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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슬아슬 내 인생 Nov 16. 2022

동창회를 해체했어요

아마추어입니다만


고교 동창들과 만든 계모임을 해체했어요.

아쉬움 보단 후련함이 더 크네요.

그동안 추석을 앞둔 며느리 기분이었는데 말이죠.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몇 년 전 가깝게 어울리던 동창 친구들끼리 모임을 만들었어요.

1년에 두 번, 모임 날짜를 정해놓고 강제로 모이자고요.

그렇게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도무지 만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제가 초대 회장 겸 총무를 맡았어요.

공정하게 투표로 결정되었죠.

하지만 수년간 강제 연임을 당했어요.

제 의지와 무관하게 몇 년이나 회장 일을 해야 했죠.


매달 회비 내는 모임이었어요.

적은 금액이지만 1년을 모으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 한 끼 정도는 먹을 수 있더라고요.

주로 파인 다이닝이라던지 오마카세를 다녔어요.

주점에서 술만 먹는 모임은 흔하니까 차별화를 두고 싶었어요.



늘 그렇듯 처음엔 다들 적극적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반응이 뜨뜻미지근 해지더군요.

단톡방에 '이번엔 어딜 갈까', '먹고 싶은 게 있니'

물어봐도 의견을 제시한다거나 답장을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심지어 며칠 만에 피드백을 준다던가,

소위 말하는 읽씹(읽고 씹는 일)도 다반사였어요.


제가 모임 회장을 맡고 싶어 맡은 것도 아닌데.

마치 그들은 절 모임 매니저나, 비서쯤으로 여기는 것 같더라고요.

'너가 알아서 잘해줘', '그런 건 너가 잘 알잖아', '나는 아무거나 다 괜찮아'

그래서 정말 아무거나 정하면 또 싫어해요.

하하 이쯤 되면 싸우자는 거죠?


하지만 저는 싸워본 적은 없어요.

그냥 그만 두기로 했거든요.

오랜 친구들과 굳이 싸워가며 모임을 유지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사실 그만 둘 결심을 세운 건 지난 모임 때였어요.

하지만 너무 섣부른 결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올 연말까지만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했죠.


그리고 지난주에 그 마지막 모임이 었었어요.

놀라웠어요. 

제 예상 밖이었거든요.

이번엔 모임 인원의 3/2가 지각을 했어요.

우와.. 

예약제 레스토랑이었는데 말이죠. 

20분 먼저 도착한 저는 좌불안석이었고요.


근데 더 황당한 부분이 뭔지 아세요?

지각한 사람들이 다들 너무 당당하다는 거예요.

늦을 것 같으면 미리 연락을 줄 수 있는 건데.

왜 늦는지, 얼마나 늦는지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심지어 모임 당일에 레스토랑 위치를 묻는 친구도 있더라고요.


여기가 회사였어도 그랬을까요?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러 가는데

그렇게 늦거나, 불가피한 일로 늦어져도 늦는 이유를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나요?


저는 확신이 생겼어요.

이제 그만둬도 되겠다고요.

이 친구들에게 이 모임은 그 정도로 중요하진 않구나 싶었죠.


물론 그 모임에는 피드백도 잘 주고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친구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친구 하나만 바라보고 이 모임을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그런 친구는 따로 만나려고요.

이런 골치 아프고 스트레스받는 모임 밖에서요.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단톡방에 탈퇴 선언을 했어요.

말을 꺼내려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뭔가 연인과 헤어지는 느낌? 그런 비슷한 기분이요.

마치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면 앞으로 인연이 끊어지기라도 할 것 같았어요.


그래도 우유부단하게 굴지 않기로 했어요.

그만두는 이유를 구구절절 말하지도 않았죠.

핵심만 짚어주고 기분 나쁘지 않게 모임에서 나왔어요.

웃으며 헤어지고 싶었거든요.

모임만 끝내자는 거지 다신 보지 말자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그만두면서 자연스레 모임은 해체됐어요.

저 없이는 안 돌아가는 모임이었나 봐요.

이제와 생각해보니.. 또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네요.


아무튼, 다행히, 모든 게 좋게 마무리됐어요.

내년부터는 비정기적으로 원하는 사람끼리 알아서 보기로 했죠.

그런데 과연.. 그게 잘 될까요?

저희 관계는 앞으로도 괜찮을까요?


하하.

사실 잘 모르겠어요.

걱정은 그때 가서 해볼게요.

이미 이 일은 제 손을 떠났으니까요!


뭔가 후련하고 서늘한 밤입니다.

겨울이 오고 있나 봐요.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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