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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베트남에 간다면
by 정희정 Nov 09. 2018

탕롱을 떠난 용은 어디 숨었나? 하롱에 숨었지!

관조하는 시간이 쌓여 한 문장이 탄생한다

한 줌의 햇빛조차 찾아지지 않는다.  뜰 시간은 이미 지난 지 오래다. 하롱베는 예로부터 흐린 날이 많아, 사람들이 안개 속에 길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단다. 영화 <인도차이나>에서는 하롱베이로 향하려는 이들에게 다음을 경고한다.

“충분한 불빛을 보지 못했을 때 저주가 내릴 것이다.”

하롱베이의 안개 사이로 기암괴석들이 보인다. 개의 형상을 하기도, 찻주전자의 형상을 하기도 했다. 사람 흉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거대한 용이 이곳에 내려앉으며 꼬리를 흔들었고, 그 때문에 일대에 돌기둥과 계곡, 동굴들이 생겨났단다. 이곳이 하롱(下龍), ‘용이 내려앉은 장소’라고 불리는 것은 그러한 연유일 테다.

문득 떠올린다. 하노이의 옛 이름 탕롱(昇龍)은 ‘용이 올라간 장소’를 뜻한다는데, 하노이를 떠난 용이 이곳에 내려앉은 것은 아닐까?


뱃놀이를 즐기는 내내 주위로는 유사한 풍경이 연속된다. 처음에야 기암괴석을 하나하나 살피는 일이 즐거웠지만 이내 지루해졌다. 하롱베이의 경관보다는 배 위 사람 구경이 즐겁다.

옆자리 노부부는 참 오순도순하다. 할아버지는 커피나 담요를 챙기려 자리를 비우는 외에는, 할머니 곁에 앉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둘이서 기암괴석들에 감탄을 표하기도, 잿빛 하늘의 미묘한 색 변화를 짚어내기도 하며 조잘조잘 대화를 이어간다.

한 중년 남성도 눈에 들어온다. 가족들과 사진 몇 장을 찍고는, 통화를 하거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시간을 보낸다. 하롱베이에까지 와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그의 부인은 이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은 눈치다. 어린 아들들은 부모의 속도 모른 채 배 안을 뛰어다니기에 바쁘다.


선상 선베드(sunbed)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간혹 새 한 마리가 날아갈 뿐 대체적으로 무상(無常)한 풍경이 이어진다. 그 모습을 관조(觀照)한다. 고요한 마음으로 가만히 바라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맥락 없이 머릿속을 오가둔다. 그러다 지쳐 까무룩 잠이 들기도, 다시 깨어나 고요히 바라보길 계속하기도 한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관조하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해두었다.


화가 크람스코이의 그림 중에 관조자라는 제목의 훌륭한 그림이 한 점 있다. 겨울의 숲이 묘사되어 있고, 숲속 길에 다 헤진 카프탄을 입고 짚신을 신은 한 농부가 길을 잃은 채 아주 깊은 고독에 잠겨 홀로 서 있는데, 꼭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지만 실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누가 그를 툭 친다면, 그는 꼭 잠에서 깬 양 몸을 부르르 떨면서 상대방을 바라보겠지만, 무슨 영문인지 통 모를 것이다. 사실, 그 즉시 정신을 차리긴 해도 그에게 이렇게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분명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하지만 그 대신, 분명히 관조하는 동안 받은 인상은 자기의 내부에 감춰 둘 것이다. 그에게 소중한 것은 바로 이 인상들이어서, 분명히 의식도 하지 못하면서 살금살금 인상들을 축적하고 있는 것인데- 무엇을 위해서, 왜 그러는지도 물론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관조하는 동안 받은 인상들을 축적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힘을 발하리라 설명한다.
관조하는 법을 배우면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글을 쓸 수 있으리란 기대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난 후 의식적으로 주변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관조에 몰입하려는 찰나에는 늘 오만 걱정거리들이 떠오른다. 가령 오늘 하롱베이에서는 '다음 여행지인 사파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사파로 향하기 전에 빨래를 한 번 더 하지 않아도 옷가지가 여유 있을까?', '환전해둔 베트남 동은 얼마나 남았던가?', '베트남 일주를 시작한 게 정말 잘한 일일까?'란 생각들을 했더랬다.

그 속 시끄러운 순간들을 잠시만 견뎌내면, 금세 관조에 집중할 수 있다. 누가 툭 쳐도 영문 모를 만큼 깊은 고요함 가운데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견해를 빌리자면,  는 행위는 책상 앞에 앉아 원고를 붙잡고 있는 시간 국한돼 일어나지 않는다. 내 평생에 걸쳐 관조해온 시간을 포함해 이뤄진다.


하롱베이의 밤, 하늘과 바다는 그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까맣다. 선상 복도에 켜둔 불빛 외에는 무엇 하나 주변을 밝히지 않는다.
밤의 선상에서는 영화 <인도차이나>가 상영된다. 영화는 주인공 엘리안느가 다 대사를 읊으며 시작된다.

“세상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고 믿는 것. 남자와 여자, 산과 들, 인간과 신. 그리고 인도차이나와 프랑스.”

프랑스인 엘리안느는 인도차이나(베트남)와 프랑스의 관계가 영원하리라 확언했다. 또한 자신과 베트남인 수양딸 까미유의 관계가 변치 않으리라 확신했다. 엘리안느 자신이 까미유를 거둬 키운 행위가 선의에서 비롯되었으니, 까미유 또한 이를 선의로 받아들이리라 믿었다. 하지만 까미유는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로서 마주해있는 현실을 깨닫고는, 모국의 독립을 위해 양어머니 곁을 나간다.

이미 몇 번은 본 영화인지라, 흑백 하롱베이를 배경 삼아 영화가 상영되는 장면 자체를 관조한다. 

곧 선상의 소등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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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호주에건네는인사 직업출간작가
여행에세이 <호주에 건네는 인사> 저자. 매주 금요일과 화요일, 매거진 <우연히 베트남에 간다면>과 그 외전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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