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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행이좋아 Aug 21. 2019

손이 큰 우리 엄마

집밥을 핑계로 고백하는 나의 사랑



우리 엄마는 손이 참 크다. 진짜로 손이 크다는 게 아니라 뭘 만들던 성인 5명이 먹을 만한 양을 뚝딱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우리 가족은 나를 포함해서 4명 – 엄마, 아빠, 여동생 – 인데 다들 위가 작아 평균적으로 성인 1명이 먹는 것보다 훨씬 적게 먹는다. 물론 엄마도. 외식을 하러 가도 항상 인원수보다 적게 시켜 나눠먹는 편이다. 이탈리안 식당을 가서는 파스타 2개와 피자를 시켜 나눠먹고 고깃집에 가도 2-3인분만 시켜 배부르게 잘 먹었다고 이야기하는 위가 작아도 너무 작은 그런 부류다. 가족 모두가 먹는 것에 별 욕심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시장을 볼 때나 배달 음식을 시킬 때나 이견 없이 손발이 척척 맞는 편이다. 

‘그냥 하나씩 시켜서 나눠먹어’


딱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바로 엄마가 요리를 할 때이다. 


‘엄마,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여보, 당신 손 큰 건 알아줘야 해’ 

‘남겨 그냥. 내가 먹을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국을 끓여도 한 솥, 반찬을 해도 한 통을 넘어 두 통 가득 만들곤 하셨다. 김밥을 말아도 20줄은 넘게 말아 소풍이라도 가는 날에는 내 도시락과 담임 선생님 도시락 그리고 혹시라도 빈 손으로 올 친구의 몫까지 두 어깨가 무겁게 집을 나서곤 했다. 물론 집에 돌아와서도 김밥을 먹었고, 그다음 날도 계란물에 남은 김밥을 적셔 프라이팬에 데운 김밥을 먹었다. 그나마 정말로 다행인 점은 엄마가 요리를 굉장히 잘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우리 엄마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다. 내 생각엔 시집살이를 하며 깐깐한 할아버지의 입맛을 맞추다 단련이 된 게 아닌가 싶다. 


도와주는 거 하나 없으면서 옆에서 잔소리나 하는 딸내미가 되어버렸는데 그래도 엄마가 뭔가를 지지고 볶고 있으면 옆에 가서 간도 보고, 잔소리도 하는 건 나다. 많이 만든다고 구시렁거리면서도 만들어 놓으면 밥상 차리기 전부터 주워 먹곤 한다. 손이 큰 엄마가 척척 차려낸 밥상 앞에서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식사를 할 때가 아닌 바로 엄마의 표정을 볼 때다. 뭘 또 푸는 건지 엄마는 가장 늦게 자리에 앉으신다. 물론 어느 집이나 똑같은 레퍼토리겠지만 ‘밥 다됐다. 밥 먹어’ 하는 소리에 식탁으로 가보면 밥상 위엔 뚜껑 닫힌 반찬만 몇 개 놓여 있을 뿐이다. 엄마들은 그제야 국을 뜨고, 밥을 푸고 그날의 메인 반찬을 큰 접시에 푸짐하게 담는다. 빨리 와서 앉으시라고 해도 엄마는 항상 ‘먼저 먹어’하신다. 


‘와 – 엄마 이거 진짜 맛있다’ 

한마디에 유난히 소녀 같은 우리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면서 두 눈이 반짝거린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나는 행복하다.



[출처] pixabay.com



가족 모두가 일을 다니면서 바빠지고 나서부터는 함께 밥 먹을 일이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되었다. 커리어우먼인 우리 엄마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느라 고단했을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매번 인터넷에서 새로운 레시피 – 대부분 백종원의 레시피다 – 를 알아와 주말이면 솜씨 발휘를 하신다. 제육볶음, 닭 볶음탕, 돼지고기 김치찜 등 매콤하고 국물 자작한 요리를 만들어 맥주 한잔 하며 우리 가족은 토요일 혹은 일요일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함께 보내곤 했다. 이런저런 고민도 털어놓고, 진지한 이야기도 했다가, 회사 욕도 하고 물론 가족끼리도 하면 안 된다는 정치 얘기도 은근슬쩍 하다 보면 어느새 손 큰 엄마가 만든 제육볶음은 사라져 있다. 


해외에 나와 살면서 집 밥 생각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 비행이 없을 때면 집에서 밥을 챙겨 먹는데 귀찮고 피곤한 내가 하는 거라곤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통조림에 든 김치나 깻잎을 따거나 국물이 생각날 때는 레토로트 식품이나 컵라면에 넣을 물을 끓이는 것이다. 매 끼 챙겨 먹을 때마다, 먹고 나서 얼마 되지도 않는 설거지를 하다가도 집밥이, 엄마가 그리고 가족들이 생각난다. 특히 이유 없는 외로움에 마음이 울적해질 때면 엄마가 해주던 매콤한 음식들이 떠오르면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맥주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의 분위기가 그리워진다. 해외에 나와 적응하느라 바빴던 초반에는 치킨, 삼겹살, 곱창, 떡볶이 등 그냥 마구잡이로 한국 음식이 다 먹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표 김밥, 미역국, 계란말이, 멸치볶음 등 그냥 항상 밥상 위에서 보던 반찬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해외 자취생활 9개월 차인 지금까지 총 3번 한국엘 들어갔는데 갈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새 모이만큼 먹는 성질 나쁜 딸내미를 위해 전날 장을 보고, 반찬을 만들고, 소고기를 사다 놓으셨다. 마지막으로 집에 갔던 건 지난 7월이었다. 당시 유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매콤한 게 당기던 때였다.


‘나 다음 주에 한국 갈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잘됐다!’ ‘딸 뭐 필요한 거나 먹고 싶은 거 없어? 엄마가 미리 사다 놓을게’

‘엄마, 나 제육볶음이 너무 먹고 싶어’ 


한국에 도착한 날 저녁 7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니 엄마는 이미 장을 봐서 제육볶음을 재 놓으셨다. 


'딸, 왔으니 밥 먹어야지'


산같이 쌓인 제육볶음, 계란을 6개나 풀어 넣었다는 두툼한 계란말이, 미역줄기 볶음, 고사리나물, 멸치 볶음 등등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한가득이었다. 사실 그때 나는 눈물이 나올 뻔했다. 퉁명스럽게 '아, 왜 이렇게 많이 했어, 힘들게.. 나 별로 배 안 고프단 말이야' 했지만 아주 많이 가족들이 보고 싶었고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들이 먹고 싶었다.

 

누구나 어린 시절 후회되는 일이 하나는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하나가 아니라 아주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밥상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몇 개 있다. 어렸을 때는 밥에 뭐가 묻는 게 그렇게 싫었다. 누가 반찬을 놔주는 것도 싫었고, 밥을 더 먹으라며 먹던 밥을 퍼주는 것도 싫었다. 그게 관심이고 사랑인데 말이다. 아빠나 엄마가 ‘이것 좀 먹어봐라’ 하고 반찬을 놔주면 속된 말로 지랄을 하곤 했다. 만약 지금의 내가 시간을 여행할 수 있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면 어린 나의 밥그릇에 반찬을 쏟아붓고는 꿀밤을 놔주며 단단히 혼을 내줄 거다. ‘후회하지 말고 주는 대로 받아먹어!’ 

지금은 웃으면서 '나 어렸을 땐 성질 더러웠는데 그치?' 하면서 이야기 하지만 혼자서 그때 생각을 다시 해보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허허하신다.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입에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린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혹은 맛을 느끼기 위해 먹는 1차원적인 게 아니다. 음식에는 이야기가 있고 추억이 담겨있다. 집밥도 그런 거다. 그냥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 푸근한 공간에서 격식 차릴 필요 없이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함께 먹어야지 진정한 집밥이다. 그러니까 집밥이 그립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집밥이 너무나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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