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The Fxxx Is Going On? (전편)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자칫 감흥을 헤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이 영화를 노동과 계급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우선 숀 베이커 감독 자신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에서 "세상의 성 노동자들에게 바친다"고 언급했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아도 그렇다. 더구나 노동과 계급 문제는 비평에서 주로 다루는 접근법이고 이 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완전히 눈 감고 논의를 이어가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 관심은 그게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특이했던 지점은 어떤 집요한 반복성이다.
뉴욕타임스도, 이동진 평론가도 <아노라>에 대해 처음은 <귀여운 여인>을, 중간은 <언컷 젬스>를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귀여운 여인>에 등장하는 성노동 신이나 섹스신이 <아노라> 만큼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지는 의문이다. <언컷 젬스> 역시 마찬가지다. 원석의 신비함에 매료되어, 정확히는 그 신비함이 가져다 줄 부의 가치에 매료되어, 아차 싶은 순간에 자신의 손을 떠난 '원석'을 다시 손에 넣기 위해 뉴욕의 밤거리를 맹렬하게 헤매고 다닌 주인공이, <아노라> 만큼이나 자신이 처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해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같은 질문을 퍼부으며 하나의 곤경에서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발버둥 쳤는지는 의문이다. 여기에서 방점은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영화의 시작. 붉은 빛으로 꽉찬 공간에 스트립 댄서들이 관능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이들을 하나하나 카메라가 비추며 옆으로 지나간다. 영화가 시작되는 장소가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는 숏이다. 여성 댄서들이 홀에 앉아 있는 남성 손님들을 1인실로 이끌고 간 다음, 무릎 위에서 가슴과 엉덩이를 흔들면 손님들은 댄서의 골반 끈에 달러 지폐를 두둑이 팁으로 꽂아준다.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이다. 영화 초반, 우리는 그렇게 애니, 혹은 아노라가 일하는 곳이 어디이고 어떤 방식으로 노동과 대가가 교환되는지를 알게 된다. 상황 설명 끝.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는 끝이라고 생각한 지점에서 끝낼 생각이 없다. 대신 이를 한동안 반복적으로 이어나간다. 이 가운데에는 술 취한 손님에게 ATM에 가서 돈을 뽑아오라고 소리치거나 술집 뒷골목에서 담배 한 모금과 함께 동료와 소소한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도 있지만, 역시나 1인실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상대로 하는 그들의 본업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어째서?
물론 숀 베이커는 감각적인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스타일을 빼고 말하긴 힘들다. 영화의 시작, 스크린 속 색감과 낮게 쿵쾅거리는 비트, 유동하는 카메라, 그리고 스트립 댄서들의 몸짓에 눈을 떼기 어렵다. 그러나 반복은 지루한 법이다. 영화의 초반 무드를 설정하는 기능이라 여겼던 숏들이 멈출 줄 모르고 나열될 때 화려한 이미지가 주었던 약간의 설렘과 흥분은 조금씩 가라앉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반복이 우리에게 주는 1차적인 정서다. 누구보다도 스타일에 눈 밝은 숀 베이커가 이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반복은 숀 베이커의 실수나 무의식적인 결정이 아닌 의도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또 다른 가정. 혹시 자신이 만든 황홀한 이미지에 스스로 도취되어 계속 바라보고 싶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영화 전체가 그런 방식으로 흘러가야 하지만 두 번째 막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의 반복이 등장한다.
2막으로 넘어가기 전에 반복에 대한 언급 하나 더. <아노라>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계약 연애를 하는 일주일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이다. 이 계약은 물론 돈으로 성립된다. 돈이 넘쳐나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같은 러시아 재벌 2세 반야가 제안한 금액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면서 성공한 딜. 그와 함께 즐기는 호화로운 생활에 애니에게 근심 걱정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이 때 대사는 제한적으로만 등장하고 그들이 유흥을 즐기는 모습과 섹스는 반복적으로 나열된다. 놀고 먹고 자고, 놀고 먹고 자고, 놀고 먹고 자고... 그러는 사이 농담처럼 시작했던 결혼 이야기는 반야의 "나 진지해"란 말과 함께 한밤중에 라스 베이거스에 있는 어느 예배당으로 달려가며 현실이 된다. 결혼 직후에도 그렇긴 하지만 계약 연애 기간 동안 유흥과 섹스는 왜 그토록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걸까. 일정 시간이 지나자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화려한 돈 잔치와 선정적인 장면에 다소 무감각해지지만, 즐기는 쪽에서는 지치는 법이 없다. 그들이 향유하는 그 시간 만큼은 애초 휴식 따위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늘어지게 잠을 잔 뒤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아. 휴식 시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섹스가 끝난 뒤 반야가 게임하는 시간. 이 때 반야는 화면에서 눈을 뗄 줄 모른채 조이스틱을 만지작거리고, 그의 옆에 몸을 기댄 애니는 권태로워 보인다. 어쩌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순순히 좇아갈 뿐인 반야에게서 무언가 불안을 느꼈을 지도. 바로 그때 울리는 문 두드리는 소리. 쿵. 쿵. 쿵. 이 불길한 노크와 함께 영화는 두 번째 막으로 전환된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블랙 코미디로. 크리스탈 구두를 (잠깐) 신었던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집 나간 왕자를 찾아서 떠나는 로드 무비로.
막아서는 반야를 밀어내고 억지로 문을 밀고 들어온 두 남자. 그리고 잠시 뒤 합류하는 또 다른 남자. 러시아 재벌 집안인 반야의 부모가 아들 허튼 짓 못하게 잘 감시하라고 붙여놓은 심복들이다. 하지만 사람을 겁주고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는 데에는 전혀 익숙지 않다. 반야가 결혼했는지 확인하고, 혼인을 무효화한 다음, 여자를 쫓아내버리고 반야를 부모님 앞에 데려다 놓는 것이 이들이 집을 방문한 목적이지만 집에 도착해서 그들이 정작 보여주는 모습이라곤 허둥지둥 우왕좌왕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애니는 반복적으로 외친다. "반야, 이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What the fxxx is going on?") 한 두 번 나오다 말고 다른 질문으로 이어질 줄 알았던 이 질문은 멈출 줄 모르고 거듭된다. 언제까지? 애니가 어안이 벙벙해서 이 모든 상황을 그저 지켜보는 사이, 옷을 대충 껴입은 반야가 혼자서 문 밖으로 달아나 버릴 때까지. 설명은커녕, 아내를 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남편. 문자 그대로, 이 무슨 '개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더구나 '개 같은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이제 남은 수순은 애니에게 적당히 겁을 주고 돈으로 입막음해서 반야와의 혼인 관계를 무르고 다시는 반야 주위에 얼씬도 못하게 쫓아내는 거다. 아니면 쥐도새도 모르게 없애버리거나. 물론, 반야가 어디로 갔을 지 정보를 충분히 얻어낸 다음에. 더구나 남자 셋, 여자 하나. 물리력으로만 본다면 상대가 되지 않을 조건이다. 하지만 숀 베이커는 영화에서의 경제성 원칙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아니, 오히려 이들 사이에 지리멸렬한 물리적 대치가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도록 내버려둔다. 그들은 애니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신체를 구속할 생각이 없다. 나가게 해달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애니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진정하라고 사정하는 것 뿐이다. 한 명은 애니의 발길질에 코뼈가 부러지고, 또 다른 한 명은 길길이 날뛰는 애니를 전화기 코드로 꽁꽁 묶어두지만 이내 가장 형님 뻘이자 리더 격인 나머지 한 명으로부터 "지금 뭐하는 짓이냐, 빨리 풀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손발이 척척 맞지도 않고 이런 일을 하기엔 스스로 부여한 이런 저런 제약이 많다. 말하자면 이런 일을 하기엔 지나치게 신사적이다. 러시아 재벌 주인님의 명령에는 복종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법규를 위반해선 안 된다고 스스로 한계를 설정해 놓은 듯 하다. 왜 그래야 했을까. 그들 개인적인 양심의 문제?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주인 입장에서 아들이 이런 일을 저지를 경우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심복들은 이제까지 해보지 않은 업무에 투입되느라 진땀을 뻘뻘 흘릴 수밖에 없다. 해보지도 않은 일을 자기 몸 희생해가며 억지로 해야 하는 심복들 입장에서도 결국 이는 '개 같은 상황'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억류하려는 이들과 억류되지 않으려는 자. 혼인 관계를 부수려는 세력과 혼인 관계를 지키려는 이. (아마도) 경제적 보수를 받고 일하는 피고용인들과 (역시나 처음엔 경제적 보수를 받고 일하는 계약 관계였지만 지금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보장될 혼인 계약을 지키려는 배우자. 목적은 전혀 다르지만 이들 사이에 유일한 공통분모가 있다면 그건 바로 사라진 반야를 찾는 일이다. 남자 셋 여자 하나는 그렇게 추운 겨울 뉴욕 길거리를 정처없이 헤매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