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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베트남에 간다면
by 정희정 Nov 02. 2018

비 내리는 하노이에 우연이 깃들다

'베트남의 우기도 사생할 수 있을까?'라는 건 괜한 고민이었다

며칠 째 비가 내리길 그치지 않는다. 동남아시아 우기에 내리는 비는 한국 장마나 폭우와 다르다. 느닷없이 맑은 날 비가 오기도, 비 내리다 갑자기 해가 나기도 한다. 여행객들은 햇볕 내리쬐는 찰나를 활용해 이 나라를, 이 도시를 모두 둘러보아야 한다.

개중에 아침부터 비 내리는 날에는 할만한 일이 별 게 없다. 어느 차양 밑, 아저씨들이 장기 두는 걸 구경하는 게 최선인지도 모른다. 아저씨들은 장군이요, 멍군이요 하며 장기 알을 주고받는다.

“거기가 아니고 저기에 둬야지.”

“어허, 여기에 둬야 한다니까.”

한 아주머니가 가던 길을 멈추면서까지 다가와 훈수를 둔다. 아저씨는 아주머니의 말마따나 장기 알을 옮긴다.

“아이고, 잡았다. 책사(策士)가 영 아니군 그려.”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노려보지만, 그녀는 딴청만 부리고 있다.

잠시 후에는 형세가 완전히 상대편 쪽으로 기울었다. 아주머니는 급한 일이 떠올랐다는 듯 호들갑을 떨며 자리를 피한다.

“내가 잃은 돈은 어떻게 할 거야, 어! 형씨!”

아주머니는 약해진 빗줄기 사이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린다. 남의 인생에 훈수 두기는 쉬우나 책임까지 지기는 어려운 법이다.


베트남 기후가 어쩌다 우기와 건기로 양분됐는지 설명해주는 옛 설화를 읽더라도, 어느 한쪽 편을 들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베트남에는 아래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먼 옛날, 산의 요정과 비의 요정이 베트남 공주에게 청혼을 했다. 두 요정은 각자 다음을 제안했다.
"나를 택한다면 베트남 산 전역에 한결같은 풍요를 허락해주겠소."
"나와 결혼해준다면 평생 농사짓기에 부족함 없는 비를 내려주겠소."
베트남 사람들은 왈가왈부하며 공주의 결정에 관여했다.
"베트남은 국토의 4분의 3 가량이 산지(山地)니, 산의 요정 편을 드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산에 과실이 열릴 수 없잖아. 공주는 비의 요정과 결혼해야 해."
공주는 결국 베트남 사람들의 결정에 따라 산의 요정의 신부가 됐다. 비의 요정은 화가 나, 베트남 산 전역을 씻겨내릴 기세로 폭우를 퍼부었다.
다행히 연중 비를 내릴 것 같던 분노는 차츰 사그라들었다. 오늘날 비의 요정은 일 년 중 절반에만 비를 내리며, 나머지 절반에는 베트남 사람들의 괘씸함을 슬쩍 눈감아 주고 있다.


잠시 비 그친 틈을 타 호아로 수용소로 향한다. 한때 프랑스 사람들은 하노이 시내 남쪽에 위치한 그곳에,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투옥하고 고문했다.

“한 주 동안 침대 네 귀퉁이에 손발이 묶여 있었어요. 자갈이나 인분(人糞) 섞인 수프가 떠먹어졌죠. 거부하면 채찍질이 가해졌어요. 용변을 볼 때에도 풀어주지 않아, 한 주 동안 제 자신의 배설물 위에 누워있어야 했어요. 바퀴벌레와 쥐들이 들끓었고….”

“그들은 머리가 좋았어요. 육체적 고문만을 가하는 것이 아니었죠. 가령 원목 의자 위에 서서 며칠 밤을 지새우게 했어요. 졸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대나무 막대기로 죽을 만큼 맞았죠. 나중에는 계속되는 구타에 몸이 상해 서있을 수가 없었어요.”

호아로 수용소에 수감 생활을 했던 베트남 사람들의 진술이다. 수용소에는 당시 현장을 증명해주는 고문 기구와 사진 자료 등이 전시돼다. 감방마다 놓인 마네킹들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가해진 고통을 재현해 보인다.    

 

프랑스에 있어 하노이는 눈엣가시 같은 도시였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삼 분할해 다스렸는데, 그중 하노이의 저항이 가장 거세었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베트남 북부는 ‘통킹’, 후에를 비롯한 중부는 ‘안남’, 사이공을 기점으로 한 남부는 ‘코친차이나’라고 불리며 구분됐다.) 하노이 사람들은 고도(古都)에 산다는 자부심을 잊지 않고 있었다. 또 그들은 유독 성품이 억세었다. 베트남 전역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하노이를 무탈히 둘러봤다면 베트남 어느 도시에서도 거리낄 게 없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하노이를 통치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곳이 바로 호아로 수용소다.

훗날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1960-1975) 중 잡힌 백인 포로들을 이곳에 데려와, 프랑스로부터 당한 바를 그대로 되갚아주었다고 전해진다. 베트남 편을 들어주고 싶으면서도, 한쪽에만 편파적이고 싶지 않아 한 줄 덧붙인다.


하노이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상인들은 서둘러 차양을 내려 가판 위 물건들이 비에 젖는 것을 막는다. 제 몸 챙기는 건 나중 일이다. 행인들은 주섬주섬 우비를 꺼내 입는다. 여행객들을 상대로 우비 파는 이들도 대거 등장한다. 어떤 이는 하양, 노랑, 또 어떤 이는 파란색 우비를 집어 든다. 저만치에서 한 무리 걸어오는 이들은 모두가 분홍색 우비를 입고 있다. 하노이 거리 위에 총천연색 비닐 꽃이 피어난다.

어느 처마 밑에 몸을 피하데, 서양인 여자 세 명이 그 공간을 공유하려 뛰어온다. 빗물에 젖을 대로 젖은 후다. 우비 파는 아주머니들이 그녀들을 뒤따른다. 아주머니들은 경쟁적으로 우비 값을 낮춰 부른다. 개당 5만 동에서 시작한 우비 가격은 장당 1만 동, 한화 500원가량으로까지 떨어졌다. 여자들은 그제야 지갑을 열고, 우비를 하나씩 갖춰 입는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제 갈길을 간다.

반면 아주머니들 사이 다툼은 이제야 시작이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편을 먹어도 이문이 남을까 말까 한게 장사인데, 각자도생 하면 어찌하느냐고 싸운다. 다시 보지 않을 사이인 양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는다.      


좁은 처마 밑이 예상치 못하게 복작거린다. 일련의 상황을 함께 지켜보던 한 베트남 사내가 말을 걸어온다.

“오늘을 근거로 하노이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사실 이보다 아름다운 곳이거든.”

“알고 있어요. 이 도시를 여행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거든요.”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웃어 보인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게 처음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덕분에 여유를 갖고 이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우기 특유의 복작거림을 즐기기까지 하고 있다. '비 내리는 하노이도 사생할 수 있을까?' 고민은 괜한 것이었다.

문득 생경한 감정이 밀려온다.

'여행은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낸 색채가 아닐까?'

오늘의 하노이를 채운 활력은 이 도시를 처음 여행하던 날에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반대로 그 날의 오묘한 감정선은 오늘의 하노이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과거 하노이를 방문했을 때 베트남 사람들은 구정을 쇠고 있었다. 다들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러 갔는지, 도시는 정적이며 텅 비어있었다. 텅 빈 도시를 홀로 활보하던 기분은 설레면서도 외로웠더랬다.
어서 비가 잦아들면 좋겠다. 맑게 갠 하노이에는 또 다른 어떤 우연의 색채가 깃들어있을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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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우연히 베트남에 간다면
소속호주에건네는인사 직업출간작가
여행에세이 <호주에 건네는 인사> 저자. 매주 금요일과 화요일, 매거진 <우연히 베트남에 간다면>과 그 외전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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