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뭐 먹지?
올해 연초 다짐은 주말에 일주일치 저녁 식단을 짜두고 고민하는 시간 없이 메뉴에 맞추어 장을 보고, 쉽게 쉽게 요리해서 먹자는, 건강하고도 수월한 식사 시간만들기였다.
저녁에 아이들을 픽업하고 오면, 그때부터 뒤치닥거리 한바탕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오늘 저녁 뭐 먹을 거냐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 오가다 보면 점점 배가 고파오면서 대체로 마음도 지치고, 말도 날카로워지곤 했다.
서로 번갈아가며 재택을 하므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요리를 하자는 규칙이 있는데, 퇴근 후 집에 왔을 때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으면 왜 여태껏 요리를 시작하지 않았느냐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집에서 일하던 사람은 나도 일하느라 바빴는데 라며 입장이 팽팽해지는 것이다.
이토록 '저녁 준비'가 중요해진 이유는 저녁을 늦게 먹을수록, 육퇴 시간도 늦어지는 상관관계를 터득했기 때문.
연초 다짐에 걸맞게 자주 먹는 음식과 최근 요리책에서 알게 된 메뉴들을 적은 우리만의 메뉴판을 야심차게 코팅까지 하여 냉장고에 붙여놓았다. 아이들과 함께 한 주 동안 무얼 먹고 싶은지 정하는 일은 꽤 즐거웠고, 일주일 식사 계획표는 우리의 소중한 저녁시간을 평화로이 지켜주는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9월. 체계적이었던 시스템은 서로 일하러 가는 날들이 섞이고, 먹고 싶은 음식이 바뀌고, MBTI결과에 J라고는 나오지만 뼛속까지 J는 아닌 듯한 우리 부부의 특성 때문인지. 흐지부지 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주, 집에서 일하던 남편이 부랴부랴 요리해 낸 음식은 다름 아닌 냉동실에 있던, 이제 막 사둔 비비고 왕교자 770g 봉지째였다.
냉장고 털기식으로 요리했다며, 빈약하게 곁들여진 다른 음식들과 접시에 가득 담아 내온 만두를 보는데 속이 끓기 시작한 건 왜일까.
비비고 만두는 럭셔리인데
아시아 마켓에 가면 중국 냉동 만두를 파는데, 남편은 곧잘 그 만두를 사 오곤 했다. 보통 한 봉지에 4~5불 정도로, 만두피가 두껍고, 만두소는 알맹이로 고기완자 같은 느낌의 만두이다. 남편도 아이들도 만두소가 씹혀 맛있다는데 나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중국 만두를 사 오면서 항상 같이 사 오는 노란색 복주머니 모양의 완탄(wonton)은 그나마 먹을만 했는데, 얇은 만두피가 한몫을 했다.
두터운 중국 만두를 보고 나니 내 기준에서는 비비고가 더 특별해졌다. 16~17불이라는 적지 않은 값을 하지만 얇고 쫄깃한 만두피에 속도 꽉 차 있는데다 한국에서 먹던 맛 그대로 입맛에도 맞았다.
타지에서는 이런 음식을 사먹는 일이 럭셔리라고 정의하며, 생각나면 종종 사두곤 했다. 재택 할 때 간단한 점심용으로, 혹은 아이 도시락용, 저녁에 별미로 굽는 정도로 먹으면 냉동실에 적어도 1-2주 정도 두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전날 사둔 비비고 만두를. 남편 본인의 게으름(?)으로, 한 봉지를 시원하게 다 뜯어서 프라이팬으로 와다다 쏟아내 요리했다는 것 아닌가. 배가 고파서 그랬을까. 내 소중한 만두를 중국 만두 취급하다니. 속상함이 몰려왔다.
이 만두는,
냉장고 털기용으로 먹는 만두가 아니야.
“중국 만두나 냉장고 털기용으로 다 쓰는 거지. 이건 아껴먹는 만두라고!"
(진심으로 내뱉은 문장인데 이렇게 텍스트로 담으니 참 사소하고 창피하다.)
가끔은 남편이 한국인이었으면 내 마음을 알아주었을까 싶다. 그래봤자 만두라고, 다 똑같은 냉동식품이라는 남편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당신에게는 그저 '냉동식품'일뿐이겠지만, 나한테는 추운 겨울 중앙시장 들어가는 입구에 큰 솥 째로 쪄서 파는 만두가 떠오를 때 꺼내 먹는 한국의 공기이자 추억인데.
졸지에 만두에 집착하는 와이프가 되어 버린 것도 억울한데, 사놓은 만두도 탈탈 털려서 속상했다는 이야기. 별 것도 아닌 걸로 서로의 속을 뒤집던 에피소드는, 남편이 한국 슈퍼마켓에 가서 똑같은 비비고 만두를 사 냉동실에 채워놓으며 무언의 화해로 일단락 되었다.
그냥 다시 일주일 메뉴 짜기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