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말들의 세상, 꿈꾸는 말둘의 향연 - 김민휴의 산문

by THE AZURE POET



김 민 휴


나의 특기는 관찰입니다. 자연도 관찰하고 사람도 관찰합니다. 강아지풀과 산감나무와 콩새와 말벌과 노랑나비, 그리고 불개미를 관찰합니다. 구름과 바람과 꽃향기와 밤하늘의 고요를 관찰합니다. 풀과 나무와 햇빛의 삶을 관찰합니다. 소나무와 굴참나무의 줄다리기를 관찰하고 삼나무 숲과 안개 동네의 몽환적 판타지를 관찰합니다. 밤길을 걷다가 어둠속에서 만나는 도둑고양이 눈의 투시를 관찰하고, 내 혈관을 살별같이 흐르는 소름을 관찰합니다. 나는 냉장고의 식도와 위와 대장과 숨소리를 관찰합니다. 불을 모두 끄고 자리에 누워 가장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난해한 실소음을 관찰합니다. 한 밤에 드근 두근 창문을 두드리는 망상공상을 관찰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사람들의 긴장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갈등을 관찰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찰하고 사람들 간의 비밀을 관찰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추억을 관찰합니다. 사람들의 영화표를 관찰하고 신발 끈을 관찰하고 샴푸를 관찰합니다. 사람들의 열정과 냉정, 광기와 외면을 관찰합니다. 사람들의 희망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절망을 관찰합니다. 사람들의 그리움과 이별과 기다림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죽음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탄생을 관찰합니다.

물론 나는 나를 관찰합니다. 나의 내면 풍경을 관찰합니다. 내면 풍경속의 저편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불확실을 관찰합니다. 내게 잠시 들렀다가 꿈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멀어져가듯 사라지는 행복도 관찰합니다. 나의 내면에 둥지를 틀고 자리를 비워주지 않는 다정한 사람들의 얄궂음도 관찰합니다. 폭풍우 같은 마음의 소용돌이도 관찰하고 내 안에서 스스로도 기진맥진한 우울이나 고독, 불안과 소외 안절부절도 관찰합니다. 그런데 나는 무엇보다도 자연과 사람, 그리도 내 안에 있는 희망을 관찰하려고 애씁니다. 나는 더 멀리 있는 희망을 관찰하기 위해 더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더 작은 희망을 관찰하기 위해 더 좋은 현미경을 갖고 싶어 합니다.

나의 취미는 잡담입니다.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자연과 이야기하는 것을 환장하게 좋아합니다. 잡담이라는 말이 그렇듯이 주재가 없는 이야기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화입니다. 바람이 불어가듯이 구름이 흘러가듯이 개울가의 물풀들이 흔들거리듯이 가을하늘 아래 신작로 가의 코스모스 꽃잎이 하늘거리듯이 아무대로 흐르거나 그 자리에 있더라도 가위눌리지 않고 흔들리며 오고가는 잡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입니다. 이런 대화에 주제가 있다면 이 건 마치 옥에 티와 같은 것입니다. 잡담은 옥입니다. 백약이 무효일 때 직방으로 듣는 정신병의 특효약이기도 합니다.

나는 동물들과 곤충들과 물고기들과 풀과 들꽃과 나무와 잡담을 합니다. 개나리꽃과 떡갈나무 새잎들과 잉크색 나팔꽃과 잡답합니다. 늦가을에 밭에서 고개를 떨구고 할랑대는 수수들과 한겨울 두터운 눈밭의 뽀드득 뽀드득 발자국 소리들과 잡답합니다. 나는 그 꽃의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그 풀의 재산을 묻지 않습니다. 그 나무의 키를 묻지 않습니다. 나는 시린 이같은 바람이 내 언어의 앙상한 갈비뼈 그늘을 지나갈 때 출신이 어디인지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습니다. 꽃향기에게 값이 얼마인지 묻지 않습니다. 특히, 시간에게 그의 과거와 미래 이 따위 것들을 묻는 것이야 말로 큰 결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색과 속삭입니다. 노랑과 빨강과 초록과 검정과 분홍과 그 외의 모든 색들과 속삭입니다. 나는 삼십팔 년 전 내 큰 조카의 고사리손같은 연초록색과 속삭입니다. 스물여섯 살 때 애인의 레인코트 같은 샛노란 색과 초등학교 입학하기 일 년 전 우리 동네 동구 밖을 빠져나가던 꽃상여같은 흰색과 속삭입니다.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알 수 없었던 정말로 끝내 알 수 없는 한 여자의 마음속 같은 보라색과 속삭입니다. 나는 노란색에게 그의 애인이 누구인지 묻지 않습니다. 빨강색에게 그의 적이 누구인지 묻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속삭입니다. 적어둘 것도 없고 녹음해둘 것도 없는 그냥 속삭임입니다.

나는 노래와 재잘거립니다. 흰나비의 노래와 풀색 방아깨비의 노래와 참새 떼의 노래와 겨울잠을 곤히 자는 개구리의 노래와 재잘거립니다. 겨울숲 속을 서성이는 외딴 바람의 노래와 한 밤중에 온 세상을 향해 꺼질듯 꺼질듯 부르는 수줍은 함박눈의 세레나데와 흥얼거립니다. 산길을 가다가 어디선가 가물가물 들려오는 얼음장 밑의 희미한 계곡 물소리와 함께 흥얼댑니다. 나는 비의 노래와 폭풍의 노래와 봄바다의 노래와 흙담 벼랑에 책받침만큼 남아 햇볕을 쪼이고 있는 이른 봄날 늦은 오후의 나른한 노래와 이야기합니다.

나은 겁이 많습니다. 겁이 많아서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의 잔디밭에 여기저기 노란 얼굴을 내미는 민들레꽃 위에 누군가가 제초제를 뿌리는 것을 보면 나는 겁에 질립니다. 나는 이제 화도 나지 않고 싫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는, 늘 적당하고 늘 무사하고 늘 사이좋고 늘 예절바르고 늘 무관심한 나와 사람들의 관계가 겁납니다. 나는 지난 일 년 동안 한 번도 누가 내게 충고를 하지 않는 나의 삶에 겁이 납니다. 나는 내가 지난 사 년 동안 한 번도 누군가의 주장에 치열하게 대항해 보지 못한 나의 일상이 겁이 납니다.

겁이 많다보니 나의 자아는 가끔 벅찬 세계에 대해 질겁하거나 경기를 합니다. 이 것이 나에게는 생존을 위한 방어이고 구원의 기도입니다. 나는 또 잔뜩 겁에 질려 놀란 초식동물처럼 날뛰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급하고 공격적으로 보일 때가 종종 있겠습니다. 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나를 만나는 당신도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나를 만나서 말하거나 행동할 때에는 항상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베에토벤의 고향곡 운명의 첫마디처럼 내 섬세한 감성을 쿵쾅쿵쾅 때리거나 또는 계속 욕을 해대는 레게음악 같은 소리로 내 귀에 대고 왈왈거리면 안 됩니다. 사랑이 가득한 아리아의 선율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내게 말해야합니다. 그러니까 600백년 된 조선시대의 사인검을 소장한 사람이 그 검을 관리하듯이 소중히 해야 합니다. 들풀과 들꽃과 들새와 들바람 같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