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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May 21. 2023

보스턴 만수형과 큰딸

20년 전 앞니가 부러졌던 큰딸이 대학을 졸업했다.

보스턴 유학시절에 만난 만수형. 원래 이름은 민수지만, 난 만수형이라 부른다. 민수는 뭔가 세련되고 멋있는 이름이라 나는 민수보다는 만수가 형에게 더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만수형이 세련되지 않았다거나 멋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유학 당시 형의 모습은 세련되고 멋있는 사람이었지만, 내게 세련되고 멋있는 모습 속에 있는 만수의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소 풀 먹이러 산으로 들로 다닐 것 같은 순박한 형의 모습말이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형을 만수라 부르기 시작했고 형은 나를 놀부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형의 감춰진 시골청년의 순박함을 보았다면 형은 감춰진 장난기와 심술사이에서 즐겁게 그네를 타는 내 모습 보았던 것이다. 기분 나쁘지 않은 별명이다. 

거의 20년 전, 큰딸 3살 되던 해 결혼기념일날 만수형은 기념사진도 찍을 겸 하버드 브릿지로 놀러 가자고 했다. 사진 취미가 있는 형은 멋진 필름카메라를 들고 우리의 모습을 찍었다. 나름 느낌 있는 사진이다. 화창한 가을날 우리는 하버드 스퀘어를 지나 하버드 브릿지를 걸었다. 여기서 우리는 아내, 나, 만수형, 그리고 큰딸 (당시는 큰 딸 밖에 없었다)이다. 신나 먼저 걸어가던 딸이 하버드 브릿지 앞 계단을 오르다 넘어졌다. 얼굴을 계단 모서리에 부딪히며 정확히 앞니 두 개가 똑 부러졌다. 감사하게도 얼굴을 다치지도 않았고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니 부러진 치아는 유치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형과 우리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금요일 밤마다 모여 떡볶이와 맥주를 마셨고, 같이 놀러 다녔고, 같이 수업도 듣고, 같이 공연도 하고 끝나면 또 떡볶이와 맥주를 마셨다. 보스턴 샘 아담스는 맛있었다. 유학시절 만나 친하게 되면 가족이 되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고, 이사를 하면 가서 같이 짐을 싸는게 당연하며, 무슨 일이 있으면 당연히 가서 같이 해결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나는 보스턴을 떠나 뉴저지로 그리고 한국으로 왔고 만수형은 그때 이후로 쭉 보스턴에 있었다. 우리가 뉴저지로 가기 얼마 전 만수형은 결혼했다. 만수형에게는 과분하기 이를 데 없는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착한 형수를 만났다. 나도 꽤 괜찮은 사람 아니냐며 형은 우길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내가 만수형이라 부를 수밖에…


시간이 지나, 20년 전 앞니가 부러졌던 큰딸이 대학을 졸업했다. 봄 방학 때 보스턴 만수형네 가서 잘 놀고 왔는데 이번에 졸업하고 또 보스턴에 놀러 가서 만수형네 지내게 되었다. 봄에는 혼자 갔고 이번엔 사촌과 함께 갔다. 미안하지만 고맙고 든든한 마음이 더 크다. 큰딸이 보스턴에 가는데 형네 말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큰딸아, 혹시 하버드 브릿지 만수삼촌이랑 같이 가게 되거든 만수삼촌 손 꼭 잡고 계단 조심해서 천천히 올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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