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다 쏟아부으며 나를 연소하는 깊은 몰입의 과정을 통해서만 이르게 되는 경치가 있다. 오랜 시간 깊이 침잠하며 하나의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 때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게 된다. 의식적 상태에서의 초집중 상태는 플로우(Flow)라고 한다. 플로우 상태에서는 자기 인식이 사라지고 시간 감각이 흐려질 정도로 한 작업에 완전히 몰입해 최고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상태가 된다. 깊은 몰입에 들어가면 무의식적 상태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는 인큐베이션 효과(Incubation Effect)다. 수면 중에 창의적 아이디어를 떠오르거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인큐베이션 효과를 처음 경험한 것은 중학생 때 올림피아드 수학 문제를 풀 때였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를 두고 씨름하면서 일주일을 끙끙 앓았다. 그러다 꿈속에서도 계속 문제를 풀었고, 꿈속에서 문제의 답을 마침내 찾아내면서 잠에서 깼다. 이 경험으로 나는 깊이 몰입하면 평소 나의 능력으로는 진입하지 못하는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다는 비밀을 알게 됐다. 나는 이후에도 살면서 많은 상황에서 깊은 몰입을 추구하며 때로는 플로우를 활용해서, 때로는 인큐베이션을 활용해서 새로운 문을 또 열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경치를 보면서 나의 세상과 차원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깊은 몰입의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 내가 활용하는 방법은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내가 풀어야 할 문제만 하루 종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면서도 내가 풀어야 할 문제, 이를테면 컨설팅 고객사에게서 의뢰받은 “A 브랜드의 미국 시장 진출 전략”에 대해서 뜯어보고 질문한다. 가령 ‘시장’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진출’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따위의 질문들을 자문한다. 회사로 걸어가는 길에서도 분석을 위한 모델링의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한다. 매일 새벽 늦은 시간과 주말까지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가며 이러한 몰입의 시간을 축적하다 보면 꿈에서도 문제를 해답하는 상태에 이르고, 몸의 모든 에너지가 여기에 오롯이 집중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 어느 순간 통찰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늘 빛을 뿜어내며 내게 다가왔다.
깊은 몰입을 통한 깨달음의 끝에는 늘 깊고 진한 희열감과 카타르시스가 찾아왔다. 순도 높은 희열감과 카타르시스는 깊은 몰입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이를 마주할 때는 마치 신이 세상에 숨겨놓은 삶의 수많은 기쁨 중 하나를 발견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렇게 깊은 몰입을 통한 문제 해결을 즐기면서 살아가다 보니 이제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여러 회사의 복잡한 비즈니스 문제를 해답하는 컨설팅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랜 기간 이러한 깊은 몰입의 기쁨을 느끼며 몰입주의자로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이제 몰입주의자보다 보통주의자로 살아가기로 했다. 몰입주의자로 살아가는 일은 언제든 깊은 몰입을 해야 할 순간에 120퍼센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주의자로 살아가는 일은 매일의 일상에서 90퍼센트의 힘을 꾸준히 발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의 보통주의자 선언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이제 삼십 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몸이 깊은 몰입으로 파고들어 가는 리듬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깊은 몰입을 통해 나를 한계까지 연소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 연소 후에 찾아오는 탈진의 시간도 견디고 버티며 감내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연소 후 찾아오는 탈진 상태는 점점 더 많은 회복 시간을 필요로 했고, 깊은 몰입의 불꽃 속으로 들어가서 나올 때마다 이제는 몸의 이곳저곳이 탈이 나기 시작했다. 위경련이나 과각성으로 인한 불면증 같은 것들을 달고 살게 되면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더 오랫동안 잘하기 위해서는 나의 리듬과 업무 스타일을 나의 신체 나이에 맞춰 바꿔나갈 필요가 있었다.
보통주의자 선언을 하고 보통주의자의 삶을 추구하면서 얻은 소감을 말해본다면 일상적인 꾸준함을 오랜 기간 지키는 과정에서 이를 수 있는 또 다른 경치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얼마 전부터 건강 관리를 위해 매일 아침 운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몰입주의자로 사는 일은 끊임없이 나를 주기적으로 소진하는 일이기도 했기에 결국 오랜 기간의 몰입주의자 생활로 건강에 이슈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키는 일은 꽤나 어려웠다. 어떤 날은 비가 와서, 어떤 날은 눈이 와서, 어떤 날은 전날 잠을 설쳐서, 어떤 날은 너무 바빠서 아침에 운동을 가지 않아야 할 것 같았고,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런 순간들에는 결국 ‘건강을 위해서’라는 명분보다는 스스로 약속한 ‘꾸준한 보통’을 지키기 위한 정신력이나 의지력 같은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해지고, 매일이 자기 합리화와 수많은 ‘하지 않아야 할 이유’들과의 작은 승부처가 된다. 오늘은 패배했구나, 오늘은 승리했구나 하면서 승리와 패배의 이유 같은 것들도 분석해 보고 반성도 하면서 나를 다듬어나간다. 일상을 더 정돈하고 절제하는 길로 나아가면서 승률을 높이고, 매일 꾸준하게 이어지는 ‘보통의 수준’을 만들어나가고 유지해 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각하게 되는 것은 ‘보통의 수준’을 꾸준히 매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매일 일정한 보통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로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선 매일 보통의 수준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왜 의미가 있고 중요한가에 대한 스스로의 강력한 확신과 다짐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경험상 ‘재밌을 것 같은데 한 번 해볼까’라든가 ‘남들도 하니까 해봐야겠다’라는 식의 태도로는 오랜 시간 보통의 수준을 끈기 있게 매일 만들어내지 못한다. 언제고 위기와 유혹의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이때 “재밌어 보이니 해봐야겠다” 같은 동기는 우리가 매일 하기로 한 일이 재미가 없어지는 순간 우리를 주저앉게 만들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서’ 같은 조금 더 진지한 목적도 나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역시 우리가 건강을 위해서 매일 해보자고 다짐한 일이 ‘아 건강해지는지 잘 모르겠는데’라는 느낌이 들면 그만두기가 쉽기 때문이다. 결국은 ‘재미’라든가 ‘건강’이라든가 하는 어떤 효익 또는 결과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매일의 ‘꾸준함’ 자체를 목적하는 보통주의자가 될 때, 마침내 매일의 보통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보통주의자로 살기 위해서는 또한 절제라든가 규율이라든가 하는 우리의 본성에 반하는 많은 것들이 요구된다. 매일 아침에 운동을 하기로 했다면 전날 새벽에 좋아하는 해외축구 경기를 본다든가, 게임을 한다든가 하는 유혹들을 뿌리치고 절제된 수면 습관부터 만드는 일이 필요한데, 이런 것들을 모두 생각해 본다면 매일 일정한 수준으로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의 본질은 어떻게 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도 높은 예술이나 스포츠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
깊은 고찰이나 오랜 훈련을 통해 완성도 높은 예술이 탄생하는 것처럼, 보통의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결국 강한 의지와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더 높은 수준에 오르는 일이다.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때, 우리는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조금 더 깊은 눈으로 다른 경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보통주의자로 살기로 선언한 후, 나의 일과 삶을 되돌아보면 100m 달리기 육상 선수를 하다가 마라토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때로는 수행자가 된 것 같은 경건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어찌 됐건 꾸준히 ‘보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직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로 ‘보통’에 있기를 자주 실패한다. 하지만 변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깊은 몰입의 과정에 푹 빠질 때만큼의 집중력은 내지 못하지만, 대신 매일 꾸준하게 조금씩 결과물을 쌓아 올린다. 깊게 몰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래도 어찌 됐건 앉아서 해야 할 일을 한다. 심연 깊은 곳에서 마주하는 깨달음과 통찰의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매일의 일상을 버티고 지키는 힘은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통주의자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이 경기를 더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계속 보통으로 있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다. 하지만 매일을 보통주의자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간 보통의 경치에 머무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