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귀가 얇은 우리 처형은 쉽게 일을 벌이고 쉽게 접는다.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말거나 다 좋은데 뭔가를 시작할 때마다 지인 찬스를 쓴다는 게 문제다. 아내는 단호히 말리지만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거절하는 게 쉽지 않다. 그녀가 보험을 하면 나는 피보험자가 되고, 물건을 팔면 구매자가 되고, 회원을 모집하면 회원이 된다. 나이 오십 줄을 넘기더니 요즘은 좀 조용하다. 그래도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처형에게 당하는 건 그래도 낫다. 제자들이 더 무섭다. 스승의 날이라고 반갑게 전화를 받으면 짧은 인사 뒤에 꼭 사족이 붙는다. 선불폰 구매, 카드 발급, 정수기 판매까지 직종도 다양하다. 게 중에는 대뜸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놈들도 많다. 교단에서 좀 아는 체 사기 쳤더니 녀석들이 사기 치는 것만 배워버렸다. 선생님은 지인에서 좀 빼주면 안 되겠니.
제자 중 H는 괘씸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첫 만남부터 사기를 친 놈이다. 모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그는 우리 반이었다. 개학 첫날부터 결석을 했다. 그러고는 일주일을 내리 결석했다. 얼굴도 모르는 놈을 찾아 가정방문을 했다. 동네에서 아무개의 오토바이를 부셨는데 물어줄 20만 원을 마련하느라 학교를 못 갔단다. 할머니와 네 살 아래 동생과 셋이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가출한 집은 처음 봤다. 벌써 10년째 소식이 없다고 한다. 학교를 나오는 조건으로 20만 원을 줬다.(당시 물가로 계산하면 큰돈이다.) 오토바이 파손은 거짓말이었고 그 돈은 유흥비로 썼다는 걸 한참 뒤에 알았다.
한 날은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졸업한 지 3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비가 필요하다며 30만 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 꼭 갚겠다는 상투적 말조차 덧붙이지 않았던 것 같다. 워낙 목소리가 다급하고 두 손자를 힘들게 거두었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망설임 없이 이체했다. 그게 사기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지하에 누워 계셔야 하는 그의 할머니는 그 후로도 꼬박 10년은 더 생존하셨다.
이제 제자로부터 걸려오는 전화가 두렵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열심히 가르치고 나름 애정으로 돌봤던 제자에게 배신의 칼을 맞기가 싫어서다. 사랑했던 제자가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게 끔찍해서 차라리 모르고 싶다. 선생님에게 사기 치지 말자, 제발! 세상 물정 모르는 선생님은 사기그릇과 같다. 치면 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