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진우 Feb 01. 2019

독일차는 정말 좋을까?

 독일 역사와 철학, 신학 등까지 파고들어야 독일차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왜 독일차에 열광할까? 

2년 전, 현대·기아차가 내수 시장의 약 80퍼센트를 점유했을 때 사람들은 ‘독과점’이라며 극도의 반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현대차의 점유율은 60퍼센트대로 떨어졌고 그 자리는 수입차가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런데 수입차 판매량의 약 80퍼센트가 독일차다. 독일차에 대한 지나친 편중임에도 우리는 현대·기아차처럼 반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럴까? 

우리가 독일차에 대해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훌륭한 기술을 지녔고 주행성능이 뛰어나며 내구성이 좋다’는 것이다. 많은 독일차를 타봤는데 짱짱한 달리기 성능과 수많은 기계부속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연결돼 움직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가진 독일차에 대한 막연한 좋은 이미지는 누군가로부터 세뇌받은 건 아닐까?’ 사실 독일차뿐만 아니라 미국차, 프랑스차, 일본차들도 나름 훌륭한 엔지니어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에게 독일차와 같은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독일차는 진짜 훌륭한가? 다른 나라 차보다 월등히 뛰어난 엔지니어링을 지녔나?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독일차를 칭송하고 찬양하도록 트레이닝한 것은 아닐까? 독일은 어떻게 이런 좋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지? 우리는 이미지에 현혹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독일차를 5년 동안 타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독일차는 좋다’고 생각할 뿐. 왜 좋은지, 진짜 좋은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탐구한 적이 없다. 

독일차가 수입차 시장의 8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는 시점에서 독일차에 대한 우의 보편적인 이미지가 타당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독일차의 단점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독일차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독일차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차는 인간에서 시작된다

“독일인이 기술을 발전시킨 근본에는 부지런한 민족성과 자원 부족에 대한 필요성도 있지만 그 밑바탕에 인간애(人間愛)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족이, 민족이 타야 하는 차를 만드는데 그냥 만들 수는 없죠. 더 단단하고 튼튼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애초 차를 만들 때 팔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해서 만들었습니다. 그에 반해 한국과 일본은 차를 팔기 위해 만들었죠. 이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나윤석 칼럼니스트의 말이다. 그는 독일 자동차 회사에서 오랜 시간 일했고 독일에서 꽤 긴 시간 동안 근무했다. 

사실 독일차의 성장 배경과 기술은 아우토반과 뉘르부르크링으로 대변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인간애’라는 단어를 듣고 머릿속이 뒤죽박죽됐다. ‘인간애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야?’

“독일에는 유명한 철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학에서도 조예가 깊은 나라죠. 그래서 두 학문 유학생이 가장 많이 모이는 나라가 바로 독일입니다.” 

철학과 신학의 근본은 ‘인간’에서 시작된다. 독일인들은 오랫동안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탐구를 해왔고 지금은 철학과 신학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문을 지는 국가로 평가받는다. ‘자동차 이야기를 하면서 무슨 철학과 신학까지 나오나’ 할지 모르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독일인들의 생각과 사상부터 이해해야 독일차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들은 어떻게 철학과 신학에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었을까? 

독일에는 괴테, 니체, 칸트, 쇼펜하우어, 마르크스, 헤겔 같은 유명한 철학자가 많다. 이런 철학자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신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깊이 있는 성찰이 큰 몫을 했다. 종교개혁에서부터 시작된다. 독일 작센 출신의 마틴 루터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폐쇄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그리고 성직만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다. 그렇게 독일 모든 국민이 자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됐다. 독일은 일반인이 성경을 자국어로 읽은 최초의 국가다. 이렇게 일반인의 교양과 지적 수준이 상당히 올라갔다.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철학적 관념에 대한 욕구도 강해졌다. 그러면서 히브리 신학과 그리스 철학을 결합하는 학자들도 많아졌고 독일 철학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됐다. 

그러면 왜 이런 신학과 철학이 자동차 산업에 연관되는 것인가? 나윤석 칼럼니스트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자기 민족애가 상당히 강한 국민성을 지녔다고 한다. 내가 타고 가족이 타고 민족이 타는 차를 만든다는 것. 독일인들은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명확한 관념이 뿌리깊이 박혀 있고 이런 관념이 제조업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이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항공, 전자, 화학, 의학, 조선 등 모든 공업제품이 모두 민족애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뛰어난 성능과 효능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럽이 외환위기로 휘청거릴 때 유럽을 지탱한 것이 독일이었고 독일을 지탱한 것이 제조업이었다. 이렇게 제조업이 강한 이유는 단순히 기술 수준이 높아서라기보다 인간을 위해 기술을 개발하면서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독일은 원래 제조업 국가인가? 

독일은 농업국가다. 지하자원도 많지 않은 중유럽의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농업이 기반이 돼야 했다. 지금도 독일 면적의 53퍼센트가 농경지다. 숲이 차지하는 면적 30퍼센트를 제외하면 나머지 17퍼센트에 주거지와 다른 산업과 공업이 밀집된 형태다. 농경 국가의 특징은 사람들이 부지런하다는 것. 그런데 독일은 사계절이 뚜렷하지만 흐린 날이 많다. 태양빛이 부족하다 보니 농부들은 그만큼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독일인의 부지런함은 그들의 오랜 민족성이었다. 

여담이지만 독일은 호밀 생산량이 많다. 땅이 척박해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기 힘들다. 그래서 호밀을 이용해 맥주를 만들었다. 오랜 시간 연구와 노력을 거치면서 발전시킨 것이다. 이것도 팔기 위함은 아니었다. 맥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이다.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됐으니 2차 산업을 키워야 했다. 러시아처럼 지하자원이 풍부하지도 않고 남부 유럽처럼 기후가 온화해 농작물이 잘 크는 땅도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다. 

19세기 초반 독일은 300개 이상의 군소국가 집단의 봉건적 영주제였다. 그곳에서 장인들이 집 안 한편에서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고 조립하고 발명하고 발전시켰다. 자원도 없는 좁은 땅덩이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부족한 시장 수요를 이웃 국가에서 찾으려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수출과 수입이 그들이 사는 길이었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정서적 세계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국경을 넘을 때마다 세금을 내야 했다. 300개가 넘는 작은 국가마다 세금을 내야 하니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관세동맹이 이뤄졌다. 모든 연방은 정치적 주권을 유지하되 공통의 관세율을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독일 국민 경제 형성의 시초가 됐고 통일 독일제국의 모체가 됐다. 경제 부문에서 비용의 절감과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통합 노력이 통일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경제적 단일이 이뤄지자 바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서는 한참 늦었다. 영주제도 때문이었다. 각국을 통합하면서 관세는 없어졌는데 문제는 제품과 물자의 수송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철로를 만들었다. 지하자원이 많지 않은 독일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철과 무연탄이었다. 덕분에 철을 녹이는 제련 기술이 세계 최고였다.  

6킬로미터의 철길이 뚫렸다. 이때만 해도 영국은 544킬로미터, 프랑스는 141킬로미터에 이르는 철길이 있었다. 그런데 철도 부설이 엄청나게 빨랐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도망이 5000킬로미터에 이르면서 프랑스가 구축한 철로(약 2400킬로미터)보다 두 배나 길어졌다. 독일 국민의 근면성과 기술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300개가 넘는 국가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던 때에 갑자기 국가가 통일되고 산업혁명이 일면서 철도망이 뚫렸다.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더욱 좋아졌다. 그래서 지역마다 산업과 공업 기술이 골고루 발전하게 됐다. 이런 환경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지적 능력이 한 지역(수도)으로 집결되어 있는데 독일은 널리 분산된 드문 국가다. 작은 마을에서도 세계를 석권하는 기업을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 가계산업의 형태로 한 오랜 기간 기업을 이어온 곳이 많다. 현재 독일은 세계시장 수출 점유율 1~3위를 기록하는 기업이 1300개 이상 된다. 미국 366개, 일본 220개보다 월등히 많고 유럽 주요국에 비해서도 10배 이상 많다.      


아우토반과 뉘르부르크링

물자 수송을 위한 철도도 필요했지만 구석구석 갈 수 있는 차도 필요했다. 19세기 자동차는 필요에 의한 생산이 아니라 거의 창조에 가까웠다. 칼 벤츠가 세계 최초로 실용적인 단기통 삼륜자동차 특허를 획득한 것이 그렇다. 이후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급물살을 탄다. 막강한 철강 기술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손재주와 근면이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발발한다. 독일인들의 강한 민족애가 민족우월주의가 되면서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당시 철강 산업의 발전과 좋은 손재주로 탱크, 비행기, 군함, 잠수함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를 개발했다. 라인메탈(Rheinmetall)이라는 뛰어난 군수업체도 이때 생겨났다. 하지만 영국-프랑스-러시아 연합국에 미국까지 동조하면서 독일은 패전국이 됐다. 

연합국은 독일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청구한다. 패전국에게 가해지는 응당한 대가였다. 독일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빠지게 됐고 대량 실업자가 생겼다. 이에 아돌프 히틀러는 경제 정책의 하나로 아우토반 건설 계획을 세운다. 공공사업을 통해 실업률을 잡겠다는 것이었다. 

1932년 쾰른과 본 사이를 왕래하는 최초의 아우토반이 개통됐다. 그리고 6년 만에 3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고속도로망이 구축됐다. 독일의 실업률이 낮아진 것은 물론 인원과 물자 수송에도 큰 역할을 했다. 현재 독일은 고속도로만 1만4000킬로미터로 미국 다음으로 고속도로가 많은 나라다. 국토 면적 대비로 따지면 가장 높다. 

전쟁의 여파로 국토는 폐허가 됐지만 그들의 기술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경제부흥 정책으로 고속도로가 생기자 자동차 생산이 급물살을 탔다. 지구에 유일한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는 자동차 생산량뿐만 아니라 기술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빨리 달리기 위해 차의 구조와 형태가 변화하고 엔진의 성능이 향상됐다. 당시 프랑크푸르트~다름슈타트 구간은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이 최고속도 기록 달성을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아우토반은 차의 속도를 늦추지 않기 위해 코너 각도 완화하면서 빠르게 통과할 수 있게 했고 각도의 변화가 없어 스티어링휠을 한 번 돌리면 그 다음 조향 없이 그대로 코너를 빠져나갈 수 있다. 코너 바깥쪽도 안쪽보다 약간 높였다. 이런 도로를 달리기 위해서는 큰 차든 작은 차든 차체 강성이 중요했다. 우리가 독일차에 대해 소위 말하는 ‘단단하다’는 느낌이나 생각은 아우토반을 달리기 위해 차체 내구성을 단단하게 했기 때문이다. 의도적이었든 그렇지 않든 아우토반은 독일차의 내구성과 성능 그리고 안전성 향상에 큰 역할을 했다. 

아우토반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길고 주행 여건이 가장 가혹한 뉘르부르크링 서킷도 독일차의 주행 특성에 큰 역할을 했다. 차를 테스트하기 아주 좋은 여건이었으며 뉘르부르크링에서 견뎌낸 제품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내구성과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뉘르부르크링도 히틀러가 만들었다. 

그런데 아우토반과 뉘르부르크링만이 독일차의 기술 발전을 이끈 건 아니다. 독일에는 자동차 메이커뿐만 아니라 기술 좋은 부품회사들이 많았다.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회사 로버트 보쉬가 독일 기업이다. 1886년에 설립됐으니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한 부품회사다. 설립 1년 후 가솔린 엔진용 전자 점화장치를 만들었다. 지금 대부분의 자동차 메이커는 보쉬 연료 인젝터를 사용한다. 보쉬 매출의 70퍼센트가 라이선스 비용이다. 모든 메이커들이 연료 직분사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쉬의 특허를 피해갈 수 없다. ECU도 대부분 보쉬 것을 쓴다. 보쉬는 전기차 세상도 철저히 준비했다. 바로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이다. 배터리를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이 기술도 세계 최고다. 

로버트 보쉬 외에도 콘티넨털, ZF, 베바스토 등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회사 중 21개가 독일 기업이다. 가까운 곳에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부품회사가 많으니 그만큼 공급이 쉽고 적용도 빨리할 수 있다.

독일인들은 민족적 정서상 생각을 많이 한다.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식이 깔렸다. 부지런하다. 손재주가 좋아 다방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지녔다. 사회에선 기술자들이 대접받고 마이스터가 존경받는다. 이 같은 의식이 자동차 산업에 깊이 깔려 있다. 더불어 아우토반과 뉘르부르크링이 자동차의 내구성과 성능 향상에 좋은 토대가 됐다. 좋은 기술을 지닌 부품회사도 많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건대 독일은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는 아주 좋은 환경이다. 

“단순한 것이 가장 좋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는 독일에서 통용되는 말은 아닙니다. 독일은 복잡해도 완벽하면 그만인 거죠. 독일차를 보세요. 정말 많은 기술이 들어갑니다. 엔지니어링적으로 아주 복잡하죠. 하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독일이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술을 지녔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도 완벽한 기술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그 기술 이면에는 인간애에 대한 존귀한 철학이 근간을 이룬다. 

누군가 “독일차는 감성이 메말랐다”고도 한다. “엔지니어링에 너무 완벽을 기하다 보니 기계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성이 풍부한 유럽의 다른 메이커들은 지금 어떤가? 돈이 없어 허덕이다 이곳저곳 팔려 다니는 신세이거나 독일 메이커 휘하에 있다. 

차를 만드는 건 감성이 아니라 기술이다. 기술이 없다면 감성도 없다. 독일은 인간을 위한 기술로 자동차를 만들었다. 기술이 바로 독일의 감성이다. 

이진우 소속 직업에디터
구독자 75
작가의 이전글 느낌 있는 자동차 별명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