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거의 4년이 안 되는 시간만에 학생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반듯하고 실용적이지만 편하진 않은 플라스틱 의자와 책상, 오래 사용해 지워도 거뭇거뭇한 자국이 남는 화이트보드가 참 낯설게 느껴졌다.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은 대부분 은퇴한 백인 노인분들이었다. 부부가 같이 온 커플들도 몇 명 보였다. 나와 비슷한 젊은 층들은 네다섯 명 정도였다. 각각 업무, 취미, 호기심, 결혼 등 다양한 이유로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형사 변호사이며 라틴계 의뢰인들을 돕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운다'라고 자기소개를 하니, 사람들이 나를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강사는 라틴계 이민자로 스페인어 악센트가 강한 영어를 구사하는 중년의 아주머니였다. 뭔가 구수함과 유쾌함이 느껴지는 말투였는데, 악센트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영어 공부를 한국에서만 하다가 미국 살면서 처음 고생한 것 중에 하나가 흑인 발음을 이해하는 것이었는데, 스페인어 악센트가 있는 영어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게다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스페인어를 배우니 뭔가 새롭다. 좋은 점은 영어와 스페인어는 어순이라든지 유사한 단어, 격 변화, 관사 등 비슷한 개념이 많아서 영어로 설명을 하면 이해하기가 쉬워진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해석 과정이 스페인어 -> 영어 -> 한국어로 길어진다는 것이다. 영어는 이제 아무래도 편하게 느껴지는 편이지만 세 가지 언어가 혼재하다 보니 (물론 머릿속 어딘가에 들어있는 JLPT N3수준의 일본어까지 포함하면 네 개)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다.


새로운 언어를 네 번째 공부하다 보니 (게다가 학부 전공도 영어교육이라 언어 학습/교육 이론은 지겹게 공부했었다) 이제는 언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미 다 알고 있다. 물론 실천과는 별개. 사실 언어 공부 초반이 가장 재미있는 시기이긴 하다. 각 언어가 가진 고유한 어순, 문법, 특이한 단어 표현 등이 신선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기가 지나면 난이도가 높아져 본격적으로 어휘 암기, 동사 변형, 심화 문법 등을 거쳐야 하는데 이때부터는 재미보다는 '버텨야'하는 시기이다. 나는 영어가 전공이었고 영어라는 언어 자체를 좋아했기에 이 단계를 넘어 지금은 미국에서 말과 글로 밥벌이하고 있지만,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본어는 그렇지 못했다. 문법은 그렇다 쳐도 결국 어휘(한자)에서 막혀서 N3수준에서 그만둔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어의 경우에는 목표를 높게 잡고 도전할 생각이다. 즉, 의뢰인과 통역 없이 법률 관련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다행인 것은 미국 어디에서나 스페인어를 쓸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그 노력의 첫걸음은 휴대폰 음악들을 스페인어 교재 녹음파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특히 페어팩스 법원까지는 한 30분 이상 운전해서 가야 하는데 그 시간 동안 열심히 듣고 따라 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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