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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생각 07화

죽음이 남긴 시간

멀어진 목소리와 여전히 남은 울림

by 하진
ⓒ Pixabay

죽음은 끝이 아니다. 육체는 사라져도 소중한 사람이 남긴 시간은 여전히 내 곁에서 숨 쉬고 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어도, 그 흔적은 기억 속에서 다른 형태로 되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더 치열하게, 그 유령과 함께 살아간다.


관계 안에서 맺어진 시간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지나갔다고 여긴 만남에서도, 그 순간 전해진 울림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며 맥박친다. 우주적 차원에서도 시간은 직선의 흐름이 아니라 파동의 겹침이다. 반복은 똑같지 않고, 어긋난 진동은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간다.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순간은 나의 시간이 다시 시작된 기점이었다. 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지금의 시간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은 결국 타자와의 관계에서 다시 태어난다. 내가 홀로 세운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불러내며 함께 살아내는 시간.


얽힌 시간 속에서 흔적은 겹쳐지고 뒤틀리며, 서로의 삶 깊숙이 파고든다. 떠난 이의 시간은 여전히 우리에게 도달하고, 끊어진 듯 보이는 순간조차 사실은 길게 이어진 파동의 한 갈래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빌려 살고, 서로의 기억을 품어 존재한다.


그렇기에 죽음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변주되는 또 하나의 현존일지도 모른다. 나의 죽음은 결코 내게 오지 않고, 내가 만나는 것은 언제나 타자의 죽음뿐이다. 그러나 타자의 흔적은 부재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내 삶에 흔들림을 남기며, 내가 살아가는 시간을 다른 결로 짜낸다.


멀어진 목소리, 스쳐간 눈빛, 남겨진 말 한마디가 지금도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사라진 듯 다시 스며드는 그 잔향 속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갈 이유를 배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결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언젠가 또 다른 만남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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