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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듬 Sep 25. 2024

아기집에 아기가 없어요

27살에 처음 경험해 본 고사난자 유산, 김두콩 이야기.


"아..."


방 안은 한 순간에 적막이 흘렀다. 

첫째 딸을 작년에 출산했기 때문에 초음파 영상을 보고 무언가 대단히 잘못됐다는 것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6주 차면 아기가 보여야 하는데, 아기집에 아기가 없어요."


초음파를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기지 않았다. 

굴욕 의자에서 내려와 선생님을 마주 보기 전까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아니, 꿈이길 바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를 간절히 바라듯, 나도 간절히 바라고 기다린 아이였다. 

첫째 아이와 나이 터울이 길지 않았으면 했고, 내 나이가 젊을 때 연년생으로 투닥거리며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6개월 간 꾸준히 했던 모유수유를 끝내고 둘째 아이 두콩이를 기다렸다. 

두콩이의 태명은 아이가 생기기 전에 미리 생각해 둔 것이다.

심장이 두콩두콩 잘 뛰라는 의미에서. 


아기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한 건 초음파를 보기 전이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와는 다르게 아랫배가 사르르 아파왔다. 

어떤 날은 소량의 피를 보기도 했다. 

불안감에 매일 밤 악몽을 꾸기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유산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끝으로 꿈에서 깨어났다. 

그래서 이번에도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그런 꿈에 시달렸으니까. 


"오늘 아침 드셨어요?"


선생님은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심장이 쿵쾅 거리고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열감이 느껴졌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제발 꿈에서 깨어나길, 기도했다.


"엽산이랑 비타민D만 먹었어요."


대답을 못하는 나 대신 남편이 대답해 줬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오늘 바로 소파술 진행 하시겠어요?"


그제야, 꿈이 아님을 자각했다.

꿈에선 언제나 유산 진단을 받고 깨어났는데, 이번엔 소파술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주고 계셨다.

아기집을 흡입해서 배출해 내고 자궁을 청소한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눈물이 났다.

어린아이처럼 병원에서 목놓아 울었다.


나는 평소 극장에서 슬픈 영화를 봐도 절대 울지 않는 사람이었다.

공공장소에서 눈물을 보이는 게 부끄러웠던 탓이리라. 

그런 내가 병원에서 큰 소리로 울어댔다.

차로 돌아와서도 울었다. 

한 시간 가까이 울어댄 탓에 나중에는 목이 쉬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고,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저 내 탓 같았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무치게 슬픈 일이었다. 


그 작은 것 하나 지켜내지 못한 나 자신이 한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두콩이를 임신했을 때 온 가족이 식중독에 걸리는 사태가 있었다.

상한 쌀은 독에 가깝다고 하는데, 나는 상한 쌀로 만든 김밥을 먹었다. 

시어머니는 식중독으로 입원하시고, 남편과 나는 첫째 아이가 있어 집에서 요양했다.

그때 두콩이의 안위가 걱정 돼 산부인과를 방문했는데, 아기집이 잘 크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식중독 때문인지 유산이 진행돼서 인지, 아랫배가 유독 조여왔다. 


김밥을 먹지 않았으면 두콩이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집에서 쉬고 있었다면 아이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수많은 후회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유독 일찍 존재를 알아버린 두콩이를 쉽게 놓아줄 수 없었다.

어쩌면 조금 크는 게 느린 아이일 수 있으니까.


나는 소파술을 하지 않고 병원에서 나왔다. 

의사 선생님이 돌팔이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날 다른 병원에서 두콩이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때는 아이가 자라 나있기를.

엄마에게 얼굴 보여주기 부끄러워 잠시 숨어 있던 것이기를 바라면서.


잠자리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입덧이 시작되는 바람에 하루종일 속이 울렁거렸다. 

아이는 없어도 임신 호르몬이 남아 있어 입덧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입덧 백날 해도 좋으니 아이가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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