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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것들에 대하여
By 윤정희 . Jan 04. 2017

외할머니의 김치

내가 눈물 흘리는 것들에 대하여_1



 아무리 사람이 먹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지만, 먹지 않고서도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고, 나는 하고 싶은 공부를 꼭 해야만 한다며 그동안 하던 모든 경제활동을 정리하고는 책상 앞에 앉았었다. 분명히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둔 학생이었고, 아빠와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 두 자매를 조금이라도 부족함 없이 지원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휴일 없이 일하시는 상황을. 그리고 또한 알고 있었다. 맏딸인 내가 그 흔한 아르바이트조차 하지 않고 일 년이란 시간 동안 서울의 전셋집을 하나 차지하고 앉은 채 공부에만 매진하고 싶어 하는 것이 얼마나 막무가내로 부리는 욕심인지를.


 어찌 됐든 나는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질기고도 거친 허리띠는 더욱더 강하게 조여졌다. 한 칸짜리 방에 들어앉아 하루 일과라고는 잠, 밥, 공부뿐이었고 어쩔 때는 일주일 동안 집 밖 공기를 쐰 적이 없을 때도 있었다. 타고난 것인지 혹은 언제부터인가 길러진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난 성취욕이 높고 설상가상으로 예민한 성격 탓에 무언가에 집중을 할 때면 그 집중의 대상 외에는 어떤 것도 거추장스럽고 번거롭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일까, 좁은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두며 공부하던 때에 가장 빠르고 가장 먼저 사라졌던 것이 식욕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몇 번을 태워먹었는지 거뭇거뭇한 냄비에 물을 받아서 컵수프를 타는 것. 그마저도 입맛이 없거나 속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 이상을 버리기 일쑤였다. 점심밥을 챙겨 먹으면 졸리다는 이유로 건너뛰었고, 저녁은 간간히 챙겨 먹었다. 전기밥솥에서 겨우겨우 숨을 쉬고 있는 눌은밥을 주먹만한 크기로 잘라내어 삼분 짜장이나 즉석조리반찬과 먹었다. 혹시나 내가 굶어 죽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남자 친구가 사다 놓은 각종 초콜릿과 사탕이 유일한 내 에너지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오래도 버텼다. 결국 겨울의 초입에서 나는 탈이 나고 말았다. 처음으로 내 발로 걸어서 병원을 간 날이었던 것 같다. 그냥 병원만 간 것이 아니라 내가 제일로 싫어하고 무서워하고 피하고 싶은 링거까지 맞았다. 이 와중에도 나는 내가 아픈 것보다 아파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 병원을 다녀오고 링거를 맞는 시간이 아까운 것이 가장 많이 서러웠고 힘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엄마가 전화를 해왔다. "너 왜 엄마랑 한 약속 지키지 않니?"


 그 약속이라는 건 이러했다. '공부를 하는 동안은 무엇보다도 건강 관리에 최우선으로 노력할 것'과 '아프면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꼬박꼬박 밥을 잘 챙겨 먹을 것'이었다. 사실 원래의 내 다짐도 이와 같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부터 식욕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책상에서 앉은뱅이를 자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 어느 날 밤 갑자기 배가 고팠다. 아침에 점심, 저녁까지 끼니를 챙겨 먹은 날이었는데도 갑자기 배가 지독히도 고파왔다. 그래서 그 한밤중에 냉동실에 고이 아껴두었던 LA갈비 한 봉지를 꺼내어 몽땅 구워낸 후 고봉밥을 떠서 허겁지겁 먹는데, 불현듯 내가 추하게 느껴졌다. 우울하다, 안쓰럽다, 불쌍하다, 이런 단어들과는 별개의 의미로 그냥 문자 그대로 내가 너무나도 '추하게' 느껴졌다. 이 시간까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을 아빠가 생각났고, 하루 종일 제대로 된 한 끼조차 챙겨 먹었는지 모를 엄마가 생각났고, 어떤 것에도 욕심부리는 모습을 본 적 없는 동생이 생각났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고, 그 뒤로는 어떤 음식도 나를 배고프게 하거나 배부르게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엄마가 택배를 보내왔다. 외할머니가 날 주려고 따로 담그신 김치라고 했다. 사실 요즘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다는 말을 차마 하지는 못하고 그저 맛있게 먹겠다고 대답했다.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 꽁꽁 싸매어진 김치통을 열었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없이 내 얼굴을 정면으로 덮치는 외할머니의 냄새는 나를 소리 내서 울게 했다. 배추 포기를 그대로 담가서 보내면 안 그래도 귀찮음 많은 손녀딸이 김치를 챙겨 먹지 않을까 싶었는지, 김치는 먹기 좋은 크기로 하나하나 찢어져있었다. 눈물은 계속해서 흐르는데, 혹시라도 눈물이 김치통 안으로 들어가진 않을까 눈물이 차오르는 족족 옷소매로 바쁘게 닦아내면서 나는 오랜만에 밥을 한 공기 떴다. 김치를 소복하게 덜어낸 후에, 자리에 앉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밥 한 공기를 말끔하게 비워냈다.


 할머니가 매운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에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껌뻑거리는 모습과, 배추잎 하나하나 들어가며 속을 꼼꼼히 채워 넣는 모습과, 언제쯤 손녀딸에게 김치를 보내면 좋을까 익어가는 김치를 들여다보는 모습과, 딱 먹기 좋게 익은 김치를 한입 크기로 찢어내는 모습과, 서울까지 가는 도중에 국물이 새지 않도록 단단히 입구를 묶는 모습과, 최대한 빠르게 택배를 부치라고 당부하며 엄마에게 김치를 전달하는 모습과, 그리고 그 김치를 택배로 부친 후 신나는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거는 엄마의 모습과. 그 온갖 모습들이 나를 눈물 흘리게 했다.


 분명 나를 가장 배부를 수 없게 했던 것이 가족인데 또한 나를 가장 배부르게 하는 것도 가족이었다. 외할머니의 김치, 그게 뭐라고 잊고 지냈던 처음의 다짐과 나에 대한 믿음이 밥 한술에 한 움큼 또다시 밥 한술에 또 한 움큼 살아났는지, 그 누가 속시원히 말해줄 수 있을까. 





<온갖 것들에 대하여>


글. 윤정희(@audrey_heal)

사진. 안진현(@gaek_pik / momentproje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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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스치는 것들에 아파하고 기뻐하며 그것들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언제 어디선가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진 그대가, 나와 같은 것들에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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