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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혜 Oct 03. 2022

친필 악보로 만나는 유럽

‘유럽음악시즌’(Saison Musicale Européenne)


새해 첫날 파리의 밤이 파랗게 물들었다. 에펠탑·루브르박물관·파리오페라 등의 역사적 건물에 파란 바탕의 유럽연합기를 입힌 이 조명 퍼포먼스는, 프랑스가 올 상반기 ‘유럽연합이사회’의 의장국이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다.

유럽연합기 조명을 입은 에펠탑과 오페라 가르니에 ©Jonathan SARAGO / MEAE


유럽연합(EU)은 유럽 27개 회원국을 하나의 통합된 국가로 간주하는 초국가적 정치·경제 공동체다. 국가 간 출입국 심사와 비자, 관세 등을 철폐하고 화폐를 함께 쓴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약 6%(약 4억 5천 만 명), GDP는 세계 경제의 약 17%(약 15조 달러)을 차지한다.


몇 년 새 브렉시트와 이민자 유입, 국가주의 여파로 다소 위상이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EU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견제할 유일한 세력이며, 그만큼 EU의 미래 정책 역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이사회는 EU의 정책을 결정하는 입법 기관이자 상원이다. 이사회 의장국은 EU 정책을 이끌고 회의를 주재하는 국가로 각 회원국이 6개월씩 돌아가며 맡는다. 프랑스가 의장국이 된 것은 2008년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BnF 산하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 © David Paul Carr(좌), Yoonhye Jeon(우)


보편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문화 유산, 음악


프랑스의 의장국 임기를 축하하며 프랑스 국립 도서관(BnF)과 프랑스 뮈지크(France Musique, 라디오 프랑스 음악국)가 문화부 후원 아래 ‘유럽음악시즌’(Saison Musicale Européenne)을 시작했다. BnF가 소장한 17~20세기 악보 가운데 유럽 국가 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들을 뽑아 6개월 동안 선보이는 약 20회의 연주 대장정이다.


“문화부가 저희에게 의장국을 기념하는 문화 시즌을 요청했을 때, 우리는 프랑스가 가진 보편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문화 유산인 ‘음악 컬렉션’을 이용하기로 했어요. BnF가 보존·연구 중인 수많은 음악 자료 컬렉션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자료, 즉 작곡가의 친필 악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BnF의 음악 부서장 마티아스 오클레어(Mathias Auclair)가 말한다.


BnF는 음악 부서에만 200만 개의 악보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악보 자료실 중 하나다. 이번 시즌을 위해 BnF가 공개할 악보들은 이탈리아의 몬테베르디부터 독일의 베토벤,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 벨기에의 세자르 프랑크, 폴란드 쇼팽을 비롯해 핀란드의 린드베리, 루마니아의 에네스쿠, 프랑스의 현대작곡가 미셸 레베르디(Michèle Reverdy)에 이르는 다양한 유럽 작곡가들의 원본이다.


BnF가 공개한 베토벤 교향곡 9번 1악장의 베토벤 친필 악보. © BnF, département de la Musique


1월에는 두 연주회가 열렸다. 1일에는 새해를 기념하며 유럽이 연합하는 의미로 미코 프랑크/라디오 프랑스 필이 베토벤 9번 ‘합창’을, 7일에는 시대악기 오케스트라인 르 콩세르 드 라 로쥬(쥘리앵 쇼뱅 지휘)가 미테랑 도서관에서 본격적으로 시즌을 오픈했다. 고전시대 파리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던 하이든, 모차르트와 다보(Jean-Baptiste Davaux, 1742~1822) 작품들을 엮었다. 이날 연주를 맡은 르 콩세르 드 라 로쥬(le concert de la loge)는 당시 하이든에게 6개 교향곡을 위촉·초연한 르 콩세르 드 라 로쥬 올랑피크의 후신이어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2월에는 프랑스의 전설적 플루티스트 장 피에르 랑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4월에는 체코 작곡가 안톤 라이하를 오마주한다. 5월에는 미코 프랑크/라디오 프랑스 필(레오니다스 카바코스 협연)이 독일의 브람스와 슈만 작품을, 6월의 생 리키에 수도원에서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바로크 음악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BnF가 공개한 쇼팽 발라드 2번 op.38과 모차르트 서명이 남아 있는 오보에 4중주 친필 악보 ©BnF, département Musique
BnF 산하 리슐리외 도서관의 오벌 룸 © Emilie Groleau

유럽음악시즌은 BnF 산하 도서관과 메종 드 라 라디오, 샹젤리제 극장 등지에서 열린다. 그 가운데 과거 왕립 도서관이자 박물관, 예술연구소가 모인 리슐리외 도서관은 10년간 약 2억 5천만 유로(약 3천 4백 억 원)를 들인 복원 사업을 지난해 끝냈다. 천장 높이만 18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열람실 오벌 룸을 비롯해 유리 돔으로 덮인 19세기 초의 아르누보 회랑이자 연주회가 열릴 갤러리 콜베르 등 꼭 한 번 들를 가치가 있는 곳이다.


글 전윤혜(프랑스통신원)


* 이 글은 월간객석 2022년 2월호에 실린 기사 <친필 악보의 명령을 따르다>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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