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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베트남에 간다면
by 정희정 Oct 19. 2018

베트남이 그리워 그리다

프롤로그) '고양이 주인 친구'의 조언에 따라 첫 번째 사생을 나서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 고민했다. 단어 앞뒤로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거나, 유려한 문체를 가꿔보려 했다. 문장이 길어졌고, 밑도 끝도 없는 말만을 되풀이하게 됐다. 언뜻 보기에는 멋들어졌으나 내실 없는 글이 탄생했다. 쓰고 난 다음날이면 나조차 내 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지름길은 부재했다. 뭐라도 계속해 쓰는 연습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정해둔 시간에 책상에 앉아 A4용지 두세 장 분량의 이야기를 써냈다. 신문 지면에 실린 기사나 칼럼을 필사하기도 했다.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쏟는 시간과 써내는 글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이 없었기에, 내 글이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내 글을 써내고, 남의 글을 찾아 읽길 되풀이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은 것은 그즈음이었다. 고양이 주인과 주인 친구는 아래 대화를 나눈다.    

“아무래도 잘 그려지지가 않네. 남이 그려놓은 걸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직접 붓을 들어보니 새삼 어렵게 느껴지더란 말일세.”
이건 주인의 술회다. 역시 솔직한 마음이다. 그의 친구는 금테 안경 너머로 주인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처음부터 잘 그릴 수야 없겠지. 우선 실내에서 하는 상상만으로 그림을 잘 그릴 수는 없는 법일세. 옛날 이탈리아의 대가 안드레아 델사르토(Andrea del Sarto)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네. 그림을 그리려면 뭐든지 자연 자체를 그대로 옮겨라, 하늘에는 별이 있다, 땅에는 영롱한 이슬이 있다, 날아가는 새가 있다, 달리는 짐승이 있다, 연못에는 금붕어가 있다, 고목에는 겨울 까마귀가 있다, 자연은 그야말로 한 폭의 살아 있는 커다란 그림이다, 라고 말이네. 어떤가? 자네도 그림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사생을 좀 해보는 게 어떻겠나?”   

주인 친구의 조언은 내게도 작은 파동을 안겨주었다. 처음부터 잘 쓸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실내에서만 하는 상상을 벗어나기로 했다. 사생(寫生)의 대상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좋은 글보다 ‘글다운 글’을 쓰길 희망하게 됐다.     


베트남이 떠올랐다. 내 첫 번째 사생의 대상이 베트남이라면 좋을 성싶었다. 앞서 남부 도시 호찌민에 몇 개월간 체류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이 나라 북부, 중부 도시들을 여행하기도 했더랬다.

그 두 번의 외유(外遊) 동안 내로라할 만한 곳들을 많이 다녔지만, 그럼에도 아직 가보지 못한 명소들이 여럿 남아있었다. 친숙하되 생소한 그 나라와 나 사이 관계가 ‘글다운 글’을 향한 실마리가 되어줄 듯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또한 나는 베트남이 그리웠다. 그리움이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감정일진대, 과거 느꼈던 기쁨, 설렘, 슬픔 등이 응축돼야 빚어지는 감정일진대, 내겐 베트남이 그 대상이었다. 베트남이 그리워서 그리고자 다짐했다. 보고 싶은 도시이기에 내 글 안에 사생해 남겨두기로 했다.      


다시 찾은 하노이. 철로와 철로 사이를 뛰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발바닥이 따갑지도 않은지 자갈 위를 맨발로 서슴없이 내딛는다. 까르륵거리며 서로의 뒤꽁무니를 좇는다. 천진하고도 난만한 웃음소리가 주변을 채운다. 이 같은 하루를 사는 것이 처음인 양 즐거워한다.

거리를 울긋불긋하게 물들인 금성홍기(金星紅旗)가 보인다. 매대 위에는 오색 천들로 수놓인 가방과 장신구, 조각품들이 놓여있다. 손님맞이에 열심인 가게 주인들도, 승객을 태우고 분주히 페달을 밟는 인력거꾼들도 보인다. 하루치 자기 몫의 삶을 살려 모두가 열심이다.

하노이 구시가지에 어우러진 그네들의 일상이 좋아 보인다. 평온함과 분주함이 적절히 혼재돼있는 모습에 질투마저 느낀다. 그들 일상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몇 발자국 떨어져 서서, 그 모습들을 사진 몇 장에 나눠 담는다. 북쪽 하노이를 시작으로 남쪽 호찌민까지 일주하기에 앞선, 나의 첫 번째 사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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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호주에건네는인사 직업출간작가
여행에세이 <호주에 건네는 인사> 저자. 매주 금요일과 화요일, 매거진 <우연히 베트남에 간다면>과 그 외전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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