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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석 Mar 20. 2018

고든 램지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다른 것을 본다〉-2화-

# 과연 한국 맥주는 맛이 없을까?


소비자들은 스팸문자나 정크메일의 폐해를 호소하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화려한 홍보영상이나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 앞에서는 오히려 따분해진다.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덧‘ 눈팅’만 하는 방관자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그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연예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악플이 아니라‘ 무플’이라는 말처럼, 기업에게 소비자들의 무관심은 가장 큰 적이다. 가령 맥주회사라면 맥주를 마시게 하고, 맥주를 권하게 하고, 맥주에 관한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곧 브랜드 이미지가 된다. 일단 제품을 쓰는 순간부터 방관자는 벗어나는 셈이니.

2013년 초 한 영국인 기자가 〈이코노미스트〉에 ‘한국 맥주는 북한의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라는 취지의 기사를 쓴 직후, 수많은 매체에서‘ 한국 맥주는 개성도 없고 맛도 없다’는 불만 섞인 기사를 보도했다. 고민스러웠다. 할 말은 많았지만 섣부른 답변은 변명처럼 보일 것 같았다. 아무리 우리가 “아니다!”라며 광고를 하거나 보도자료를 배포해도, 대중은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데만 관심을 가질 뿐, 사실 여부를 가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한국 맥주는 맛도 없고 개성도 없는 존재로 인식되어 있었다.

정보가 많은 시대에는 사실보다 인식이 중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대중에게 사실을 증명해야 할까. 어떤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다시 가져와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마침 〈서울신문〉에서 실제로도 국산 맥주가 맛이 없는지를 문의해왔다. 나는 이것이 기회라고 보았다. 그래서 답변하는 대신 “직접 마시고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맥주 맛을 테스트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결국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서울신문〉 대표 주당기자 13명을 선정해 맥주 시음회를 열었다. 다섯 가지 맥주의 상표를 철저하게 가린 후에 시음하는‘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이었다. 시음 대상은 ‘OB골든라거’, ‘ 하이트’, 일본의 ‘ 아사히’,유럽의‘ 하이네켄’,미국의‘ 밀러’였다. 평가는 두 가지 방식이었는데, 일단 마시고 난 후 맥주 브랜드를 맞히는 것과 각각의 맥주를 시음한 뒤 5점 기준으로 개별 평가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서울신문〉 표현을 빌리자면, 참혹할 정도였다. 두 번에 걸쳐 진행된 테스트에서는 참가자 대부분이 맥주 5종 가운데 1개를 겨우 맞혔다. 〈서울신문〉 오달란 기자의 기사(2013년 10월1일자)에 의하면 1/2차 테스트의 평균 정답 개수는 각각 1.16개와 1.15개에 불과했다. 게다가 1차에서 맞힌 브랜드를 2차에서도 일관되게 맞힌 참가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테스트를 하기 전 평소 즐겨 마시던 맥주 브랜드를 적어냈으나, 시음 결과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를 정확히 맞힌 기자는 극소수였다. 맥주 맛에 대한 별점 평가(5점 만점)에서 참가자들은 본인이‘아사히’라 고 추측한 샘플에 가장 높은 점수인 평균 3.05점을 주었고,‘ 하이트’ 라고 추측한 샘플에는 가장 낮은 점수인 2.07점을 줬다. 하지만 실제 ‘아사히’를 정확히 맞힌 참가자 2명의 평점은 1점으로 다른 맥주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하이네켄’과‘OB골든라거’를 맞힌 5명의 평균 점수가 3.4점과 3.2점으로 높은 편이었다. 실제 맥주 맛의 차이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궁금하면 직접 시험해봐도 좋다. 각기 다른 맥주 3종의 브랜드를 가린 채 컵에 부어 순서를 바꿔가며 시음하다 보면, 극도로 미각이 발달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분간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블라인드 테스트 후에 우리는 맥주 맛에 대해 특별히 해명할 필요가 사라졌다. 물론 이 테스트 결과를 아직 접하지 못한 일부 소비자들은 여전히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경험이 만들어준 증거가 있는 이상 더 이상 조심스러울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우리가 어떤 광고 메시지를 내세우든, 변명과 거짓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기에 소비자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다.


“경험과 체험은 그만큼 분명한 근거로 작용한다.”



# 된장찌개는 청국장보다 맛없는 음식인가?


한국맥주의 맛에 관한 부정적인 견해나 질문을 접할 때 마다 내가 자주 반문하는 질문이다. 청국장이란 무엇인가? 된장찌개 보다는 된장의 농도가 진하고 그 결과 맛과 향 모두 호 불호가 명확할 정도로 강한 음식이다. 반면에 된장찌개는 된장의 농도는 청국장 보다는 적지만 적당한 물을 나름의 황금비율로 섞어 된장 맛이 느껴지면서도 부드럽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다른 예로, 에스프레소 원액 커피와 아메리카노 커피 중 어느 것이 더 맛있을까? 하나는 진한 커피 추출액 그 자체지만 다른 하나는 그 추출액에 물을 타 덜 진하지만 마시기 좋게 만든 것이 아니냐? 음식과 음료의 맛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섭취하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좀 더 선호하는 부류는 골라낼 수 있지만, 각각의 음식과 음료의 우열을 자로 재듯이 평가하고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인정받기는 힘들다.


그런데, 유독 맛에 관한 우열을 굳이 평가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맥주인 것 같다. 특히, 국산 맥주에 관한 평가절하나 폄하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바야흐로,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맥주의 브랜드 수가 350개를 넘어섰고, 그 중 대다수가 수입산 브랜드 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산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은 85%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국산맥주가 맛이 없다면 어떻게 아직도 이 정도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을까? 왜, 수입산 브랜드를 더 구매하지 않을까? 특히, 요즘은 수입맥주 4캔(500ml 캔)을 만원 이하에 판매해 오히려 국산맥주보다 더 저렴할 때도 많은데.

OB골든라거

국산인가 아니면 수입산인가를 떠나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다수의 맥주는 청량한 속성을 지난 맥주다. 찌개로 말하자면 청국장이 아닌 된장찌개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국산이냐 수입산이냐 하는 브랜드를 선택하기 이전에, 국내 맥주 소비자들이 맥주를 음용하는 상황이 이런 종류의 맥주를 더 필요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진하고 매운 맛의 음식과 함께 음용해야 하고, 느끼한 프라이드 치킨과 함께 어울려야 하고, 흥에 넘쳐 생맥주를 양껏 마실 수 있고, 소주나 기타 주류에도 섞어 마시려면 청량한 속성의 맥주가 선호된다. 진하고 향이 강한 맥주는 이런 상황에서 인기가 적다. 이런 한국의 음식 및 음주 문화에 최적화된 맥주를 자주 즐기고 있으면서도 왠지 해외의 개성 있는 맥주만 못한 것을 마시고 있는 것으로 자책한다. 맥주제조는 하이테크 산업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제조경험과 설비만 있으면 누구나 유사한 수준의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맥주 타입이 있다면 그건 못 만드는 것이 아닌, 않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는게 좋다.

한가지 더 아직 국산 맥주가 선호되고 있는 이유는 수입 맥주의 패키지이다. 대부분의 서양 국가에서 맥주는 개인용 음료다. 330ml 정도의 소형병을 구매하여 각자가 따로 마신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유럽의 와인과 같이 맥주도 500ml 이상의 사이즈로 구매하여 식탁의 중앙에 놓고 나누어 마신다. 우리나라 만의 독특한 문화인데, 아쉽게도 대부분의 수입맥주는 이 사이즈의 병을 한국시장에 공급하고 있지않다. 한국시장만을 위해 이 사이즈의 패키지를 만들기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한국 소비자들이 불평해야 할 것은 국산맥주의 맛이 아닌 수입맥주의 패키지 아닐까 싶다. 우리 음주 문화 환경에 맞는 패키지를 제공해야 한국 소비자가 만족하지 않을까?

국산맥주는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어쩌면 청국장이 아닌 된장찌개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청국장을 못 만들아 서가 아니라 청국장 같은 맥주를 만들어도 실제 구매는 저조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일상속의 음주문화에 걸맞는 맥주의 속성이 아니니까. 언젠가 우리도 유럽과 같이 별 다른 안주없이 간단한 마른안주와 함께 맥주를 음용하는 문화가 주도적이 된다면 유럽의 맥주처럼 강하고 진한 향의 맥주가 주류를 이룰 것이다.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와인을 마시면서는 맥주만큼 맛의 우열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맥주는 이토록 우열을 가리려 할까? 나는 늘 맥주 맛에 관심있는 분들께 말씀드린다. 맥주 맛은 ‘우열’이 아닌 ‘다름’이라고. 350개 이상의 브랜드 중에 내가 선호하는 맥주를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한데, 굳이 내가 선호하지 않는 브랜드를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그 무엇이던 은연중에 지금 내가 음용하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 맞는 나의 베스트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


# 고든 램지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2017년 11월 세계적인 요리사 고든 램지가 한국을 방문했다. 미슐랭 스타를 16개나 보유한 세계적인 스타 셰프 고든 램지가 한국을 방문한 그 자체로 장안의 큰 뉴스가 되었다. 특히, 그의 방한 두 달 전부터 방영된 TV광고를 통해, 대한민국의 카스 맥주가 엄청나게 신선한 맥주라는 주장을 펼친 이유로, 수 많은 소비자와 기자들이 그를 만나 팩트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광고를 처음 방영한 날 엄청난 양의 SNS 댓글이 생성됐고, 그 중 대부분은 상당히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어떻게 세계적인 요리사가, 그것도 날카로운 지적질로 유명한, 고든 램지가 대한민국 맥주를 칭찬할 수 있냐?. 돈에 팔려 마음에 없는 얘기를 했다. 그 부정적인 열기가 너무 심해 심지어 광고를 수일간 중단했다 다시 방영하기도 했다. 나는 참 아쉬웠다. 우리나라 사람은 Made in Korea 제품 중에 삼성전자나 현대차와 같은 공산품은 자긍심이 매우 큰데 반해, 식음료 브랜드에 관한 자긍심이 상대적으로 많이 모자란다. ‘초코파이’가 얼마나 위대한 제품이고 ‘신라면’이 얼마나 사랑받는 제품이냐. 카스 맥주도 외국인들이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맥주인데 정작 우리는 그리 우수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습이 아쉬웠다.


애초에 고든 램지를 섭외해 광고를 찍고 한국에 초대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2013년 초 한 영국인 기자가 <이코노미스트>에 ‘한국맥주는 개성도 없고 맛도 없다’는 불만 섞인 기사를 보도한 후 국내 소비자들 간에 퍼져 나간 한국맥주에 관한 잘못된 편견을 그보다 더 권위있는 전문가의 의견으로 판단 받고 싶었다. 예상했던 대로 고든 램지의 방한은 뜨거운 뉴스가 되었다.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날 선 질문도 많았다. 램지는 기자들에게 소신 있게 말했다. 본인이 전세계 최고의 요리사는 아니지만 최상의 요리사 중 한 명 이듯이 카스 맥주도 전 세계 최고의 맥주는 아니지만 최상의 맥주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다고. 영국인 기자에 대해서는 아마도 그가 한국인이 즐겨먹는 매운 맛의 음식이나 맥주 음용 상황을 잘 모르고 유럽인의 관점에서 얘기한 것이 아니겠냐고? 램지만의 특유의 독설 스타일로 유머 스럽게 한마디 더 했다. 다음에 직접 만나게 되면 그 기자의 엉덩이를 걷어 차 주고 싶다고. 그리고, 그날 오후 세계적인 요리사 램지는 서울의 광장시장과 홍대 등의 식당을 들려 한국음식과 카스 맥주를 흠뻑 즐겼다. 카스는 한국 음식에 어울리는 엄청 신선한 맥주라 평가하면서.

사람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들다. 특히 그것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것은 더욱 바꾸기 힘들다. 내가 시도했던 건 한 외국인의 관점에서 발발했던 왜곡된 인식을 다른 전문적인 외국인의 관점을 통해 결자해지 하려던 의도였다. 그렇다고, 나는 카스 맥주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맥주라 말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맥주는 우열보다 다름’이니까. 좋아하실 분들만 좋아하면 된다. 다만 우리가 오늘 즐기고 있는 것이 객관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는 부분만 바로잡고 싶었다. 그 다음은 소비자의 선택의 몫이기 때문에. 고든 램지는 한국방문 이후 SNS등을 통해 한국음식에 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 음식과 잘 어울리는 한국맥주에 관해서도.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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