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히레 Jan 13. 2023

들기름으로 볶은 소고기 미역국

    

‘들기름으로 미역 볶기’

크리스마스이브 때 갈비찜을 하겠다고 남아있던 참기름병을 탈탈 털었더니 방앗간표 참기름이 동나버렸다.

‘미역국은 모름지기 참기름인데 어쩌지?’

전날 미역을 미리 불려두며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에 담근 후에야 기억난 게 문제지만. 아침 7시, 알람이 울리자마자 번쩍 눈을 떴고, 머리맡 핸드폰을 들어 들기름과 미역 볶기를 검색해 봤다. 인터넷에는 친절한 요리 고수들이 참 많다.

“저희 집은 들기름으로 볶아요. 그럼 국물도 뽀얘지고 향도 좋더라고요.”
“저희 남편은 냄새 때문에 싫어하는데 저는 들깨까지 뿌려서 들깨 미역국으로 끓여요.”     

아침부터 편의점에 가서 참기름을 사 오긴 싫었고, 남은 길은 하나뿐이었다. 들기름병에는 딱 아빠 숟가락으로 2번 나올 정도의 양이 남아있었고 들기름으로 미역 볶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올해 들어 부쩍 아침 기상이 힘들어졌다. 추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집 위생이 안 좋아진 걸까? 2022년의 미련과 회한이 내 발목을 붙들고 있는 걸까? 눈에 딱풀을 붙인 것처럼 두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았고 두 어깨와 두 다리는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7시 알람, 7시 30분 알람, 8시 알람, 8시 10분 알람... 수차례 알람을 끄고 다시 눕기를 여러 번, 눈꺼풀을 드니 10시, 12시, 심각할 때는 1시였던 적도 있다. 그렇게 일주일, 다시 정신을 차리고 꾸역꾸역 일어나길 하루이틀, 일찍 일어난 날만큼 늦잠을 자는 생활 패턴이 반복되어 고착될 지경이 이르니 스트레스와 자괴감이 몰려왔고 자기 혐오증도 생길 것 같았다.

‘아니, 나 이렇게 나약한 인간임?’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하루를 시작하다니...’

아침에 늦게 일어난 만큼 일과는 저녁으로 밀려났다. 새벽 3시, 4시에 잠들기 일쑤였고 다음날 7시에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 없는 구조가 반복되었다. 늦게 일어나면 그만큼 몸이 늦게 눈을 뜨고, 머리도 지끈거린다.

‘아... 조금만 더 잘까? 어차피 저녁에 하면 되는데. 아침에 행복하게 눈을 뜨는 게 중요하잖아.’

아... 프리랜서의 덫에 빠지고야 말았다.  

“프리랜서는 루틴이에요.”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역설하며 돌아다녔는데 부끄럽다. 아침에 전화 영어를 한다든가, 새벽 운동반을 끊는다든가, 절대 놓쳐선 안 되는 고정 루틴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 아침에 요리를 해보자.’

파 껍질을 벗겨 다듬기와 양파나 호박 깍둑썰기 등 건강한 재료를 정갈하게 도마에 올려놓고 일정한 가격과 리듬으로 ‘석뚝썩뚝’ 써는 감각에서 하루의 안정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침 요리로 집중과 영감을 간편하게 얻을 수 있다니 유레카다.


고기 넣은 미역국도 맛있다!



결심하고 나서 첫 번째 아침이었다. 먼저 사과 반 개로 아침을 해결한 뒤 전날 불려놓은 미역을 가위로 잘게 잘랐다. 냄비를 꺼내 들기름을 탈탈 털어 해동한 소고기를 넣고 달달 볶았다.

"뭐가 좀 부족해.. 미역이... 좀 부족한가?"

미역을 추가해서 더 볶아봤다. 잠깐. 불현듯 아까 들기름을 꺼내며 소형 참기름 비스므리한 병을 본 것 같아 부엌 찬장을 열었다. 저 구석에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대량생산 마트형 참기름이 숨어있었다. 엄마가 준 소주병 방앗간 참기름만 먹다 보니 마트에서 산 참기름은 뒷전이었던 것이다. 심봤다! 뒤늦게 참기름을 한 숟가락 추가해서 들들들 볶자 내가 원하던 향이 올라왔다. 10분 정도 볶다가 미역이 잠기고도 남을 정도로 물을 붓고 가스불을 강하게 올렸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 ‘퐁 - 퐁 -’ 냄비 가장자리에 끓어오르는 기포를 보며 내가 갈구하던 집중과 안정이 찾아오길 바랐다.


간이 싱거워 국간장을 살짝 추가했다. 예전엔 진간장과 국간장을 구별하지 못해서 매번 진간장만 넣었더랬다.

“엄마, 간장을 이만큼이나 넣었는데 도저히 간이 안 맞아 어떡하지?”
“뭐 넣었는데?”
“양조간장”
“으이구 국간장 넣었어야지.”
“왜?”
“국간장이 국 간하는 거니까.”
“진간장은?”
“진간장에는 조미 양념이 되어있어. 들 짜”

진간장과 국간장은 매번 헷갈린다. 간장을 넣으라는 레시피를 읽으면 생각없이 손에 잡히는 간장을 넣고 만다. 모든 요린이에게 벌어지는 일이다. (“국간장의 국이 뭐라고 생각한 거야?” - 드라마 <검블유>)


미역국은 내 인생 최초의 요리다.

‘엄마 생일 미역국은 누가 끓여주지?’

엄마는 일 년에 3번 꼬박꼬박 미역국을 끓이지만 정작 당신 생일 땐 건너뛰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내가 끓이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것 같다. 미역을 불려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엄마와 함께 첫 생일 미역국을 끓였다. 그해부터 엄마 생일날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전날 불린 미역을 잘게 잘라 넣어 볶았다. 여러 해 다져진 실력으로 유튜브 레시피나 별도의 계량 없이도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리 중 하나가 되었다. 요즘엔 전날 저녁에 바가지에 물을 붓고 미역을 불릴 때면 엄마 생일이 음력 며칠이더라 떠올린다.


냉동실에 보관해 두던 마늘을 꺼내 퐁당 - 넣고,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멸치액젓을 추가했다. (언제나 내 필승 킥이다. 실제로 적용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든 요리에 멸치액젓을 넣는다. 멸치액젓 신봉자다.) 한소끔 끓어오르길 기다리며 요거트에 냉동 블루베리를 넣어 아침 식사를 마무리했다. 뭐, 들기름 넣고 볶은 미역국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히레 소속 수집품가게 직업 번역가
구독자 972
매거진의 이전글 굿모닝 쿡모닝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