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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증후군에는 약도 없다더라

당신의 파리와 나의 파리



파리는 움직이는 이동 축제의 장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리에 대한 가장 고전적이지만 늘 가슴 설레게 하는 정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파리는 움직이는 거대한 이동 축제라는 것이다. 이 말처럼 나도 가슴 한 켠에 기대감을 가지고 파리 생활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전세계인이 사랑하는 도시엔 뭐가 있어도 있겠지! 그걸 발견 못하면 도시의 잘못이 아닌 파리를 사랑하지 못하는 너의 잘못일 뿐야. 열심히 좋은 점을 찾아서 그걸 보고 살아야 해.'


내 마음 한 켠에서 계속 소리내던 목소리였다.


케냐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독일 친구 클라우디아와 파리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파리 생활은 좀 어떠냐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솔직한 마음을 아주 약간 내비쳤다. 나는 파리가 좋은지 모르겠어서 힘든 것 같아.


그러자 클라우디아는 놀란 눈치로 대답했다.  


"봐, 파리는 너무 아름다워. 파리 밤거리를 걸어도 질리지 않아. 너랑 헤어지면 난 이대로 집까지 파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걸어갈 작정이야.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어. 이 건물들을 봐."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도 그런 친구를 따라 주위를 휘익 둘러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파리의 밤은 아름답다.
낮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어둠의 자락으로 덮어주기 때문이다.


2012년 첫 파리 여행


나는 파리의 무엇을 사랑하나. 나는 파리의 야경을 사랑한다. 파리는 밤에 아름다운 도시다. 아마 낮에 보이는 것들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일까. 밤은 이 도시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신비로움을 마음껏 발산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마치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밤 12시만 되면 시대 여행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미스터리한 로맨스가 살아나는 곳. 밤의 파리는 온갖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수놓는 전등까지 아름답다. 벨 에포크 시대에도 그 자리에 있었을 같이 오래된 건축 양식의 아파트들과 검고 구불구불한 테라스의 모습은 의외로 유럽 외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특히 센느 강변의 어느 다리의 사진을 찍어도 밤에는 은은한 보랏빛이라든가 황금빛 불빛들이 찍혀 파리의 신비로운 마력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처음 파리의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며 한껏 로맨틱한 감성에 젖어도 봤지만 그 감성은 첫 한 달을 넘기지 않았다. 도시가 현실로 다가오자 좁은 아파트 안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거주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리와의 나만의 허니문 기간을 끝낸 모양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이제는 사람들이 다 아는 파리에 대한 부정적인 클리셰가 있다. 느릿느릿한 행정 처리, 지하철, 길거리 분비물, 간접 흡연... 파리의 민낯들 말이다. 강아지 한 마리나 지나갈까 하는 좁은 길에서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다니기에 달인이 되는 것, 한국의 아파트 단지처럼 아파트에 기본적으로 있는 줄만 알았던 주차장이 사실은 조금 더 비싼 아파트를 가야만 누릴 수 있는 옵션이라는 것,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당한 간접흡연들도 이제 모두가 아는 진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사실 파리를 매우 중립적으로 보고자 한다. 좋은 것도 분명히 있고, 생활하며 불편한 것도 있다. 한국인으로서 해외에 살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만족과 불평이라는 감정들 역시 모두 내 몫이다.




왜?
Pourquoi?




파리를 걸어다니며 느낌표! 의 시선보다는, 왜? 라는 물음표의 시선으로 바꿔나가며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그러한 짧은 단상들을 나누며 작은 토론을 즐기곤 했다. 남편과의 토론은 파리가 그런 발자취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성적으로 납득하고 설명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오히려 나의 파리 신드롬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파리에 살기 시작하면서는 문화의 차이에서든 뭐든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분석하고 설명하려 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파리 증후군(Paris Syndrome)은 프랑스를 동경해서 파리에 살기 시작한 외국인들이 현지의 관습에 적응하지 못하여서 우울증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다 생기를 잃은 얼굴로 귀국하는 여성들이 가지는 감정이라고 한다. 1991년 일본 정신과의사인 오타 히로아키가 저서를 출판하며 차차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이나 영화에 의해서 만들어진 허상의 이미지를 파리로 받아들이다가 현지에 가보고 현실을 마주하면서 심각한 괴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위키백과)


내가 보이는 증상이 약도 없다는 파리 증후군 같았다. 이건 어떤 의사를 보러가면 되나? 파리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던 게 차이점이지만 증상이  비슷했다. 파리증후군에 걸린 것일까?기대와 실망의 경지를 넘어 파리를 거주자로서 이해하려고 하는 손짓일까? 아이러니하게 파리지앵처럼 불평이 늘어가다니 오히려 파리와 궁합이 맞다는 반증일까? 어느 쪽이든 파리가 사람을 미치게 다. 


당신의 파리와 나의 파리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기서 살아내야 한다. 내게 내려진 글쓰기라는 처방약을 소화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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