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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 Sep 23. 2017

브랜드 히스토리 (5): 안나 수이

몽환적인 보랏빛 로맨티시즘을 불어넣은 패션계의 마법사

보라색, 장미, 검정 레이스, 나비.

이 네 키워드로 대표되는 패션 브랜드, ‘안나 수이(Anna Sui)’.

모던한 도시 뉴욕에서 탄생한 '안나수이’는 동화적인 색채가 배어있는 로맨틱한 히피 이미지를 가진 미국 브랜드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그녀만의 독보적인 색채를 지내면서도 유행을 타지 않는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는데 <뉴욕 타임즈>로부터 "오트 쿠뛰르 스타일과 최신 스타일의 절묘한 조화"라는 찬사를 받은 그녀의 환상적인 패션 세계를 살펴보자.


출처:wikepedia

1952년, 미시간 주의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안나 수이는 중국계로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예술가였다. 4살 때 이미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선언한 이 야무진 소녀는 남동생의 병정 인형에 자투리 천으로 옷과 소품을 만들어 입히곤 했다. 학창 시절에는 자신의 옷을 직접 만들거나 리폼하여 절대로 같은 옷을 두 번 입지 않았고 교내 베스트 드레서로 뽑히기도. 그녀는 잡지 스크랩을 통해 관심사를 수집하고 패션에 대한 감각을 키웠는데, 이때 만든 방대한 자료들은 ‘지니어스 파일(genius files)’로 불리며 현재까지도 그녀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작업에 사용되고 있다.


197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세계적인 패션 스쿨인 파슨스에 진학한다. 재학 시절 그녀는 뉴욕 다운타운의 분위기와 언더 그라우드 펑크에 심취했고, 오늘날 세계적인 패션 포토그래퍼로 손꼽히는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과의 우정도 이때 시작되었으며 이 둘은 현재까지도 오랜 친구이자 조력자로 남아있다.


졸업 후 몇 군데의 회사를 거치며 스포츠웨어, 수영복, 니트웨어에 이르는 다양한 디자인을 소화해내고 경험을 쌓은 그녀는 1981년, 직접 만든 6 벌의 옷을 들고 부티크 쇼에 참가한다.

그곳에서 곧바로 유명 백화점인 메이시스의 주문을 받게 된 그녀의 옷은 메이시스 백화점 광고에 등장하고 '뉴욕타임스'에서 소개되기까지 이르는데.. 자신감을 얻은 안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뉴욕 아파트에서 소녀시절부터 꿈꿔왔던 독특하고 환상적인 그녀만의 세계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꾸준히 메이시스와 블루밍데일 백화점에 자신의 디자인을 납품했지만 자신의 단독 런웨이 컬렉션에 대한 용기가 없었던 그녀. 그러던 어느 날 가을, 파리에서 장 폴 고티에의 패션쇼를 보러 가던 중 마돈나가 머무는 호텔을 방문했는데 마돈나가 협찬받은 수많은 유명 브랜드 옷 중에서 자신의 베이비 돌 드레스를 선택하여 입은 것을 보고 자신만의 런웨이 컬렉션을 시도할 수 있겠다고 확신한다.

이때부터 그녀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안나 수이의 드레스를 입은 마돈나. 출처:ingrum.org

1991년, 드디어 뉴욕에서 첫 런웨이 쇼를 발표한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락스타 지미 헨드릭스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로큰롤 스타일은 호평을 받는다. 어린시절의 추억과 노스탤지어를 반영한 그런지 무드의 히피 시크 룩으로 구성된 이 컬렉션에는 체크무늬 수트, 비닐 소재 코트, 미니 킬트 등이 반스타킹과 가죽 로퍼, 발토시 등과 매치되어 등장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패션쇼를 '록 콘서트'라 부르며 컬렉션을 감상하는 순간만큼은 사람들을 현실과 멀리 떨어진 여행으로 인도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힌다. 실제로 그녀의 런웨이 쇼 현장은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열기와 강렬한 사운드 트랙, 환상적인 옷 등으로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한다.


소호에 위치한 그녀의 보랏빛 부티크. 출처:pinterest

 같은 해 뉴욕 7번가에 사무실을 얻었고 그다음 해에는 뉴욕 소호에 부티크를 오픈한다.  

온통 보라색으로 페인트칠 된 이 부티크 내부를 장식한 빅토리아 시대 스타일의 빈티지 가구와 거울들, 인형들과 벽에 붙은 락밴드 포스터 등은 수많은 뉴욕의 브랜드 속에서도 그녀만의 확고한 색깔을 돋보이게 하는데 보탬이 되었다. 1992년,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수여하는 페리 엘리스 뉴 탤런트 상을 수상한 그녀는 타임지가 선정한 "10년 상위 5 개 패션 아이콘"중 하나에 이름을 올린다.


<안나 수이의 시그니처 스타일>

그녀의 디자인은 스펙트럼이 넓다.

브랜드 컨셉의 중심을 이루는 럭셔리 로맨티시즘과 장밋빛 가득한 에스닉, 빈티지 감성에서부터 아방가르드한 스타일, 유머러스한 펑크스타일, 1960-70년대의 시크한 히피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감과 향수가 어려있는 감성으로 매 시즌 여성들을 황홀하게 만드는 그녀는 다양한 시대적 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예술가이다. 그녀의 주요 스타일들을 나열하겠다.


1) 로큰롤(Rock’n’roll)과 그런지(Grunge)

 팝 음악과 스트리트 문화에 빠져있었고 당대 록스타들을 동경했던 안나 수이는 90년대 초 마크 제이콥스와 함께 그런지 룩의 유행을 이끄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둘은 실제로도 절친이다). 음악은 그녀의 가장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고 그녀가 처음 옷을 디자인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뮤지션들과 록 콘서트에 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옷을 입히고 싶어서였다고. 데뷔 초 모든 컬렉션의 테마는 로큰롤에서 출발했으며 당시 그녀의 옷들에는 90년대의 그런지 정신이 묻어났다.

1993년 봄 컬렉션의 그런지룩. 출처:vogue.com

1990년대 초 그런지 패션은 본래 시애틀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 장르인 그런지 록(grunge rock)에서 유래. 기타음이 강렬한 시끄러운 록 음악의 한 장르로 너바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이 대표적인 밴드들. 그런지 패션은 헌 옷 같은 옷을 캐주얼하게 연출해 자칫 노숙자 같은 인상을 풍기는데 여기에는 1980년대의 히피들과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반문화적 의미가 담겼다. 미국의 십대들을 중심으로 시작, 패션의 주류로 빠르게 흡수되면서 1990년대 초의 주요한 패션 현상이 되었다. 그런지의 포인트는 구겨지고 어울리지 않는 옷들을 헝클어지게 입는 것으로 벼룩시장에서 구한 듯한 체크무늬의 낡은 플라넬 셔츠가 대표적인 아이템. 이렇게 의도된 미스매치가 안나 수이의 손을 거쳐 나오미 캠벨, 크리스티 털링턴 등의 당대 슈퍼모델의 라인업과 화려한 메이크업, 컬러풀한 클럽용 슈즈 등이 함께 매치되면서 좀 더 글래머러스하고 세련되게 재탄생됐다. 수이와 친한 친구 사이였던 '스매싱 펌킨스'의 기타리스트 제임스 이하(James Iha)는 그녀의 컬렉션에 직접 등장하기도.


그룹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과 그의 아내 코트니 러브는 각각 남성과 여성 그런지 룩의 대표적 아이콘이었는데 특히 코트니 러브는 안나 수이의 베이비 돌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

그런지 록의 아이콘이었던 커트 코베인과 코트니 러브. 출처:pinterest

호불호가 극명히 갈렸던 그런지 패션은  90년대 초 짧은 유행을 끝으로 사라지지만 수이는 하위문화로 여겨졌던 그런지와 히피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하이패션으로 끌어올렸단 평가를 받으며 그녀가 뉴욕 패션계에 안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2) 바비인형과 베이비 돌 드레스

그녀의 컬렉션은 주로 특정한 인물(허구이든 실존이든)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1992년 봄 컬렉션에서는 바비 인형과 영국의 사교계 명사였던 다이애나 쿠퍼 부인이 테마였는데 미국의 대중문화와 영국의 귀족적 전통의 결합이라는 참신한 시도였다. 바비의 포장 케이스를 보는 듯한 핑크 비닐 소재의 배경막이 세워진 무대에 인형처럼 꾸민 모델들이 걸어 나왔다. 바비 인형은 어릴 적부터 수이의 뮤즈였는데 그녀는 유년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의 드레스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옷을 만들었고 특히 베이비 돌 드레스와 네글리제(negligee: 레이스나 프릴로 장식된 여성 잠옷)는 그녀의 컬렉션에 단골로 등장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이었다.  

폼폼 장식이 달린 베이비돌 드레스. 출처: vogue.com

 안나 수이의 옷은 로맨틱하고 여성적인 그녀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는데 중세의 로맨틱한 프릴에 시스루 슬립 드레스, 서정적인 꽃무늬, 레이스나 러플 등의 장식 등이 그녀의 옷을 수놓고 있다.


3) 장미와 보랏빛 동화

보라색은 ‘독특함’ ‘괴짜’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 혹은 클레오파트라를 상징한 왕가의 로열 컬러 등의 다양하고 상반된 수식어를 함께 가지고 있는 개성 강한 컬러다. 안나 수이는 이 유혹적인 컬러를 자신의 테마로 선택, 장미, 나비, 레이스 등의 모티브를 함께 사용하여 그녀만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소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검정색 또한 그녀가 사랑하는 컬러로 그녀의 부티크와 침실의 벽은 보라색으로, 가구들은 검정색으로 통일하면서 레이스와 시폰 소재로 장식해 그녀만의 개성 강한 공주풍의 앙상블을 완성한다.

동화를 사랑하는 그녀는 전설 속의 공주, 장미와 나비 등의 모티브를 즐겨 사용하는데 여성이라면 누구나 소녀 시절 좋아했을 이 오브제들은 그녀의 세계를 더욱 낭만적이고 환상적으로 장식한다.


4) 스토리텔링과 절충주의적 경향

'도전정신'을 자신의 패션 철학으로 꼽고 요즘도 전 세계의 벼룩시장과 거리를 돌아다니며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는 안나 수이.

그녀는 미국 디자이너지만 많은 유럽 디자이너들처럼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음악과 책, 그림, 여행 등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를 엮어 매 시즌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유럽의 분위기를 사랑했던 그녀는 런던 스타일, 특히 카나비 스트리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 번화한 거리에 대한 애정은 컬러와 패턴, 텍스처와 소재가 복잡하게 뒤섞인 스타일로 표현되었으며 이국적이며 에스닉한 프린트와 패턴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국적인 프린트와 다양한 텍스처의 조합. 출처: vogue.com

'문화의 잡식가'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안나 수이의 특징 중 하나는 그녀의 조합하고 엮어내는 능력(절충적 방식)에 있다. 아르데코 패턴과 빅토리아 풍의 벨벳과 함께 매치하고 앤티크 한 빈티지 드레스에 사랑스러운 파스텔컬러를 섞는 그녀의 디자인에는 어떠한 한 가지 색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요소들이 융합되어 있다. “어떤 것에 관심이 생기면 그것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것에 관심을 가지며 탐구해 나가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라고 말하는 그녀.

한 패션지의 창간인은 그녀의 디자인을 "1960년대 항구도시 포르토벨로(portobello: 카리브해 연안의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대표되는 교외풍의 감성과 다운타운의 로커, 비보이들의 음악과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하나의 혼성모방(pastiche)"이라고도 하였다.


“내 이름을 걸고 만드는 모든 제품에는 안나 수이의 세계가 담겨있다. 사람들이 안나 수이의 립스틱을 살 때, 그 사람에게 나의 드레스를 한 벌 사는 것과 같은 흥분감을 주고자 한다.”
독특한 검정 색상의 패키지. 출처:realstylenetwork.com


그녀는 코스메틱과 향수로도 사업을 확장했는데 이 또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어릴 적 소꿉장난을 하던 장난감을 연상시키는 소녀스럽고 사랑스러운 패키지는 많은 사람들의 수집 욕구를 불태웠다. 겉 패키지는 그녀를 상징하는 보라색과 검정, 장미와 나비 모티브로 장식되었고 안은 청록, 오렌지와 같이 과감하고 키치한 색상의 섀도우나 블러셔로 장착하면서 타 화장품 브랜드와는 다른 차별성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보헤미안의 감성이 담긴 한없이 달콤한 향의 향수들은 꾸준히 새로 런칭되며 매번 베스트셀러에 올라서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보헤미안과 인형에서 영감을 얻은 향수 용기 디자인. 출처:ikifashion.com

그녀의 화장품이나 향수 광고를 보면 마치 옛날 잡지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 법한 색 바랜 분위기와 빈티지함이, 혹은 동화책 속 일러스트를 보는 듯한 낭만이 묻어난다.

© ANNA SUI CORP


9. 해외진출

1990년대 후반 안나 수이는 일본으로 진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새로운 팬 층을 확보하였고 화장품과 향수뿐 아니라 데님과 스포츠웨어, 신발과 액세서리 라인 등을 차례로 론칭하며 토털 패션 브랜드로의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일본, 유럽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는다. 25-35세의 감각 있고 젊은 패션피플이 메인 타깃인 안나 수이는 현재 전 세계 50개 이상의 부티크를 오픈하였고 300개가 넘는 리테일러와 거래를 하고 있다. 쇼의 성공 후에도 옷의 가격이 오르지 않는 점이 눈여겨볼만하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한편으로는 소비자의 입장으로 현실적인 옷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그녀는 가장 멋진 가격에 가장 멋진 옷을 공급하는 디자이너라는 평을 받고 있다.  

2009년에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대열에도 합류해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 등과 함께 뉴욕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 중에 선두를 달리고 있다.

 뉴욕 패션의 여자 마법사. 그녀는 우리를 황홀하게 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인 패션 전문지 WWD>


또한 그녀는 아까 언급한 마돈나와 코트니 러브 외에도 나오미 캠벨, 린다 에반젤리스타, 앤디 맥도웰 등 헐리우드 스타들을 비롯, 전 세계적으로 두터운 매니아 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녀의 디자인이 그런 것처럼 그녀의 옷을 찾는 사람들도 록스타부터 슈퍼 모델, 여배우, 팝의 디바 등 그 스펙트럼이 넓고 대부분 사적으로도 친분을 유지하는 사이이다.

 

그 외의 그녀의 행보를 찾아보자면 2005년, 삼성 휴대폰과 컬래버레이션을 발표하고 2006년에는 안나 수이 바비 한정판을 출시한다.

안나 수이가 디자인한 삼성 휴대폰과 바비인형. 출처:newatlas.com, notrolicious.com

2009년, 미국의 대형할인점 타겟과도 컬래보레이션을 진행했는데 미드 가십걸의 주인공 블레어의 공주풍 요조숙녀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았다.

타겟과의 컬래보레이션. 출처:sugarrockcatwalk.blogspot.com

2010년에는 그녀의 패션 철학을 담은 20주년 기념 책을 출간하는 등 컬렉션 발표 외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다양한 문화와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자신의 방식대로 지휘하는 그녀의 록 콘서트는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듯하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안나 수이 [Anna sui] - 황홀하게 로맨틱한 보랏빛 판타지를 창조하는 패션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https://ko.wikipedia.org/wiki/%EC%95%A0%EB%82%98_%EC%88%98%EC%9D%B4

[명품 산책-안나수이] 뉴요커, 할리우드 공주를 꿈꾸다

[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안나 수이

Grunge Pioneers: It Wasn’t Just Marc Jacobs Who Looked to Seattle for Inspiration

http://blog.naver.com/romance76/40002180952

http://blog.naver.com/copybank/120016125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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