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멈추면 도시는 숨을 쉬지 않는다.
공업도시인 창원에서 자라며, 나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배웠다.
아침 7시 무렵, 버스정류장 앞에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던 모습.
점심시간이 되면 조그마한 식당에 분주하게 들락거리던 기계부품회사 직원들.
그리고 퇴근 무렵엔 시장과 마트, 포장마차가 살아 움직였다.
그것은 단지 한 개 기업의 움직임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순환하는 리듬이었다.
누군가는 공장에서 부품을 깎고, 누군가는 그 사람에게 국밥을 팔고,
다른 누군가는 그 월급으로 자녀의 학원비를 냈다.
공장은 생산의 공간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지역사회의 순환 중심축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리듬은 끊어지기 시작했다.
작은 하청공장이 폐업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었고,
주변의 치킨집, 편의점, 어린이집이 하나둘 문을 닫는 것도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이제 사람들은 공장의 사라짐을 ‘하나의 일상적 변화’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야말로 지역경제의 구조가 붕괴되고 있다는 징후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단지 공장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공장이 잊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제 ‘공장’이라는 단어에서 미래를 떠올리지 않는다.
기술도, 산업도, 청년도, 모두 공장과 멀어진다.
대한민국의 산업정책 역시 그렇다.
2000년대 이후 우리 정부는 산업고도화, 디지털 전환, 스마트 시티, 탄소중립 등
거대한 화두들을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했다.
물론 그 방향은 시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초가 되는 전통제조업,
특히 지방에 자리한 뿌리산업은 구조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났다.
첨단산업은 하늘을 나는 꿈을 제공했지만,
정작 그 꿈을 지탱하는 기계는 여전히 바닥에서 만들어진다.
반도체도, 전기차도, 방산무기도, 기초 가공 없이 완성될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초를,
즉 가공, 열처리, 금형, 절삭, 용접과 같은 단어들을
정책 보고서나 예산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어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것은 지방이다.
왜냐하면 그 ‘잊힌 공장들’ 대부분이 지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공장은 단지 노동의 장소가 아니라,
지방이 중앙과 연결되는 경제적 통로였다.
공장이 멈추면 그 도시의 상권이 위축되고,
상권이 위축되면 이주가 늘어나고,
이주는 교육과 돌봄, 주거 시장까지 줄줄이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정책은 이 공장들의 연쇄작용을 고립된 사건으로만 인식한다.
예컨대 어떤 군소 금속 가공업체가 폐업해도,
그것이 지역 소매경제, 부동산 시장, 고등학교 취업률, 버스 노선 폐지까지 연결된다는 사실을
거시적 프레임에서 다루지 않는다.
군산이 그랬고, 구미가 그랬고, 지금의 창원도 점점 그 길로 가고 있다.
공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존재하되 말해지지 않는 것’이 되었다.
정책 설계자도, 대중 담론도, 정치적 프레임도 공장을 다루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하지 않고,
부모들은 자녀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꺼린다.
언론은 공장의 혁신보다 창업의 스토리를 더 좋아하고,
정치인은 제조업보다는 바이오, AI, 모빌리티 같은 단어를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노동력 미스매치와 기술 단절로 이어진다.
대한민국 제조업 현장은 이미 고령화됐다.
용접을 할 줄 아는 청년이 귀하고, 절삭기계를 다룰 줄 아는 젊은 노동자는 희귀종이 되었다.
사람이 없으니 기계도 돌지 못하고,
기계가 돌지 않으니 공장 전체가 기술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는 그동안 당연하게 수입하던 부품 하나가 없어서
국내 생산라인이 멈추는 상황을 경험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절실히 깨달았다.
“공장은 단지 생산시설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기반이다.”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선,
그 지역에 무언가를 ‘건설’하기 이전에
‘지켜야 할 가치’를 인식하는 게 먼저다.
나는 공장이 바로 그 가치라고 믿는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하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기반.
이제 우리는 다시 공장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공장의 부활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숨을 다시 불어넣는 일이며,
지방을 단지 ‘소외된 곳’이 아니라
‘다시 살아야 할 곳’으로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나는 정책에 질문을 던진다.
공장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들이 만드는 부품 하나하나가
이 나라의 방산, 조선, 전기차, 반도체의 실핏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정확히 바라보고 있는가?
지방은 낙후된 게 아니다.
단지 우리가 그곳을 지금의 언어로 말하지 않아서다.
공장도 마찬가지다.
단지 우리가 그 가치를 설계하지 않아서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가장 깊은 단면에는 언제나 제조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