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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Mar 04. 2024

꿈의 제인, 누군가에게는 꿈속에서나마 만나는 사람

슬픔 속에서도 연약한 이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삶에 대하여

나는 자주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간혹 내가 갖고싶고 그려왔던 (가끔은 마음 깊숙히 욕망했던)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사실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고, 일어나기에는 너무 맥락이 부족한 일들인데도 내가 겪은 아주 작은 경험이 실마리가 되어 꿈속에서는 꽤나 그럴듯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치 내가 겪은 어떤 특정한 장면이나 그 장면에서 파생된 나의 생각이 어떠한 영화의 제작 동기가 되어 영화로 펼쳐지는 듯한 정도다.

소현의 꿈은 그러했다.

다만 소현의 현실은 너무나도 척박하고 외롭고 불안했기에 그녀가 만들어낸 꿈을 꿈이라고 인정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나마’ 그게 현실이라고 믿고싶었다. 제인과 함께하는 시간도 사실은 생경하고 그닥 행복하다고 볼 수는 없게 느껴졌지만, 사회에 홀로 남은 어린 소현이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하는 현실은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으니.


소현이 우연히 마주한 제인의 독백과 공연은 그녀가

꿈속에서라도 갖고 싶고 원했던 것들로 채워진 꿈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원했으나 결코 그녀에게 머물지 못했던 것 -

소속감, 안정감, 돈벌이를 위해 (말도 안돼는) 일에 내몰리지 않아도 되는 현실, 별난 나를 이해해주는 별난 사람과의 소통. 그리고 소현이 (보고 배울 기회가 없어 너무나 어려웠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불행으로 가득한 시시한 인생을 혼자서 살아가기엔 너무나 외로우므로 가끔은 손해를 보는 듯 해도 사람들과 부대끼며 가끔은 또 같이 행복한 시간을 가지며 사는 삶.

이러한 것들이 제인과의 만남을 통해 소현의 꿈속에서만들어졌다. 그녀가 원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있었으나, 꿈속에서마저도, 결국 그녀가 가장 아팠을 방법으로 제인은 떠났다. 그녀에게 전부였을 사람을 잃은 그 처참한 상실의 경험은 꿈속에서마저도 그녀의 삶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소현의 꿈속에서의 제인은 안쓰럽고 멋졌다. 그리고 멋졌으나 안쓰러웠다. 이 두가지의 마음이 공존했다.그래서 제인과의 시간이 꿈속의 시간이라는 것이 더욱가슴아프게 느껴졌다.

어쩌면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기에는 누구보다도 불안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인 제인이 소현의 삶에서는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어른이자 힘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사람마저도 꿈에서밖에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소현의 현실이었다.

꿈속의 제인은 자신의 슬픔을 어찌하지 못하여 본인을끊임없이 파괴적으로 만들더라도, 어린 아이들의 슬픔에 대해서는 지나치지 못하고 무엇 하나라도 마음을 쓰고자하는 사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마음에 무겁게 자리잡은 이 무언가가, 묘하지만 확실한 부채감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나만의 얄팍한 슬픔에만 빠져 주변의 소외되고 아프고 고통받는 연약한 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하는. 그리고 무엇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사회에 혼자 남겨진 어린 소현의 무기력한 표정을, 본인의 슬픔 속에서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제인의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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