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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May 27. 2024

헤밍웨이의 책상

상징적 존재가 필요해


  

“더 밀어봐.”

“들어갈 것 같은데?”

“잠깐만! 잠깐만!! 꼈다, 꼈어!!”          


늘 실용적인 결정만 내리고 살아오진 않았지만, 오늘처럼 머릿속이 노래졌던 적은 없었다.

‘어쩌지..?’라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답이 없어 보였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선책 아니면 차선책, 정 안되면 우회로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모면하며 살아왔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애초에 왜 이토록 무모한 결정을 내렸는지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 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물어보고 싶었다.

 “왜!!”          




이곳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 자칭 헤밍웨이의 책상이 뿜어내는 분위기는 어마어마하다.

나긋나긋하지만 우아한 손길로 ‘어서, 이리 들어오겠어요?’ 인사를 건네듯 객을 이끈다. 체리나무로 만들어 묵직하고도 은은한 색감 덕에 지나치게 웅장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으며 적당한 위엄과 우아한 인상을 자아낸다. 이 책상은 올 한 해 우리가 내린 모든 결정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업적’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한옥을 찾은 엄마, 아빠, 동생, 형, 친인척, 손님, 택배 기사까지 모두가 책상의 출처를 궁금해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이 책상이 말이야, 우리 차에 실어가지고 말이야,

전라도 광주에서 왕복 6시간 걸려서 데려온 녀석이란 말이야.”

사랑하는 내 새끼를 내보이는 어미 고양이라도 된 양 한옥의 상징이 된 이 녀석이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




유독 추운 안동의 겨울을 버텨냈고 늦어졌을지언정 공사 또한 무사히 재개되었으니 바랄 나위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이제 공간을 채울 가구를 찾아 서둘러야 했다.     

‘책장, 의자, 전시장... 책상은 몇 개가 필요하지? 의자는? 아 정말 필요한 게 왜 이렇게 많아.’

여러 각도에서 한옥 내부와 외부 사진을 찍고 마루와 벽의 가로세로 길이와 코너를 확인하고 스케치북에 구조를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은 가구 사진을 오려 붙이면서 스크랩북을 만들어 아날로그식 배치와 조합을 통해 필요한 가구 목록을 정해나갔다. 문제는 가구가 비싸도 너무 비싸다는 거였다. 게다가 오래된 가구, 앤틱 가구는 한 점당 가격이 백만 원을 훌쩍 넘겼기에 마음에 들어도 매번 가격 앞에서 포기해야 했다. 중고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새것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시간이 담긴 가구를 한옥에 들여놓으면 그만큼 멋이 더해질 것 같아. 그게 진정한 아날로그지.’


당근마켓, 중고나라, 번개장터...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중고 제품을 판매하는 사이트에 모조리 가입하고 난 뒤부터 틈만 나면 지역별로 중고 제품을 찾아보고 거래를 시도했다. 첫 당근 거래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서까래를 복원한 실내 공간에 누구든 자유롭게 열어보고 원하는 걸 고를 수 있는 작은 서랍을 놓고 싶었고 한약방에 있는 작고 오래된 약장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템이었던 약장은 중고 매물로 나오는 족족 빠르게 팔리거나 크기가 너무 커서 한옥에 들여놓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아담한 크기에 사용감이 적당한 약장이 나왔고 당장 거래가 성사되었다. 판매자가 공유한 주소를 검색했더니 대구의 한 횟집 나왔다. “횟집이라고?”



쭈뼛쭈뼛 들어가서 “저, 당근에서 약장 보고 왔는데요,”라고 말하니 점심 장사 후 한쪽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던 주인 내외분이 벌떡 일어나셨다.     


“아이고, 젊은이였네. 점심은 먹었어요?”

“아직이요.”

“그럼 회덮밥 하나 말아줄 테니 먹고 가요.”

“하하 괜찮아요.”

“아니야, 돈 안 받을 테니까 먹고 가요. 밥도 못 먹었어 이 시간까지.”     


'아이고 이거 아쉬우니까 여기 숟가락, 이거 거북이도' 하시더니 어느덧 양손이 꽉 차버렸다. 기분 상할 일이 많은 시기였다. 대문 때문에, 조명 때문에, 이런저런 이슈로 속 끓이고 점점 성질이 고약해지던 무렵 약 한 달 동안 경상북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가구, 빈티지 가구, 소품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따뜻한 온도과 친절한 배려에 위로받고 사라지려던 인류애 옷자락을 붙잡고 다정한 인간이 되어 험난한 여정을 완수하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사 모은 가구 덕에 가구가 집주인이 되고 우리가 객식구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고개를 돌리면 예스러움을 뽐내는 존재 덕분에 오픈하는 날까지 버틸 수 있었다. 심지어 엄마한테 부탁해서 오픈 직전까지 고가구 중고 거래를 이어갔고 엄마는 소금과 팥을 뿌려 제대로 가구를 받아왔다.


크고 작은 가구가 용도와 디자인에 따라 모두 제자리를 찾았지만, ‘헤밍웨이의 책상’은 진작 정해진 자리가 있건만 아직 소재지조차 파악이 안 되는 상태였다. “‘헤밍웨이의 책상’이라니? 그런 게 있어?”라며 궁금해할 텐데 당연히 진짜로 헤밍웨이가 썼던 책상은 아니다. 한옥 그리고 우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상징성을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구. 우리가 한옥을 선택하고, 고난의 여정에 나선 이유를 한 아름 껴안고 있는 가구가 필요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을 팔고 있는 우리에게 상징성을 띠는 존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블록 옆에 있는 한옥 스테이는 잠을 자는 숙소, 맞은편 미싱공방은 핸드메이드 옷을 팔고, 건너편 카페는 커피를 판다. 우리는 무엇을 파는 걸까? 뭘로 보여줄 수 있을까? 깊은 고민이 이어졌다.




우리는 아날로그 아카이빙의 경험을 추구하며 기록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책상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헤밍웨이도 바닥에 앉아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니 <움직이는 축제>와 블랙윙을 놓아둘 ‘헤밍웨이 책상’ 필요했고 누가 봐도 헤밍웨이란 이름과 어울려야 했다.

‘아, 대문호 헤밍웨이요? 고래를 잡기 위해 평생을 싸운 노인 말이죠? 어울리네요.’     


‘네? 헤밍.. 웨이.. 요?’라는 반응은 용납할 수 없었다. 위대한 문호와 걸맞은 책상은 어떤 크기에 어떤 색상이어야 하지? 밤을 새워가며 세상의 모든 책상과 의자를 찾아 헤맸다. 내 생각에 헤밍웨이는 사치가 심하거나 (물론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허풍을 떠는 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파리에서 살던 시기는 그리 부유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검소하지만 까다롭고 본인의 취향이 아주 확고했다. 파리의 거리를 거닐고 여러 작품을 쓰던 시기의 헤밍웨이를 상상하며 한옥을 대변할 책상을 몇 개월 동안 찾아 헤맸고 온라인을 뒤지다 못해 발품을 팔아 카페, 스튜디오, 쇼룸 등을 돌아다니면서 남의 가구도 탐내며 책상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 정말로 마음에 드는 책상을 발견하고 말났다.


"이거야." / "이거 어때?"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이 책상이라고. 당장 가구 회사에 문의했더니 단종되어 이제 볼 수 없는 제품이라며 ‘저도 오랜만에 보네요. 아쉽지만 이제 생산하지 않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포기할 수 없었다. 틈날 때마다 중고 사이트를 들락날락했고 마침내 전라도 광주에서 운명의 책상을 발견했다. 판매자는 이사를 앞두고 딸이 쓰던 책상을 중고 시장에 올려놨다고 했다.


“버리기 아까워서 누구라도 써주길 바랐어요. 우리 딸들이 썼는데 이젠 다 커버렸거든요.”

“감사해요. 정말 찾아 헤매었는데...”

“똑같은 게 하나 더 있는데 둘 다 하실래요 그럼?”

“저희 차가 작아서 하하”     

“트럭 가져오셨죠?”


책상은 사진보다 훨씬 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엘리베이터에 실어 1층으로 옮기긴 했는데 막상 차 옆에 내려놓고 나니 막막해졌다. 침묵.     


“일단 실어보자.”     

책상을 옆으로 눕혔다가 상부장을 떼서 끼웠다가 들어 올렸다가. N번째 반복하면서도 머릿속엔 ‘이건 무리다. 도저히 못 옮긴다. 우리 뭐 됐다’로 가득했다. 3시간을 달려 여기까지 왔는데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걸까? 다시 꺼냈다가 들어 올리려는데 팔에 힘이 빠져 순간 책상을 놓쳤고 차와 책상에 흠집을 내고 말았다. 한잔 걸친 사람들처럼 양볼이 불콰하게 달아올랐고 어깨와 팔은 뻐근해졌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어?”

“왜!”

“이거”

“응!”

“봐봐!”

“왜?”

“분리되겠는데?”     



경비실에 가서 자초지종 사정 설명을 하곤 드라이버를 빌려왔다. 천천히 기둥 조각과 상단 조각을 돌려봤다.

“빠졌다!”     


진짜로 눈물이 찔끔 났다. 월동을 끝내고 후반기 공사에 들어갔을 때도 이 정도의 안도감은 아니었다. 모든 장식과 조각을 안전하게 떼어 낸 후 천천히 트렁크에 밀어 넣었고 드디어

“실렸다!”     


1시간 가까이 현관 앞을 떠나지 못하고 고군분투하자 판매자분도 걱정이 되어 내려와서 지켜보시던 중이었다. 그분을 부둥켜안을 뻔했다.

     

“나는 정 안되면 용달 부르려고 했어. 너는?”

“나는 다리를 자르려고 했어.”

“뭐?”

“돈 아끼려고 운전해서 왔는데 아깝잖아. 다리는 다시 붙이면 되고.”     

어찌나 믿음직스럽던지. 다행히 책상다리는 무사하고 멋스러운 조각 장식도 안전하게 달려있다. 우리의 여정에서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 무생물인 저 녀석이 알까?     


겉만 번지르르한 공간은 실패한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겉보기에만 예쁜 공간으로 실패한 경험이 있었고 두 번째 시도는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실체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이야기와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이다. 굉장히 멋진 외관을 보고 들어갔는데 아무런 연관성 없는 물건이 늘어져 있다거나 공간이 전달하는 이야기가 없다면 사람들은 금세 흥미를 잃고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이번엔 반드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존재를 찾아 보여줘야 했다.

‘우리는 이 책상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요.’     


책상에 앉아 연필을 들고 손글씨를 써보고 한쪽에 놓인 타자기를 탁 탁 쳐보며 그리운 어린 시절의 기억, 불현듯 밀려오는 실체 없는 그리움, 나도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 책을 읽고 싶다는 어색하지만 간절한 기분, 어쩌면 상실감과 우울감. 우리가 만든 한옥은 움직이는 축제를 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다가 나도 몰랐던 혹은 잊고 있던 나만의 축제를 발견하고 영원히 간직하길 바랐다. 그러려면 책상은 적당한 크기에 실용적이며 사용자의 미적 허영심도 채워줄 수 있어야 했다.


집중하다가도 종종 고개를 들어 '이렇게 아름다운 책상에서 글을 쓰고 있다니!'라는 탄성이 나오는 책상, 헤밍웨이도 흔쾌히 라클로즈리 데릴라를 대신해 단편 소설 집필을 위해 매일 찾아 줄 정도로 멋있는 광주 출신 책상은 예상대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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