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교감에게 대처하는 법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by 구론산바몬드

교감 선생님이 새로 왔다. 인사이동이 있으면 사람보다 소문이 빠른 법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아주 좋은 분이라 했다. 교감 선생님은 서글서글해 보였고 인상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갓 승진한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듯 한껏 상기된 얼굴이었다. 먼저 있던 교감 선생님이 워낙 별난 분이어서 선생님들의 기대는 컸다. 의욕적으로 업무를 파악하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챙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에 우리들은 혹여나 하는 우려를 씻어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튿날부터 교감 선생님은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아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제의 교감 선생님과 확연히 달랐다. 교무실이 지저분하다는 둥, 슬리퍼를 소리 나게 끌지 말라는 둥, 수업 시작종이 치기 전에 교실로 출발하라는 둥 온갖 주문이 쏟아졌다. 회의 도중엔 목소리 톤을 한껏 높여 짜증을 냈고, 누가 반론이라도 제기할라치면 수첩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대노했다.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우리는 교감 선생님이 좋은 분이라는 소문을 가져온 사람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그릇된 소문을 퍼뜨린 책임을 물으려 했다. 얼마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교감 선생님은 갱년기를 지나고 있었다.


교감 선생님의 만행(?) 중 최악은 결재를 잘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결재를 상신하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어 반려시켰다. 글자가 좀 틀려도, 띄어쓰기가 틀려도, 일시, 장소, 대상의 순서가 바뀌어도 반려했다. 결재를 반려당하면 물론 기분은 나쁘지만 그녀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공문 작성엔 원칙이 있고 명백히 어법이 있으니 할 말은 없었다. 다만 굳이 반려를 할 정도로 상식선을 넘는 오류가 없을 때에도 반려를 한다는 것이 모두를 경악케 했다. 너무 많은 결재를 반려하여 우리는 그녀에게 '반려자'란 별명을 붙였다.


나도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 한 번은 학생들과 함께 벽화 작업을 하기 위해 초과근무를 상신했다. 사유는 '벽화 제작 및 학생 지도'였다. 역시나 초과근무는 반려되었고 그 사유는 이랬다. '벽화는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임.' 정말 너무한다 싶었다. 학교 밖으로 나가는 공문도 아니고 단순히 근무상황 신청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 후로도 그와 유사한 일은 숱하게 있었고, 교감에 대한 분노 게이지는 점점 높아갔다.


그로부터 2년 여 지났을 즈음부터 교감 선생님은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화를 내는 일도, 결재를 반려하는 일도,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는 일도 확연히 잦아들었다. 갱년기는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교감 선생님은 본연의 온화한 인품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확실히 좋은 사람이 맞았다. 하지만 지난 2년은 정말 힘들었다. 만날 사고 치는 학생들보다도 교감 때문에 출근하기가 싫었으니까.


갱년기의 실상을 보고 나니 사춘기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실감 났다. 사실 갱년기 교감에 대처하는 방법은 딱히 없다. 교감이 바뀌기를 기다리거나 갱년기가 끝날 때까지 버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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