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일 Oct 22. 2019

다음 일자리는 유럽으로 정했다

회사를 관두고 몇 달 동안 새로운 일자리를 얻지 못하자, 앞으로 삶을 어떤 형태로 이어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때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던 단어는 내 성향을 일부 대변한다 여겼던 집시, 보헤미안, 히피와 같은 것들이었다.
당시 유럽축구에 열광하던 나는 유럽에서의 취업이나 정착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아프리카도 원하는 선택지 중 하나였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유럽... 그때까지 나는 유럽에 가본 적이 없었다. 호주에서 1년남짓 머물렀을 뿐인데, 이후로 구대륙에 대한 동경은 마음 한 켠에 있었다.

나는 이 나라에 내 자리가 없다 느껴졌다. (재)취업전선을 넘지 못했다는 절망감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고,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로 망상에 빠지기 일쑤였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숱하게 써 내려가면서 그토록 혐오하던 복붙(ctrl+c, ctrl+v)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밝을 땐 그렇게 지내다가 해가지면 집 앞 마트에 술을 사러가며 학창 시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집으로 돌아가니 그곳에서 만나자며.

우리들의 낙은 축구 그리고 술이었다. 술에 취해 축구를 보다 보니 어느새 월드컵은 이미 끝나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그쪽엔 축구게임이 있었다. 나는 게임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간혹 한두 개의 게임에 빠지면 열중하긴 하지만 일반적인 10대~20대 사내의 수준에 닿진 못했다.

이른바 개발인 나는 군 시절을 지나며 더욱이 축구를 싫어했다. 백수로 지내며 월드컵의 모든 경기를 본 건 반전의 요인이 됐다. 전엔 90여분의 중계를 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어느새 하루 종일 앉아서 축구경기만 보고 싶을 정도가 되었다. 월드컵 이후 축구게임을 하다 보니 금방 유럽리그가 시작했다. 한 팀에 정을 붙이고 그 팀의 리그/컵/챔스 등 대부분 경기의 중계를 찾아보았다. 팀의 역사를 찾아보고 라이벌을 알게 되고 전/현직 감독과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경기는 더욱 재밌어졌다.

다른 팀 스포츠들이 그렇듯 축구는 슈퍼스타 하나의 가세로 승리를 가져갈 순 없다

취업사이트에서 지역을 유럽으로 놓고 조회를 해봤다. 서유럽이나 남유럽의 일자리는 크게 2가지였다. 여행 관련 업종(가이드 등)이나 특수한 산업(현지 언어가 필수이고 경력이나 전공이 중요한 업종). 둘 다 내게는 거리가 있어 보여 동유럽까지 확장해서 검색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보였다.

동유럽, 특히 슬로바키아는 아시아와 서유럽을 잇는 물류기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국 대기업의 제조공장도 꽤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일자리가 몇 개 올라와있었다. 지도를 보니 이곳에서라면 기차를 이용해 이탈리아의 축구경기장들은 이따금식 방문할 수 있을 듯싶었다.

* 유럽 3대 축구리그
(영국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혹은 독일 분데스리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