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엔딩인 진짜 피곤한 집안

테바이 성의 저주

by 야담

신화 이야기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도 유독 결말이 어두운 테바이를 살펴보려 한다. 이곳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경계선에서 수많은 비극이 반복된 도시이다. 누군가는 신의 연인이 되었고, 누군가는 그들의 명령을 거부했으며, 그 모든 선택은 파멸과 재탄생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리는 이 도시의 인물들이 어떤 금기를 넘었는지 그 대가로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또 이 신화들이 현대 문학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되살아났는지도 함께 짚어보려 한다.



테바이의 시조는 카드모스다. 그는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의 아들로 누이 에우로페를 찾다 델피 신탁에 따라 암소가 멈춘 곳에 도시를 세운다. 그는 그 땅을 지키던 용을 죽이고, 그 이빨을 뿌려 병사들을 불러낸다. 이 사건은 신성한 질서를 훼손한 행위로 간주되어 아레스의 분노를 사고 카드모스는 오랜 속죄를 거쳐야 했다. 그는 전쟁의 신에게 봉사한 뒤에서야 아르모니아와 혼인하게 되고 이 결혼을 통해 테바이의 저주받은 혈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카드모스와 아르모니아 사이에는 네 딸이 태어난다. 그중 세멜레는 제우스의 연인이 되어 그의 아이를 잉태한다. 그러나 헤라의 질투로 인해 제우스의 본모습을 요구하게 되고 제우스는 약속을 지키려다 세멜레를 불태우게 된다. 그 순간 세멜레의 뱃속에 있던 디오니소스를 꺼내 제우스는 자신의 허벅지에 봉합하여 아이를 품는다. 이렇게 디오니소스는 모태가 아닌 남성의 몸에서 태어난 존재로 죽음을 거쳐 삶으로 나아오는 재탄생의 상징이 된다.


세멜레의 언니 아가베는 또 다른 비극의 중심이 된다. 그녀의 아들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테바이에서 그를 숭배하는 자들을 탄압한다. 디오니소스는 분노하며 여자들을 광기에 빠뜨려 숲으로 보내고 펜테우스를 여장시켜 몰래 들여보낸다. 축제에 휘말린 그는 어머니 아가베를 포함한 여인들에게 사슴으로 오인되어 산 채로 찢겨 죽는다. 아가베는 아들이 아닌 짐승을 죽인 줄 알았으나 정신이 돌아오고 나서야 그 진실을 깨닫는다.



아가베의 자매 아우토노에의 아들 악타이온도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그는 사냥 중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고 이를 분노한 여신은 그를 사슴으로 바꿔버린다.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세계를 엿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짐승이 되어 쫓기고 결국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산 채로 찢겨 죽는다. 테바이에서는 신의 몸, 축제, 질서를 보는 행위 자체가 금기로 작용하며 그 경계를 넘는 순간 반드시 파멸이 뒤따른다.



카드모스의 딸들은 모두 신과 접촉하거나, 부정하거나, 그들의 질서에 휘말리게 된다. 세멜레는 제우스를 받아들이고, 아가베는 디오니소스를 거부하며, 아우토노에는 악타이온이 아르테미스의 몸을 본 죄를 안고 살아간다. 이들의 자식은 저마다 신과 관련되어 죽거나 괴물이 된다. 자식을 자랑한 니오베 역시 레토의 분노로 모든 것을 잃는다. 테바이 왕가는 여성의 자궁을 통해 절대자와 인간의 피가 섞이는 경계의 장이 되며, 이 계보는 단절되지 않고 또 다른 저주의 순환을 만들어낸다. 이 도시에서는 태어남 자체가 이미 불길하다.



이 계보는 라비다이 가문으로 이어지며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시작된다. 라이오스는 신탁을 받고도 아들을 낳고, 그는 산에 버려진 뒤 살아남아 자기도 모르게 친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눈을 찌르고 도성을 떠나며 파멸한다.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보려는 자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보여주는 인물이며 이 사건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성 전체를 전염시킨다. 신탁을 피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파멸을 부른다.



오이디푸스의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위를 두고 다투다 서로를 죽인다. 두 아들은 왕권을 나누기로 약속했지만 에테오클레스가 이를 어기자 폴리네이케스는 외부 군대를 끌어와 테바이를 공격한다. 형제간의 전쟁은 자멸로 끝나고 안티고네는 장례를 치르다 처벌받는다. 그녀의 행위는 신의 명령과 인간의 법 사이의 갈등을 드러낸다. 테바이에서는 정의, 충성, 혈연이 모두 비극으로 끝나며 가족을 구하려는 시도조차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테바이의 저주는 이웃 도시로도 번진다. 칼리돈의 멜레아그로스는 테바이 왕가의 외손으로 그의 생명은 장작 조각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아르테미스의 분노로 보내진 멧돼지를 사냥하고 전리품 문제로 삼촌들과 충돌 후 죽인다. 어머니 알타이아는 분노 끝에 장작을 불태워 아들을 죽인다. 테바이와 연결된 이 여성 계보는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죽이고 그 죽음은 언제나 신과 인간 사이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에 발생한다. 피는 피를 낳는다.

이처럼 테바이 혈통은 신과의 경계에서 태어나고 그 경계를 넘으면서 죽는다. 포코크는 그리스 속의 인도에서 디오니소스가 인도 신 나우소스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세멜레는 자이나교 여성 제사장 수라메와 유사하며,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메로스(허벅지)와 메루(산)의 어원을 연결해 설명된다. 포코크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정설은 아니지만 테바이가 외부의 신성과 혼혈된 도시라는 점을 강조하며 신화의 기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신화와 문학




테바이 신화는 고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사회의 도덕과 감정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처벌당한다. 이는 디오니소스를 인정하지 않은 펜테우스가 맞은 운명과 닮았다. 인간이 신의 질서나 사회 규범을 거부하는 순간 신화처럼 파멸이 찾아온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주인공은 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삶이 붕괴한다.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알게 된 순간처럼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 앞에서 무너진다. 이러한 문학적 주제는 테바이 신화의 반복과 맞닿아 있다.



또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프랑켄슈타인』은 인간 본성의 실험과 창조 욕망의 위험을 다룬다. 죽은 자를 되살리거나 인간의 이중성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신의 영역을 넘는 행위이며 결국 파괴로 귀결된다. 이 역시 아스클레피오스와 디오니소스 신화의 주제와 닿아있다.




고찰




왜 테바이는 늘 칙칙하고 죽음에서만 신성이 태어날까? 세멜레는 타 죽고, 니오베는 아이들이 몰살당하고, 악타이온은 찢겨 죽고,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자를 살리고, 디오니소스는 죽고 또 살아남는다. 이 도시에서는 누군가의 파멸 이후에만 신적인 질서나 구원이 도착한다. 죽음과 부활이 이 도시의 기본 톤인 셈이다.



이 신화에는 유독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불에 타 죽은 세멜레, 자식들을 모두 잃은 니오베, 찢겨 죽은 악타이온, 죽음을 넘어 살아나는 디오니소스와 아스클레피오스. 이들은 카드모스와 직접 연결된 인물들이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신의 심기를 건드리고 파멸을 맞는다. 왜 유독 이들만 이렇게 잔혹하게 무너질까?



카드모스는 그리스인이 아니다. 그는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의 아들이자 아게노르의 여동생 에우로파를 찾아 떠돌다 그리스에 도착한 외부인이다. 그는 이곳에서 아레스의 뱀을 죽이고 그 이빨로 태어난 전사들(스파르토이)과 함께 도시를 세운다. 살육과 신성모독 위에 세워진 도시, 그것이 테바이다. 이후 카드모스는 아레스의 딸 하르모니아와 혼인하면서 신성한 피를 가문에 들여온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예외 없이 몰락한다.



이 계보를 따라가 보면 세멜레는 제우스의 본모습을 보고 타 죽고, 악타이온은 아르테미스를 훔쳐보다 개들에게 찢겨 죽는다. 오이디푸스는 예언을 피하려다 예언을 이룬다. 이곳에서 절대자의 피를 지닌 자들은 두려움을 잊고 금단의 영역을 침범하다 결국 파멸한다. 테바이는 단순히 저주받은 도시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금단의 세계를 시험하는 경계 실험의 무대였던 셈이다.



그런데 왜 테바이에서만 이런 일이 반복될까? 다른 도시들에서는 어땠을까? 아킬레우스는 고난 끝에 영웅적 죽음을 맞았고,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의 몰락 후 로마의 시조가 되었으며, 페르세우스는 괴물을 무찌르고 안정을 되찾는다. 이들은 모두 특별한 피를 지녔지만 절대자의 질서에 도전하기보다는 조화를 이루거나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인물로 남는다. 헤라클레스는 테바이를 떠난 후 고난을 겪되 끝내 올림포스의 신이 되었다. 결국 절대자의 피를 지녔다는 건 파멸의 보증서가 아니었다. 공간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절대자의 피를 물려받고도 예외적으로 잘 된 인물은 없을까? 디오니소스가 있다. 그는 죽은 어머니 세멜레의 몸에서 꺼내져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나고 결국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그 역시 테바이에서 신으로 환영받지 못했으며 자신을 거부한 왕 펜테우스를 직접 파멸시킴으로써 존재를 입증해야 했다. 디오니소스는 신이 되었지만 그 과정은 파괴와 저주로 가득했다.



다른 도시에서 신의 후손은 고난을 겪고도 구원받지만 테바이에서는 도시 자체가 반복적으로 무너진다. 개인이 아닌 공간 전체가 저주받은 듯한 이 구조는 신화 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중 테바이는 아테네, 스파르타와 경쟁하며 강대국이었지만, 늘 정치적 양극단의 사이에 끼어 불안정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는 아테네를 배반하고 페르시아 편에 섰고, 이후 코린토스 전쟁에서는 다시 스파르타에 대항하는 등 줄을 자주 바꾸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철저히 파괴되며 도시의 중심성이 무너진다. 역사적으로도 이 공간은 반복적으로 선택받지 못하고 자멸하거나 외세에 의해 짓밟힌 공간이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포코크의 그리스 속의 인도를 만나게 된다. 그는 디오니소스가 그리스 신이 아니라 히말라야 인근의 디오 나우소스에서 유래했으며 세멜레는 자이나교 여사제 수라메와 닮았다고 주장한다. 디오니소스가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났다는 신화는 산스크리트어로 산을 의미하는 메루와 연결된다고 본다. 카드모스 역시 인도에서 이주한 바하르족과 연관된 인물로 해석된다.

물론 현대 언어학에 따르면 페니키아어는 셈족 계열, 산스크리트어는 인도유럽어족으로 계통이 전혀 다르다. 포코크의 주장은 음운적 우연을 과잉 해석한 면이 많다. 하지만 중요한 건 포코크가 신화를 고립된 민족의 창작물이 아니라 이동하고 섞이며 흘러온 유기체로 보았다는 점이다. 그 관점에서 보면 테바이는 단지 외래 혈통의 도시가 아니라 신화가 스스로 경계를 실험하는 실험실이 된다.



카드모스의 조상 계보를 살펴보면 이오는 제우스가 사랑한 여인으로 이집트까지 흘러가고, 그 후손 벨로스와 아게노르로 이어진다. 카드모스는 바로 그 계보 위에 있는 자다. 그가 세운 테바이는 그리스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온 피가 만든 도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그 특별한 혈통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주목을 끌어들이는 저주의 징표처럼 작동한다.


신의 피는 축복이자 위험이었다. 그것은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선다는 뜻이고 더 강한 시험을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카드모스 혈족은 그 경계에서 자주 흔들렸고 그만큼 자주 무너졌다. 테바이는 신의 피를 순화하지 못한 공간 혹은 그 피를 실험하다 파열음을 낸 무대였는지도 모른다.



결론



테바이의 저주 신화를 살펴보면 이런 결론에 닿게 된다. 특별한 피가 저주의 근원일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저주받은 도시의 반복되는 비극은 이런 질문을 남긴다. 당신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가? 언제나 되묻는다. 너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곳은 이 질문이 반복되어 울려 퍼지는 무대였다. 신의 피, 외래의 피, 인간의 욕망, 신의 분노. 그 무엇도 감당하지 않으면 무너짐으로 되돌아온다. 당신은 당신 안의 테바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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