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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베트남에 간다면
by 정희정 Nov 30. 2018

동허이를 여행할 당신께

한 번쯤 이런 느낌의 글을 써보고 싶었다

동허이를 여행코자 한다면, 이 도시는 두 팔 벌려 당신을 환영할 겁니다. 어른들은 무심한 듯 당신을 배려하고, 아이들은 수줍게 당신을 맞이할 겁니다. 동허이의 그 누구도 당신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내 무료함에 빠질 겁니다. 이곳에는 커피 한 잔에 토스트를 곁들일, 작은 카페 한 곳조차 부재하니까요.

그럴 때엔 시내 끝자락에 위치한 여행사를 찾아가 보세요. 아마도 직원은 하노이나 후에 행 버스표를 먼저 건네줄 겁니다. 동허이가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니라는 우회적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동허이만의 무언가를 찾으려 한다면, 직원은 말할 겁니다.

"정 그렇다면 퐁냐 마을로 가보세요."

다소 무신경한 그 말 속에 담긴 친절을, 당신이라면 알아볼 것이라고 믿습니다.     


퐁냐 마을은 동허이에서 버스로 두어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음, 사실 이 두 곳이 정말로 두어 시간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동허이의 버스 기사들은 하나같이 특유의 리듬감을 지닌 채 운전을 하니까요. 

가령 우리가 탄 버스 밖에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이 없더라도, 그는 절대로 액셀을 밟지 않을 겁니다. 나지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깨를 들썩일 뿐이죠. 어지간해서는 경적을 울리지도 않을 겁니다. 만에 하나 들개가 갑작스레 뛰쳐나오지 않고서는요. 혹시라도 그런 상황과 마주한다면, 당신은 듣게 될 겁니다.

"삐리리리 삐리리"

"삐용 삐용 삐용"

"빠방 빵빵"

동허이의 버스 기사들은 도대체가 무난한 소리를 내는 법이 없습니다. 당신은 졸다가 깨 몽중몽(夢中夢)인지를 고민할지도 모릅니다.


퐁냐 마을에 도착했다면, 마을의 자랑거리인 퐁냐케방 동굴에 가볼 것을 추천합니다. 동굴까지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한 배에 많게는 열네 명, 적게는 한 명이 탈 수 있는데 탑승객 수와 무관히 지불해야 하는 뱃삯은 동일합니다. 선착장까지 어떤 빠르기로 걸어가느냐에 따라 경비를 아껴줄 여행 메이트를 만날 수도, 혼자서 뱃삯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어떤 무리에 끼어 몇 푼 안 되는 뱃삯만을 감당했습니다. 

동굴로 갈 때에는 이왕이면 배의 맨 앞쪽에 앉으세요. 그래야만 선수(船首)의 노꾼과 친해질 수 있으니까요. 송꼰 강을 가로지르는 배에는 으레 두 명의 노꾼이 타 있습니다. 한 명은 선수에서 키잡이를 하고, 다른 한 명은 선미(船尾)에서 엔진을 돌립니다. 그들 중 대빵은 응당 선수에 앉은 이로, 그의 선심에 따라 퐁냐케방 동굴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좌우됩니다.

당신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노꾼들은 배가 동굴 어귀에 들어선 순간 눈빛이 돌변할 겁니다. 배의 시동을 끄고, 긴 노로 손수 강물을 가르기 시작할 겁니다. 그와 동시에,

삐걱삐걱, 똑, 끼익끼익, 참방참방, 똑, 똑…, 

노 젓는 소리와 배 기우뚱대는 소리, 강물 출렁이는 소리 등이 한데 어우러진 한 편의 교향악이 연주될 겁니다. 종유석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은 이에 박자를 맞춰 떨어질 테고요. 종유석과 석순, 석주들이 한데 모인 동굴의 아름다움은 그에 볼거리를 더할 겁니다.


퐁냐케방 동굴 끝자락에는 좁은 산길이 하나 나있습니다. 그 길 끝에는 강물이 닿은 적 없는, 작은 동굴이 한 곳 더 있습니다. 티엔손 동굴입니다. 좀 전보다 세밀하게 조각된 종유석과 석순, 석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사람 발소리에 놀라 모든 게 으스러져 내릴 것 같은 곳입니다. 

동굴 심부에는 평대가 마련돼 있습니다. 그곳에 등을 뉘면, 당장이라도 종유석이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광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 무수히 많은 별똥별들이 떨어지는 장관을 보게 된다면, 오늘 이곳이 다시금 생각날 것 같습니다.     


퐁냐의 밤은 서둘러 옵니다. 변변한 가로등 하나 없어, 해 질 무렵이면 완연한 밤이 돼있습니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에는 게스트하우스 1층 라운지에 가앉길 추천합니다. 벽면 귀퉁이에 꽂힌 책을 꺼내 읽거나, 마음 맞는 이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잘하면 베트남어로 숫자 말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못(1), 하이(2), 바(3), 본(4), 남(5), 싸우(6)…."

베트남을 일주하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어느 베트남 친구가 그랬습니다. 


내가 머문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은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몇 안 되는 외지인이었습니다. 그가 미국을 떠나온 지는 벌써 몇 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퐁냐 마을 특유의 정서가 좋아서 이곳에 정착했어. 가족과 친구, 모두가 만류하더라. '빨갱이들의 나라가 좋아 봤자 얼마나 좋겠어'라며 빈정대는 이들도 있었지."

"이곳에 정착한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

"있어.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자주 후회하며 살지 싶어. 그런데 이건 내 선택이었잖아. 그러니 괜찮아."

그에게서는 보편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이들에게서 찾아지는 자부심과 고뇌가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그런 그를 동경하면서도 그와 같은 삶을 살기에는 겁이 납니다. 


퐁냐 마을은 이곳을 떠나는 순간까지 감동으로 남았습니다. 동허이 행 버스를 타야 하는데 정류장을 못 찾아가고 있던 찰나였지요. 좌판을 펴고 앉아있던 한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어디 가려고? 동허이?"

고개를 끄덕여 답을 합니다. 아주머니는 알았다며, 근처에서 놀던 아이를 불러 세웁니다.

"애야, 네가 길 좀 알려주고 오렴."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아이가 손을 털고 일어납니다. 아무 말도 없이 서너 걸음 앞장서 걸어갑니다. 멀찍이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 곳까지 함께 가주곤 말합니다.

"굿바이(Goodbye)!"

그 말 한 마디를 남기곤 쏜살같이 뒤돌아 뛰어갑니다. 무어라 서술하기 어려운, 생경한 기분이 듭니다. '쑥스럽다', '서먹하다', '열없다' 등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 마땅히 느낄 법한 감정선이 이곳에는 남아 있습니다. 여행객들에게 닳고 닳은 도시들에서 느낄 수 없던 소회가 찾아집니다.      


퐁냐 마을이 어땠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늘 이야기합니다. 

"사치스러운 곳. 퐁냐 마을은 자꾸만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무언가를 찾아 두드려와. 누구도 억지스러운 호객 행위를 하지 않고, 누구나 필요 이상의 대가 없는 친절을 베풀어줘. 매 순간이 사치스럽다고 느낄 만큼 감동적이었어. 베트남의 진짜 도시를 맛본 기분이었달까."

이곳 사람들은 '나'를 그들의 생계 수단에 놓고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자기네 일상에 약간의 재미를 가미해주는 데에 만족할 뿐이었습니다. 


여행객들이 즐겨 찾지 않는 작은 도시 동허이. 나 또한 스쳐 지나갈 뻔했던 이 도시는 이내 평생 잊지 못할 곳으로 거듭났습니다. 난 이곳을 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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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호주에건네는인사 직업출간작가
여행에세이 <호주에 건네는 인사> 저자. 매주 금요일과 화요일, 매거진 <우연히 베트남에 간다면>과 그 외전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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