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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듬 Sep 25. 2024

아기집에 아기가 없어요 - 2

27살에 처음 경험해 본 고사난자 유산, 김두콩 이야기.

밤새 아랫배를 쓰다듬다 아침 해가 밝아 올 때 즈음 잠이 들었다. 

얕게 잠든 탓인지 이 날은 근사한 꿈도 꾸었다. 


남편과 나는 따뜻한 어떤 섬에서 낚시 체험을 하고 있었다.

정말 특이하게도 이 섬의 어부들은 대형 고래를 잡아 풀어주면서 낚시를 했는데, 나는 의아했다.

가는 낚싯줄로 고래를 잡는 것도 이상했는데, 왜 기껏 잡은 고래를 풀어줄까.

나는 한 낚시꾼에게 물었다.


"왜 굳이 고래를 잡고 풀어주나요? 힘차게 잡은 의미가 없잖아요."


낚시꾼은 나를 보고 환히 웃어 보였다.

흐릿한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려보면, 웃음이 참 인자한 사람이었다. 


"고래를 잡고 서로 눈인사를 하고 나면 그들이 물고기들을 잔뜩 물어와요. 우리 식량을 구해주는 거죠."


나는 충격에 빠졌다. 

낚시꾼의 말을 끝으로 진짜 큼지막한 어떤 고래가 저 멀리서 입에 물고기들을 잔뜩 머금고 헤엄쳐 오고 있었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남편은 가는 낚싯줄에 정신을 집중해, 반드시 고래를 잡겠노라 말했다. 

나는 큼지막한 고래가 무서워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어느 순간 남편은 엄청난 크기의 범고래를 낚았다.

주위에 있던 모든 낚시꾼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해 줬다.

범고래를 잡는 것은 이 섬에서 엄청난 행운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범고래를 힘겹게 들어 올렸는데, 떠나보내는 것은 너무 아쉬웠기 때문에.

낚시꾼은 엄격하게 말했다. 


"떠나보내줘야 할 때는 보내줘야 해요. 그게 순리예요. 대신에 행운의 범고래가 꼭 물고기를 잔뜩 물어올 거예요."


남편은 고래를 놓아줬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태몽 같았다. 

첫째 아이 때도 비슷한 꿈을 꾼 적이 있다.

태몽은 대체로 그 대상이 아주 선명하게 기억난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꾼 태몽은 뱀이었어서 일어날 때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지금은 고래의 피부가 느껴지는 듯했다. 

꿈에서 깨어나자 아랫배가 저릿하게 아파왔다. 

나도 이렇게 아픈데 너는 얼마나 아플까? 


날이 밝아 새로운 산부인과를 찾았다.

어제는 분명 의사가 잘못 진단했을 거라고, 오늘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의 꿈이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긴 했지만, 희망을 저버리기엔 너무 일렀다. 


새로 만나 뵌 선생님은 초음파를 한참 보셨다. 

어제와 같은 텅 빈 아기집이었다. 


"유감이지만 제 소견도 같아요... 유산입니다."


이번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어젯밤에 너무 울어서였을까? 

담담했다. 


"선생님."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여전히 손 끝이 떨려왔다. 


"한 주만 더 품고 있으면 안 될까요?"


나는 범고래를 조금만 더 잡아두기로 했다.

미련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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