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가장 아픈 기억과 가장 친한 친구가 산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건대입구를 찾아가는 이유

by 에세이 작가 훈


서울의 동부권, 젊음과 활기로 가득 찬 건대입구역 사거리. 이곳은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교차하는 핵심 교통 요지이며, 늘 수많은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방으로 뻗은 도로 위에는 거대한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이 자리하고 있으며, 밤이 되면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먹자골목'이 펼쳐지고 있다. 겉모습은 화려함과 북적거림이 전부인 것 같지만, 이 장소가 내게 주는 의미는 그 표면적인 풍경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곳은 나에게 '상실'과 '희망'이라는 삶의 극적인 두 감정이 교차하는 장소와 같다. 인생의 가장 무겁고 아픈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준 따뜻한 위로가 모두 이 건대입구역이라는 좌표 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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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입구역의 중심에는 단단한 유리 외벽이 인상적인 건국대학교병원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병원은 내가 건대입구역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기억해 내는 무겁고 복잡한 감정의 근원지다.


15년 전 아버지께서 암 투병으로 인해 이곳에 오랫동안 입원하셨고, 결국 2012년에 병실에서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 내게 건대입구역은 그저 활기찬 대학생들의 거리가 아니다. 아버지를 간병하며 보냈던 수많은 날들과 갑작스러운 이별의 무게가 실린 곳이기도 하다.


병원의 삭막한 복도, 희미한 소독약 냄새,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던 잿빛 하늘은 건대입구역의 화려한 이미지와 대비됐다. 내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슬픔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 마지막 순간들이 모두 이 공간에 봉인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장소에 슬픔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건국대학교병원은 현재 어머니께서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약을 복용하고 계신 곳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방문하는 발걸음은 '남은 삶을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의 상징이다. 건대입구역은 이제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과 동시에, 어머니의 건강을 염원하며 희망을 다지는 장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 사망 이후 내가 첫 직장에 입사하면서 가장 의지하는 직장 선배를 만났다. 선배가 살고 있는 동네가 바로 건대입구역이기에 우리는 지난 10년 가까이 이곳에서 수많은 술잔을 기울이며 오랜 추억을 쌓고 있다.


선배와의 만남은 우정과 위로의 새로운 서사를 이곳에 만들어 낸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시끄러운 술집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직장 생활의 고충과 개인적인 고민을 격의 없이 나누었다. 때로는 술기운을 빌려 차마 꺼내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깊은 슬픔까지도 말할 수 있었다.


선배와 함께 마신 소주와 맥주는 병원에서 느꼈던 고독한 상실감을 녹여주는 따뜻한 위로가 된다. 상실의 무게를 짊어진 채, 우정이라는 단단한 지지대를 쌓아갔다. 건대입구역에서 삶이 지속되어야 할 희망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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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가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이유는, 삶의 가장 극적인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건대입구역을 떠올릴 때, 나는 아버지를 잃은 가슴 아픈 기억과, 그 아픔을 딛고 어머니의 건강을 지키려는 의지, 그리고 오래된 인연의 위로를 모두 느낀다.


내가 가장 약해졌을 때 기댈 수 있었던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화려한 유흥가와 엄숙한 병원이 공존하는 이 지역은 과거의 아픔을 딛고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건대입구역의 시끌벅적함은 때로는 나의 복잡한 감정들을 덮어주는 방음벽이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살면서 힘든 일이 있거나,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 설 때 이곳을 생각한다. 건대입구역은 슬픔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굳건한 메시지를 주는, 상실과 희망의 공간이다. 이 모든 기억과 감정이 이곳에 녹아들어, 여기는 내 인생의 중요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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