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 끝나지 않은 이야기 9
이 글을 한창 써 가던 중 나는 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몇 가지 일을 진행했다.
첫째, 아버지의 유언장을 작성했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현재 아버지가 거주하시는 집을 비롯한 몇 안 되는 재산이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 자식이 아니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엄마에게 상속될까 봐 걱정하셨다. 법률적인 문제를 알아보니 사실 몸 불편한 엄마가 자신의 상속분을 요구하지 않으면 별 문제는 없는데, 그래도 아버지의 뜻을 확실히 전달하는 자필 유언장을 써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아버지의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를 작성했다.
사람들은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는 부모님의 '마지막'에 대해서만 주로 상상을 해서 상조회사에 가입을 하곤 한다. 하지만 엄마로 인한 경험을 하고 나니 사실 부모님이 마지막을 맞기 전, 환자 상태로 꽤 오랜 시간 계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에게도 올 수 있는 이런 투병의 시간 동안 아버지는 당신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의미 없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싶어 하셨다. 이것을 본인이 정해두지 않으면 이를 결정해야 할 순간에 자식들은 아버지의 의사와 상관없이, 치료 거부를 결정하기가 너무도 힘들 것이다. 자식 된 입장에서 치료 거부 자체가 불효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엄마는 이런 사전 의향서를 작성하지 못한 채 이미 온전한 판단을 할 수 없는 병에 걸려버렸다.
셋째, 오빠를 아버지의 임의후견인으로 지정했다.
만약 아버지가 엄마처럼 정상적인 판단하지 못할 상황에 처하면 아버지에 대한 신변 대리를 오빠가 하도록 한 것이다. 오빠와 나 둘 모두를 후견인으로 정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사무를 처리할 때 우리 둘 모두가 함께 움직여야 해결되기 때문에 편의상 오빠 한 명으로 정했다.
넷째, 아버지와 엄마의 영정사진을 준비해두었다.
몇 년 전, 어버이날 행사로 온 가족이 스튜디오에 모여 사진을 찍었는데 그중 하나를 영정사진 용도로 인화해두었다. 지금의 아버지와 엄마의 나이와 괴리감이 없으면서도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가 담긴 것으로, 예쁘게 잘 보정해두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것을 더 준비해야 할지 계속 알아보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런 일들에 대해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엄마의 병치레를 혹독히 치른 우리 가족의 경험으로 볼 때, ‘닥치면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닥치면 우왕좌왕하다가 고생만 한다.’ 특히, 엄마 같이 긴 투병을 요하는 병이 가족에게 올 수 있음을 가정하면, 마지막이 아니라 오히려 환자와 함께 오래 살아갈 날들을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혹여 기우인 듯 보일 수 있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준비는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맞다.
한편으로는, 이런 준비가 부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과는 별개로 나는 그동안 갑작스러운 상황에 발목 잡힌 ‘비자발적 효자’가 된 현실에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관련해서는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하고 싶었다.
사실 수백 년 동안 효도가 절대 가치임을 강조해왔던 이 유교 사회에서는, 준비를 이유로 부모의 늙음이나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불효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부모가 죽기를 바라고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엄마의 투병 덕분에 우리 집에서는 이런 준비를 위한 가족끼리의 대화가 매우 자연스러워진 상태다. 이것도 엄마 ‘덕’이라면 ‘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