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을 찾아 되돌아오는 움직임
모든 거대한 흐름은 반드시 저항을 불러온다. 체제에 맞서는 반항, 권력을 향한 균열. 상식적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조차 역사는 반작용으로 밀어붙인다. 권력의 비리를 드러내는 폭로, 정의가 승리하는 드문 서사도 결국은 이 흐름의 일부다.
어떤 움직임에는 반드시 그것을 거스르는 반대의 움직임이 따라온다. 럭셔리 트렌드가 한창이던 시절이 있었다. 명품 브랜드의 인기가 정점에 이르자, 어느새 저렴한 모방품이 시장을 채우고, 소비는 가성비의 시대로 기운다. 경제적 논리로만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엔 흐름이 숨어 있다.
디지털 시대가 무르익자, 오히려 사람들은 현실 경험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물성을 전면에 내세운 팝업스토어들이 성행한다. 그리고, 늘어나는 순간 사그라든다. 한편, 패션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끝없이 반작용을 만든다. 주가는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오르며 적정가를 형성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윤리가 태어나는 순간은 인권이 극한으로 파괴된 자리다. 누군가의 슬픔이 더 이상 외면될 수 없을 때, 희망은 극한의 공포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피어난다.
철학도 다르지 않다. 사유는 전진하는 것 같아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다. 이성에서 진리를 찾고자하는 시도는 결국 회의주의라는 벽에 부딪혔다. 이를 타파하는 유일한 가능성은 소크라테스의 고백처럼,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는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이었다.
흐름은 결코 일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 않고, 자꾸만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마치 본능적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것처럼. 반작용, 그리고 반복되는 흐름. 그 작은 균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변화.
그것조차도 나 혼자가 아니라, 타자와 얽히며 생성된다. 에로스는 타자와의 얽힘 속에서 합일을 꿈꾸고, 타나토스는 태초의 흔적과의 결합을 갈망한다. 나의 흐름이 아니라, 우리의 흐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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