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랑 투쟁하기도 벅차다
시작에 앞서 본 글은 개인적인 특징이 잔뜩 묻어있어 공감이 어려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시다면 화성인 바이러스를 시청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험생활이란 나에 대한 나의 투쟁이다
더 자고 싶은 나…
그만 집에 가고 싶은 나…
유튜브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
책상 앞에 앉고 싶지 않은 나…
학원 모의고사에서 하위권 등수를 받았을 때보다 내 손으로 하루를 쌩으로 날렸을 때 더 울적한 마음이 든다. 물론 후자가 더 하다는 뜻이지 전자가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던가.
지기지기는 또이또이다.
나와 나의 싸움은 이런 식이다.
공부하기 싫어!
-> 집에 가면 죄책감만 커진다는 걸 알아서 도서관에 붙어 있으려 함
-> 동시에 집에 가면 얼마나 편할지 알고 있음
-> n시간 동안 갈팡질팡하며 괴로워함
-> 집에 갈 시간!
막상막하의 끝은 주로 시간이 얼버무린다.
만화처럼 천사와 악마가 튀어나와 싸우다 결판 지어지는 게 아니라 어라? 어느새 갈 시간? 하고 (나름) 합법적으로 귀가한다.
천사든 악마든 이 시간엔 집에 갈 것이 전제되어 있었기에 악마의 승리라고 보기엔 애매한 면이 있다.
되려 악마는 허탈해하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그러니까이렇게공부안했을거내말대로진작집에가서쉬었으면좋았잖아…”
흐르는 시간만큼 무정하고 공평한 게 없다.
나를 이기는 법은 쉽게 찾을 수 있다.
TV 강연 프로그램, 서점 베스트셀러 선반, 재수학원의 버스광고, 동기부여 영상 하나 봤을 뿐인데 온갖 사람들이 달려 나와 나를 혼내는 유튜브 알고리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런 매체물들에 시큰둥한 편이다. 남하고 떠들기를 좋아하면서 남의 말을 들어먹진 않는 게 독재자 심보가 따로 없다.
딴지를 거는 건 아니다.
“저는 시간이 아까워 잠은 3시간만 자고 밥도 책상 앞에서 먹었습니다. 하루 14시간씩 공부한 결과 n개월만에 합격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을 불태우면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얘기에 흥! 분명 수험기간을 줄여 말한 거겠지 라며 의심하진 않지만
“헉 정말 대단하시네요..(고개를 돌리며)”
하고 자연스레 남의 일로 남겨둔다.
긴긴 말 중 여러분도 할 수 있단 말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저 사람이니까 가능했겠지 따위도 아니다. 그냥.. 그냥 안 듣는다..
“저만큼 공부할 거 아니면 수험 포기하세요!”
라는 호통을 들을 때도
“강사님 진짜 열심히 사셨네..” 식이다.
혼내는 말도 달래는 말도 모르는 척하는 나 자신이 미운 다섯 살로 보인다.
더 근본적으로는, 유퀴즈에 출연한 김대호 아나운서의 말처럼 생각한다.
구체적인 방법론도 잘 안 된다.
예를 들면 계획 세우기.
계획을 세우는데 하루를 온전히 투자하라는 말까진 잘 따라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계획은 수립-실행-수정의 반복이라는데
나는 수립-실행-수정 수정 수정 수정..
이러다 우울증 도지겠다 싶어 그만두고 만다.
목표를 무식하게 잡았던 탓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생각 못하게 빨랑빨랑 시동 걸고 출발시켜야 하는 류의 사람인 거 같다. 아니 그냥 하라고.. 그만 생각하고 일단 하라고.. 이런 느낌?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의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예는 구체적인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
계획 세울 땐 내뺐던 현실감각이 불쑥 말을 얹는다.
“좋긴 한데.. 날 내던져 볼 정도는 아니지 않아?”
그만큼 간절하지 않거나 원대한 걸 바라진 않아서 나오는 말이겠지. 꿈이 없다는 건 이런 게 문제다.
이젠 유엔총장을 써넣을 장래희망 칸도 없는 어른이 됐는데.
적당히 잘 사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울까.
관점을 돌려 mz세대의 특징 및 조직 내 충돌 문제에 대한 글들을 찾아본다.
나도 mz니까..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다.
mz 갈등의 해결책으로 대개는 소통이다.
소통이 지나치게 잘 되는 바람에 자아가 한 수 앞을 내다보고 내다보고 내다보다 교착 상태에 빠진 게 이 사태의 전말인걸.
대자기계발시대에 내 한 몸 달래 일으키기가 이렇게 어렵다.
결국 눈을 돌려 다시 바라보게 되는 건 ‘나’다.
나에 대한 나의 투쟁
이렇게 생겨먹은 거 어쩔래! 배 쨀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인생을 째지게 말아먹을 테니 방치할 수는 없다.
나를 극복하기란 기름을 들이부어도 소박하기 그지없는 불꽃으로 한옥마을 온돌 데우기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이다.
유체이탈해 나의 양 어깨를 붙잡고 너 나한테 왜 이러냐고 따지고 싶다. 야 그냥 할 순 없는 거냐!!
의무를 다하는 것이
기분을 관리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afx1979/222949600359
살면서 들어본 말 중 가장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와닿은 말과 글이다.
이에 힌트를 얻어 나를 슬쩍 찔러본다.
작은 열린 문 틈 사이로 발 집어넣듯.
공부하기 싫어! 힘들어! 못해! ㅠㅠ라는 나에게
그래? 그럼 이제 그만둘래?
시비 아니고 비꼬는거 아니고
넌지시 일상적인 투로.
벌컥 화내면서 답하기엔 애매한 말투로.
“아니 그건 아니고....”
얼버무릴 때 한 번 더 가볍게 치고 들어간다.
그럼 그냥 해야지 뭐~
그럼 나는 뺨을 긁적이며 어 그치.. 하고 수긍한다.
답을 알면서 우는 소리를 한 게 머쓱해진다.
힘들긴 했는데.. 내가 오버했나?;; 뒷목을 쓸며 자리로 돌아간다. 땅굴을 파다가도 어우 흙이 잔뜩 묻었네 민망해하며 쓱 털고 훌훌 걸어 나온다.
만만투와 달리 나와의 투쟁은 쪼잔하고 소심하다.
스케일 있게 접근할수록 핑계가 늘어난다.
이 글처럼.
그래서 작지만 정확한 반박으로 문제를 똑바로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몰아붙이는 건 안된다. 감정들을 한 겹 벗겨내어 이성을 끌어올려주는 게 목표다.
혼내고 달래고 설득하기보다 아 알잖아~ 하고 팔꿈치로 찌르면 의외로 쉽게 정신 차리게 된다.
괴로움은 무게에서 온다.
낮은 모의고사 등수도, 당최 알아먹질 못하겠는 책 속 말들도, 집과 도서관만을 오가는 생활도 추(錘)가 되어 차곡차곡 발등에 쌓여 무게를 더한다.
늘어지는 발걸음이라도 내딛던 중 그 무게감이 훅 실감되는 날, 으앙 못하겠어하고 주저앉는다.
사실 어찌어찌 잘 가고 있었으면서!
어른들은 아이가 넘어지면 달려가 겨드랑이에 양손을 넣어 쑤욱 일으켜 세우곤 “괜찮아?” 물어본다.
어딜 다쳤는지 전신을 한 바퀴 훑고 시선이 다시 울망울망한 얼굴에 도달했을 때, 같은 말을 어조만 바꾸어 다시 말한다. “괜찮아!!”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넘어진 직후에, 울음보가 터지기 전에, 엉엉 울음소리에 다른 목소리가 묻히기 전에 재빨리 괜찮다는 말을 들려준다. 더해서 넘어질 수도 있지!라고도 말한다.
넘어진 게 아무렇지 않은 일인 양.
사실 넘어지는 순간 본인의 심장도 덜컥해 아직도 벌렁거리면서. 몇 분 뒤엔 친구에게 이렇게 시작하는 문자를 보낼 거다. ‘나 아까 너무 놀랐잖아‘
괜찮다는 말로 최면을 걸어 고통을 없애주거나 엄마손은 ㄹㅇ약손이라 상처를 씻은 듯이 없애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괜찮아는 “(너도 놀랐고 나도 놀랐고 상처도 났고 내 마음도 아프지만) 괜찮아!! “라는 말을 내포하고 있는 거 아닐까.
바뀌는 현실은 없지만 그 말로 넘어진 걸 별 거 아닌 일로 만들어버린다. 딱콩 하고 돌부리를 혼내는 깜찍한 모션을 곁들여 “혼내줬어~ 됐지?” 하고 사건을 매듭짓기도 한다.
그래서 다음에 넘어졌을 땐 혼자 훌훌 털어내고 놀이터에 갈 수 있도록. 다른 말로는 엄살쟁이 안 만들려고. 피가 철철 흐르는 무릎으로 집에 가면 어른은 똑같이 심장이 덜컥하겠지만.
일상적이고 가벼운 일로 만들기.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 쓱 지나가버리기. 딱히 바뀌는 건 없지만 그건 그거고 어쨌든 가던 길 계속 가기. 괴롭고 싫은 마음을 한 움큼 퍼내어 내다 버리기.
그래서 안 할 거야? 어어 해야지.. 얼떨결에 털고 일어나 굴러가다 보면 성공이든 실패든 지구멸망이든 끝은 온다. 흐르는 시간은 공평하니까.
당면한 과제는 여전히 내 발등 위에 있다. 빠르면 내일 사태가 재발할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이 상황을 해치운다 해도 다른 과제와 괴로움이 올 거다. 반박은 그럴 때마다 내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와 일으켜 세워줄 도구다.
파고들기 전에 휙휙 끊어내다 보면 자연스레 습관으로 스며들지 않을까. 부정적인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려 할 때 “이 자식 또 이러네” 하고 내 손으로 눌러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성이 감정을 이긴다? 나한텐 기대하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당연히 반박이 안 먹히는 날도 있다.
도구는 도구일 뿐. 그럴 땐 환기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브런치에 글쓰기.
열정도 패기도 야망도 없는 나. 쓰고 보니 눈물이...
성실함이나 강력한 이성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어째 자기 연민만 온전히 갖추어진 거 같다.
수험생 하기엔 치명적인 구성인 걸?
. . . . . (그래서 안 할 거야?) 아뇨^^
웹툰으로 치면 일상연재툰 같다.
거대한 세계관, 비범한 능력, 소름 돋는 반전, 복선, 떡밥은 없다. 소소한 일상과 개그로 허허실실 굴러간다. 대신 아다리 안 맞는 타임라인이나 복선 회수 실패, 설정 붕괴로 별점 테러 맞을 일도 없을거다.
쓰고 보니 당연한 얘기를..? 싶지만.. 세상이 나한테 요구하는 게 드럽게 많아 피곤한 사람들에게 참고사항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괴수를 해치울 영웅을 기다리기보단 그냥 따릉이 타고 알아서 내 한 몸 피하고 싶은 사람들.
우리 존재 모두 화이팅 !
커버사진출처 : X @rangwadis_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