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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Jun 16. 2021

그때 그 시절, 틴더대신 바닷가 돗자리팅

여름이야기


뭐? 지금 당장 바다로 뜨자고?



어쩌다 모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 생일이었던가, 아니면 종강이라 우리들만의 파티를 하고 있었던가. 여하튼 신나게 놀다가 분위기 제대로 탄 우리들, 흥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 외쳤다. 바다로 떠나자고.


노는 데에 있어선 누구보다도 죽이  맞는 친구들이었다. 계획 같은  아무것도 없었다. 출발하면서 정한 목적지는 경포대. 당장 내일 입을 옷도 오늘  곳도 없이 무작정 그렇게 떠났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여름방학이었다. 한 해 휴학하고 돌아온 학교, 부지런한 동기들은 이미 졸업한 뒤라 남은 두 학기는 쓸쓸하게 보내겠구나 싶었다. 이참에 취업준비나 착실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기억도 난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박진감 넘치게 시끌벅적 보냈던 마지막 학년이었다. 무엇보다 B 덕분이었다. B는 우리 과에 재수해서 들어온 같은 고등학교 친구. 본인 친구들 무리에 혼자가 된 나를 자연스레 껴 주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츤데레 카리스마 스타일로 인기 많던 친구였는데 대학교 와서도 역시나 마찬가지. 그런 B덕분에 어색하지 않게 한 학년 아래 후배들과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경포대 여행도 B 없었다면 꿈도  꾸었을 일이다. 충청도 청양에서 돼지농장을 하는 부모님 덕분에 금전적으로 넉넉했던 B 우리  유일하게 본인 소유의 차가 있었다. 바다로 떠나자던 누군가의 외침에 이러쿵저러쿵 툴툴 대면서도 바로 집에서 차를 가지고 나온 B. 이러니 반할 수밖에!


@Julie Tupas / unsplash.com


고속도로를 몇 시간 달린 끝에 드디어 도착한 경포대. 밤 아홉 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바다를 본 우리의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비릿한 바다 내음에 한껏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해변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바다를 마주한 순간 일동 당황했다. 왁자지껄한 흥겨운 피서지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가로등조차 다 켜지지 않은 썰렁한 모래사장만 둥그러니. 기대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경포대였던 거다.


겨우 6월 중순이었다. 본격적인 피서철인 7월 중순에 비해 엄청 이르게 찾아왔던 것. 콩나물시루같이 많은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바다도 싫지만 아무도 없는 바다도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해운대로 틀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즐기기로 했다. 막상 해변 안쪽으로 들어가니 놀러 나온 현지분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고 열 시가 넘자 돗자리를 깔고 제대로(?) 노는 팀들이 하나둘씩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돗자리팅인가!


돗자리팅이란 해안가에서 서로 각자 놀던 돗자리끼리 합석이 이뤄지면서 함께 미팅하듯 노는 걸 뜻한다.


여자 다섯 명이었던 우리와 돗자리팅을 하게 된 분들은 세상 순박하게 생기신 남자 세 분이었다. 조금 친해지고 나니 배고파하는 우리들을 위해 본인들 숙소에서 고기를 구워주겠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


배도 고프기도 했지만 수적으로 우리가 우세인 만큼 별일이야 있겠냐며 따라나섰다. 그들이 차로 먼저 앞서고 우리가 뒤를 쫓았다. 금방 도착할 줄 알았는데 십 분 넘게 이어지던 숲 속 산길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 이래도 괜찮은 걸까?



무서웠다. 처음 보는 남자들 따라 들어가던 인적 드문 어둑한  . 이대로 가다 무슨 사달이 나는  아닌지, 이러다 뉴스에 나는  아닌지 다들  마디씩 의심과 경계의 날을 세우고 있던 그때, 갑자기 멈춰  앞서가던 남자분들의 .


@John Towner / unsplash.com


다 왔다고 내리라고 전화가 왔다. 그러나 겁에 질린 우리는 아무도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남자분 한 명이 우리 차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쩔 줄 모른 채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던 차 안, 순간적으로 ‘철컥’ 하는 소리에 짧은 비명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죽고 싶진 않았는데!


알고 보니 위기를 느낀 B가 재빨리 잠금 버튼을 눌러 차 문이 자동으로 잠기던 소리였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남자분이 제멋대로 차 문을 여는 소리라 생각했던 거다.


그렇게  속에서 한여름밤 공포 스릴러  편을 찍은 우리는 결국 내렸다. 스물 초반 젊은 혈기에 우리 다섯이면 어떤 위험도 이겨낼  있다고 생각했던  같다. 그렇지만  손엔 휴대폰을   채로.


잠깐이나마 의심했던 마음이 미안할 정도로 그들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진수성찬을 차려내었다. 가져온 고기를 다 꺼내 정성스럽게 바비큐 해 주었을 뿐 아니라 3일 치 여행 식량을 털어 우리의 안주로 제공해 주기도 했다.


그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해 일하고 있는 한 두 살 많은 직장인들이었다. 늘 주변엔 비슷한 처지의 대학생들만 있었기에 그들이 들려주는 고졸 출신 직장인의 애로사항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처럼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자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네 시.


동해까지 왔는데 일출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며 정동진으로 향했다. 초여름 새벽의 바닷바람은 쌀쌀했다. 바람에 사정없이 날리던 떡진 머리 진정시켜가며 정동진 해변 모래 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았다.


빌린 겉옷을 걸친 채 조용히 해가 뜨길 기다렸다. 무릎에 머리를 포개어 한 3초 정도 눈 붙인 것 같은데 벌써  날 흔들어 깨우는 B. 그때였다. 잠에 취해 제대로 뜨지도 못한 눈에 들어오던 보라색 하늘.  순식간에 수평선 주변 하늘이 환해지더니 어느새 바다는 검붉은 둥그런 태양을 토해 내었다.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함께 본 첫 일출이었다. 일출의 놀라운 감격을 뒤로하고 비몽사몽 동해를 떠나 다시 서울로 향했다. 착했던 그들과도 그렇게 안녕이었다.


무작정 대책 없던 바다 여행도, 다른 세계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던 돗자리팅도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돌아켜보면 아찔하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무모한 용기로 미친 듯 놀아야 후회 없다고 부르짖던 이십 대 초반의 청춘들, 파릇한 젊음이 배짱이었을까.


그랬던 우리들이 이제는 혼자서 걷는 아이만 봐도 다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겁 많은 엄마가 되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데이트할 사람 찾는다는 까마득한 후배를 걱정하는 꼰대 직장인이 되었다.


, 우리의 그해 여름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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