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 속 아동미술

왜 고래였을까

by atree

일본 어린이 재단과 일본 광고 협회가 제작한 광고 한 편이 있다. 1990년대 후반 또는 2000년대 초반에 제작한 영상으로 어린이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존중하자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미술시간.

아이들은 얼룩 고양이, 분홍 토끼, 커다란 곤충 등을 밝은 색으로 그리고 있다.

한 남자아이는 화지 전체를 아무 형태도 없이 온통 검은색으로만 채운다.

마음속에 생각나는 걸 그리라고 했던 선생님의 표정은 이내 굳어지고 가정 방문 상담이 이루어진다.

아이는 그 순간에도 자기 책상에서 계속 도화지 전체에 검은색을 칠했다.

병원에서 의사가 뭘 그린 거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저 도화지 전체를 검은색으로 속도 내어 칠하는 데 열중할 뿐이다.

벽과 바닥이 온통 흰색인 정신병원처럼 보이는 넓은 방 중앙 테이블에 아이가 앉아 있다.

담임 선생님은 빈 교실에서 아이의 책상에 앉았다가 퍼즐을 발견하고 뭔가 퍼뜩 떠오른다.

병원의 간호사도 바닥에 늘어놓은 도화지들을 보다가, 유레카!.

퍼즐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황급히 앉아서 그림들을 맞춰본다.

부모와 선생, 의사, 간호사, 어른들이 모두 분주해졌다.




-그림 아닌 그림을 모두 모아서 강당에 펼치고 퍼즐을 맞추니 어떤 모습이 드러났을까?

수 백 명이 서 있을 수 있는 만큼의 도화지가 강당 바닥을 채운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색 고래가 누웠다. 어른들은 높은 곳에 올라서야 보이는 고래를 아이는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가운데 한 장만 비어있다. 이 빈 공간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고래가 숨구멍으로 힘찬 물기둥을 뿜어낼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힘찬 꼬리로 바다를 치고 올라오면서 말이다. 마지막 퍼즐을 들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왜 퍼즐로 만들어야 했을까

아동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자 했을 때 역시 어린 왕자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은 어른들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서울 리 없는 작은 모자로만 보일 뿐이다. 어린 왕자는 보아 뱀이 모자가 아닌 것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비행사를 놀라게 한 어린 왕자가 요구한 것은 작은 양을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비행사는 양 대신 상자를 그려주고 양은 그 안에 들어있다고 했다. 어린 왕자의 별은 아주 작았고 상자 속의 양은 풀을 많이 먹지 않을 것이다. 어린 왕자는 만족했다. 어른이라면 화를 냈을 것이다.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설명을 해도 어른들은 자신의 잣대로 못 그렸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왜 고래였을까

아주 작은 아이가 그린 거대한 고래. 왜 고래일까를 생각해 보자. 고래는 흐르고 있어도 작은 개울이나 호수처럼 넓어도 갇힌 물에서는 살 수 없다. 거대한 몸체로 심해를 누비는 생명체다. 멸치나 까나리 같이 작은 물고기는 고래의 전체를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른들의 점점 좁아진 시각으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처럼.




자, CF속의 아이의 고래와 비행사가 어렸을 때 그린 보아뱀의 공통점이 생겼다. 모두 어른들의 빈약한 시야에 담기지 않는 아이들의 상상력이다. 어른들은 고작 머리에 쓸 수 있는 모자 정도를 생각해 내지만 아이들은 그 작은 도화지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도 그려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CF를 본 시청자들은 답답했을 것이다.


‘고래를 그리고 있다고 말을 하지!’.


글쎄? 아마 왜 그렇게 크게 그리냐, 한 장 안에 다 들어가게 그려야지 종이마다 그게 뭐냐. 그 옆에 작은 물고기도 그려라, 고래가 입을 크게 벌린 것처럼 그리고 이빨도 그려 넣어라 등등 간섭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원에서도 아이가 선생님이 자신의 그림을 존중하고 지지해 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표현을 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 CF속의 담임선생은 아마도 아이에게 그림 표현에 있어서의 신뢰는 못 얻었던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의 그림 속에 그 힌트가 보인다.




아이는 그림으로 직접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다. 말보다 결과물을 보여 주려고 속도를 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깊고 넓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를 그리고 있어요, 내 상상력과 잠재력만큼이나 큰 고래를요. 내가 그리고 싶은 건 손바닥만 한 고래가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작지 않다고요!.




아이는 온통 검은색으로만 칠했다. 미술치료적 시각으로 본다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답답함이 드러난 것처럼 보인다. 어른들은 아이의 그림 행위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문제 삼았다. 아이는 학교에서도 병원에서도 어른들로부터의 저항에 굴하지 않았다. 심해의 침묵으로 고래처럼 무게 있는 저력을 보여준 것이다. 너무 나간 해석일까? 아이들의 그림을 읽어내기 위해서 때론 더 나아가는 상상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 영상 마지막에 자막으로 말하는 바가 바로 그 지점이다.




How can you encourage a child?
Use your imagination.

어떻게 아이를 격려할 수 있을까?
상상력을 이용하라.










사진: Unsplash의 Todd Crav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