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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생각 14화

모름은 진리의 근원이다

고정의 순간, 가능성은 사라진다

by 하진
alps-9635920_1280.jpg ⓒ Pixabay

시간은 어떤 방식으로 정의해도, 고정되는 순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6차원의 세계가 얽혀 있다 해도, 그 위로 36차원이 튀어나올 수 있다. 우리는 그 모든 구조를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넘어가려 하고, 결국 다시 뒤엎어진 자리에서 흔적을 더듬으며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가능성을 닫는 순간, 무수한 가능성을 품은 시간들은 그대로 사라진다. 말해진 모든 것은 곧 굳어지고, 굳어진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변한다. 그렇게 ‘당연’이 늘어날수록, 중요한 시간들은 조용히 흘러가 버린다. 철학은 언제나 ‘모름’을 반복하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는다.


선과 악은 서로를 지워버리는 적대가 아니며,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진정한 선함이란, 선함이라는 숲이 너무 굳건해졌을 때 불을 태워 위기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숲이 모두 불타 사라졌을 때는 기꺼이 나무를 심다가 쓰러지는 일이다.


이 모든 과정은 혼자서는 결코 완성될 수 없기에, ‘나’라는 주체는 허상이고, 우리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신의 유무를 떠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신을 고정하려는 악행에 있다. 우리가 믿는 신이라는, 존재자, 혹은 영혼, 죽음이라던가 하는 모든 것들은 각자 다른데도 말이다.


쥐떼를 말할 때 우리는 바깥의 쥐를 찾으려 하기 쉽지만, 정작 진정한 쥐는 머리에서 자란다. 만약 최고 존재자나 신의 실존을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위에 디오니소스적인 것, 즉 파괴와 창조가 동시에 흐르는 충동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존재자들에게 남는 것은 아폴론적 이성의 조형미도 아니고, 디오니소스적 감각의 성취도 아니다. 그 둘의 불가능한 균형과 조화다. 거대한 흐름 속에 묻히더라도, 각자가 품은 진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가 몇 억 광년을 반복해도 여전히 내 안에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단 한 가지,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진리는 고정될 수 없고, 선함은 불완전하며, 신은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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