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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Jan 11. 2019

"다 함께 외쳐! 다낭 미(Danang Me)!"

크로나워와 무이의 말을 빌려 사생하다

베리 레빈슨 감독의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서 애드리언 크로나워는 외친다. 

“만세, 다낭! 나를 다낭해, 다낭해! (Viva, Danang! Danang me, Danang me!)"

그 말도 안 되는 멜로디에, 미군들은 모두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크로나워는 베트남 전쟁 중 사이공에 부임한 미군 부대 라디오 DJ였다. 그의 방송은 남베트남 전역 미군 부대로 송출됐다. 

미군들은 영화 속에서만 다낭에 열광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도 다낭을 사랑했다. 다낭은 베트남 중부 해안에 위치한 군사 요충지이자, 해변이 매혹적인 도시였다. 미군들은 다낭을 지키고자 공들인 만큼 이곳을 아끼게 됐다. 


미군들의 향수가 깃든 이곳에서 나와 지수는 별다른 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미케비치를 따라 거닐거나, 한강변을 따라 산책하는 게 전부였다. 

하루는 시장에 갔다. 과일 파는 곳이 여럿이다. 망고스틴, 코코넛, 파파야 등이 있다. 내 시선이 코코넛에 가닿은 걸 보고는 가게 주인이 말한다.

“하나 따줄게, 마시고 가. 시원 달달하니 입안을 축여줄 거야.” 

코코넛은 싫다고 답한다. 목을 축여주는 척 끈끈하게 해 애먼 물만 찾게 된다. 그가 또 묻는다. 

“드래곤프루츠는 어떤데? 두리안이나 망고스틴도 있어.”

드래곤프루츠는 먹고 난 후 검은 씨가 이빨 사이에 껴있을까 두렵다고 답한다. 두리안은 냄새가 심해서, 망고스틴은 과육 양에 비해 껍질 부피가 커서 사고 싶지 않다고 답한다. 

정 그렇다면 파파야를 사 가란다. 검은 씨가 잇속에 걸리지도, 고약한 냄새가 나지도 않는단다. 얇은 껍질 한 겹만 벗겨내면 먹을 수 있단다.

“파파야도 싫어요. 이름은 예쁘지만 맛이 맹숭맹숭한 걸요.”

가게 주인은 내게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른단다. 파파야는 담백하고도 수분기 있는 식감이 장점이란다. 특히 그린파파야를 얇게 채 썰어 볶은 요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나 해주는 음식이란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한 집에 살게 되면 사갈게요. 파파야 볶음도 해주고, 파파야 샐러드도 해주고, 파파야 절임도 만들어줄 거예요.”

트란 안 홍 감독의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를 떠올리며 이야기한다. 무이는 말한다. 

“우리 집 정원에는 파파야 나무가 있다. 그 나무에는 파파야 열매가 많이 달려 있다. 잘 익은 파파야는 옅은 노란색이고, 달콤한 설탕 맛이 난다.”

파파야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행복한 가정을 상징한다. 

가게 주인은 이러나저러나 오늘 치 장사 잇속을 챙기기는 어렵겠다고 느꼈는지 너털웃음을 친다.


또 하루는 우연히 발견한 전단지에 혹해 쿠킹 클래스에 갔다. ‘스프링롤 만드는 법’을 주제로 무료 특강이 열린단다. 그곳에서 배운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1. 라이스페이퍼를 미지근한 물에 담갔다 꺼내 접시에 올린다.
2. 라이스페이퍼 중앙에 칵테일 새우와 채소 등을 취향껏 얹는다.
3. 라이스페이퍼의 하단부 절반을 말아 올리고, 양 옆을 안쪽으로 접는다.
4. 부추 한 가닥을 절반 정도 밖으로 삐져나오게 얹는다.
5. 남은 부분을 말아 올린다.

강사는 특히 4번을 강조해 설명한다. 부추 한 가닥을 꽂아 얻을 수 있는 심미적 가치는 으레 생각하는 것 이상이란다. 

“다낭을 찾은 여행객들은 아름답지 않은 이국 음식은 먹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거예요. 손님이 먹어주지 않는 요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녀는 첫째도 ‘미(美)’, 둘째도 ‘미(味)’라며 자신의 음식 철학을 소개한다. 

내게는 그 중 어떠한 ‘미’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새우를 양껏 넣은 탓에 스프링롤의 옆구리는 수차례 터진다. 라이스페이퍼를 마는 데 서툴러 오랫동안 잡고 있던 탓에, 내 스프링롤을 한 입 베어 문 순간 기분 나쁜 미지근함이 전해온다. 예쁘지도 맛있지도 않다. 뾰족이 고개를 내민 부추 한 가닥만이, 내가 지킨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다낭의 분홍색 대성당을 마주하곤 기뻐한 날도 있었다. 다낭에서는 꼭 봐야겠다 싶은, 욕심나는 여행지가 없어 지도랄 것을 챙기지 않고 다녔는데 우연히 발견했다. 다낭을 대표한다는 사진들에서 본 적이 있었기에, ‘이곳이 그곳이구나’ 하고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성당은 사진으로 봐오던 것과 같은 페일 핑크(pale pink) 색이었다. 색깔이 ‘창백하다(pale)’는 것이 다소 어색한 수식일 수도 있지만, 실로 그러했다. 창백한 성당의 자태는 페일 블루(pale blue) 빛 하늘과 놀라우리만큼 잘 어울렸다.

‘페일한’ 파스텔톤으로 온 도시가 칠해진 가운데, 기시감과 미시감이 함께 전해온다. 다낭을 여행하는 게 처음인데도 친숙하고, 베트남 여느 도시와 다를 게 없음에도 생경하다. 상충된 두 감정은 밤이 돼서야 한데 어우러진다. 밤의 다낭은 어떠한 윤곽도 드러내지 않는다. 


지수는 다낭을 끝으로 한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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