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밤비행이좋아 Aug 12. 2019

#5 작은 마을들을 위한 글

프로방스의 시골 마을


아비뇽 시내에서 벗어나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산 구비구비 작은 마을들이 숨어 있다. 산골짜기 띄엄띄엄 위치한 마을들을 보면서 도대체 누가 먼저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삶의 터전을 일궜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먼 옛날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가는 고립된 마을이었을게 분명한데 지금은 이곳에도 도로가 깔려 신기할 정도로 깊은 산골짜기에 관광객들이 드나든다. 제대로 된 위치만 알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아, 물론 차가 있다면 말이다. 

이 작은 마을들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강원도 산속에 위치해 있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그런 곳들이다. 처음 아비뇽 TGV 역에 도착했을 때는 아비뇽 시내 이외에 다른 마을을 방문하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뜻밖의 행운을 얻어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 잠시나마 머무를 수 있었고 덕분에 '앞으로 나는......'과 같은 생각은 지워버렸다.

(저...... 에는 수많은 것들이 숨어 있다. 앞으로 나는 뭐하고 살지?부터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등등) 


모든 마을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 가까이서 하늘을 보고 산을 둘러보고 마을을 내려다봤다. 똑같은 풍경이란 없었다. 다 다르게 아름다웠고 매 순간이 감동이었다. 

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 동화책을 읽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순수한 마음을 선사해 준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들을 위한 글이다.



보니오에서 바라본 마을 초입




Fontaine de Vaucluse (퐁텐느 드 보클뤼즈) 


본격적으로 산을 타기 전, 비교적 낮은 지대에 안데르센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마을이 있다. 바로 퐁텐느 드 보퀼뤼즈다.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 속 벨이 살고 있는 마을 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11세기에 형성된 이 마을은 Closed valley (가까운 계곡)이란 의미의 라틴어 Vaucluse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마을이 정말로 계곡 가까이에 있다. 특히나 계곡에 흐르는 강 sorgues(소르그) 에는 신성한 물이 흐른다고 한다. 그 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그냥 바로 퍼서 마셔도 된다'라고 가이드가 강조했었다. 언뜻 봐도 물속이 훤히 비치는 맑은 강물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카약 체험을 하는 중이었다. Sorgues 강을 검색해보면 수영, 카약 등 다양한 수상 액티비티가 나오는데 잔잔한 강물에서 역동적인 수상활동을 기대할 순 없지만 유유자적 노를 저어가며 주변을 경관을 즐기기엔 제격이다. 

마을에는 Sorgues 강으로 연결되는 냇가가 흐르고 이쪽과 저쪽을 잇는 나무다리와 물레가 운치를 더한다. 어딘가에서 벨이 노래를 부르고 앞치마를 펄럭이며 나타날 것 만 같은 마을 퐁텐느 드 보클뤼즈. 이 마을에 숨어버린다면 걱정이나 근심,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나 고난 따위가 사라지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봤다. 

동화 속 마을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좀 더 깊이, 더 위를 향해 달리다 보면 Gordes(고르드) 마을이 나온다. 



Gordes (고르드)


고르드 마을 중앙에서 바라본 산의 절경



Gordiens(고디언) 이곳 마을 주민들을 이렇게 부른단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드나 영드에 나올법한 말이다. 고디언이라니. 해발 300m에 위치한 Gordes 에는 약 20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와 이런 곳에 마을이 있다니'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도대체 누가 알고 찾아올까 싶지만 너만 빼고 다른 애들은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차를 빌려 오는 사람들은 물론 산악자전거로 이 험한 도로를 타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더라. 고르드는 굉장히 유명한 마을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자가 위치한 마을 중심에서는 산의 절경을 굽어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중앙이 뻥 뚫려 있어 마을 가장자리에 서서 산 안쪽을 정말로 ‘굽어’ 볼 수 있다.



마을 중심 정자로 통하는 길 / 팔뚝만한 바게트 샌드위치를 파는 곳



마을에서는 지역의 특산물을 판매하는 등 여느 마을과 다를 바가 없으나 이곳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점이 바로 이 지형에 있다. 높은 지대에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산속에 폭 파묻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은 그냥 여러 가구가 모여 이루는 하나의 큰 그룹이라는 사전적 정의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딱딱한 정의에게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을 줄은 몰랐다.



샌드위치와 젤라또



마을 정자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모두가 줄 서서 사 먹는 샌드위치와 젤라또를 파는 가게가 있다. 샌드위치를 파는 유일한 가게라 줄을 서는 건지 특출 나게 맛이 있어 줄을 서는 건지 아직까지 판명되지 않았으나 팔뚝만 한 바게트에 온갖 재료를 푸짐하게 넣은 샌드위치가 단돈 6유로다. 게다가 그 가게는 산과 계곡을 굽어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말 다한 거다. 근데 맛도 괜찮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알차고. 



마을 곳곳에 위치한 기념품, 소품가게



샌드위치를 먹으며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시작한 자리에 다시 와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한입에 베어 물었다가 입천장이 다 까져버렸지만 샌드위치를 끝장내고 다시 젤라또로 시작했다. 누가 프로방스 지역 아니랄까 봐 라벤더 맛 젤라또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었다. 향긋한 라벤더 맛과 새콤한 딸기맛 젤라또를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산골짜기를 굽어보고 있으니 몰려오는 감정이 눈으로 보는 감동인지 입안의 감동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라벤더 맛 젤라또도 꽤 맛있잖아' 




Bonnieux (보니오)


마을 입구에 위치한 교회



보니오는 고르드와 굉장히 가깝다. 차로 달리면 10분도 안돼 도착하는데 고르드보다 더 높은 해발 420m에 위치해 있다. 고르드가 이 곳에서 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이라고 생각해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었는데 소화도 되기 전에 보니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고르드가 산속에 파묻혀 산 골짜기를 굽어보는 곳이었다면 보니오는 위로 위로 올라가는 곳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다른 풍경이 보인다.



마을 꼭대기에서


보니오의 골목길이자 위로 향하는 비탈길



보니오는 일정 중 시간을 투자해서 찬찬히 둘러보며 사진 찍기 딱 좋은 곳이다. 마을 곳곳에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들이 있고 모든 골목이 다 달라 심지어 돌바닥의 문양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좁은 골목마다 어쩜 이렇게 다 다른지 이곳은 가정집, 저곳은 소품 가게 혹은 아무것도 없는 돌담길로 지루할 새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객도 더 많고 레스토랑, 기념품 숍 등 분위기가 더 활기차다. 마을을 더 많이, 잘 보고 싶다면 힘들지만 최대한 위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일단 마을 입구에는 교회가 있다. 한 비탈 올라가면 식당들이 있고 다시 한 비탈 올라가면 작은 소품 가게와 특산품을 파는 가게가 나온다. 그다음엔 정자가 위치해 쉬어가며 잠시 마을을 둘러싼 산을 바라볼 수 있고 다시 올라서면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마치 우리의 봉화대 같은 전망대에 오르게 된다. 사진 한번 잘 찍어보겠다고 난간에 올랐다가 종종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고양이와 마주칠 수 있다. 최대한 입을 틀어막고 놀라움을 삼키자. 그들은 남프랑스의 태양 아래 기막힌 절경을 즐기고 있는 중이니. 






 Roussillon (루시옹 혹은 후시옹)







루시옹은 아비뇽에서 무려 50km 나 떨어진 마을이다. 방문할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여타의 마을들이 라벤더 관련 상품에 주력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와인이 유명한 꽤 큰 마을이라고 한다. 방문객을 위한 별도의 주차장이 마을의 유명세를 대변한다. 주차장을 통과해 마을로 들어서면 늦은 오후 진한 햇살에 물든 루시옹이 모습을 드러낸다. 초반에 몇몇 가게를 지나면 건물 사이 낮은 입구가 보이는데 이곳을 통과하면 넓은 공간이 나온다. 바로 마을 중심이다. 그곳엔 음식점이 있고 라벤더 기념품 숍이 있다. 정말이지 신기한 구조다. 마치 큰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그마한 정원이 나오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로 다시 들어가는 유럽의 아파트 같은 구조다. 

세계 어디나 시골 마을에는 정자가 있는 건지 정자 주변엔 늦은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무려 130년 전통의 누가(Nougat) 




Avignon (아비뇽)




'14세기 교황청의 자리가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져 무려 70년간.....'

아비뇽 유수는 아비뇽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단어다. 주입식 교육의 무서움 일지 고마움 일지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하다. 물론 그 덕분에 프랑스 아비뇽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성 안은 활기가 넘친다. 아비뇽 교황 궁전, 길거리 공연이 펼쳐지는 성 앞 광장, 대성당, 작은 골목 등 관광객으로 가득 차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반면 일단 성문을 벗어나 강을 건너면 좀 더 여유롭고 차분해진다. 가까이서 봤던 아비뇽 성과 아름다운 다리 그리고 강에 비친 교황 궁전의 모습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아비뇽 교황 궁전
마을에 위치한 회전목마


마침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비뇽 축제가 끝난 터라 상인들도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축제인 듯 주말의 아비뇽은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아비뇽의 분위기에 동화되어 나도 모르게 들뜬 마음으로 늦은 밤까지 이곳저곳을 쏘다니곤 했다. 




니스나 아비뇽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 프랑스의 시골 마을들. 

작고 숨어 있는 마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한 두 개씩 ‘호텔’이라는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이 호텔이지 민박집 같은 비주얼이었지만 오히려 정겹기만 했다. 이런 곳에 별이 달린 호텔이나 레스토랑이 있다면 오히려 어색할 것이다. 뭐든지 최고, 최상의 것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적당하게 어울리는 것이 제일이다. 

동화 속에 잠깐 초대받은 것 같은 기분으로 때로는 팔뚝만 한 샌드위치를 먹으며, 쫀득한 젤라또를 음미하며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마음껏 돌아다녀보자. 걱정이나 근심, 쓸데없이 흔들렸던 마음들이 사라져 버리고 잊어버렸던 순수한 열정이 또렷해 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4 라벤더 향을 따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