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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ZURE POET Aug 21. 2024

그 거울 앞에 서면

시간을 저어가는 삶을 위한 기도

그 거울 앞에 서면

                                     김 민 휴

 

 

완도군 군외면 불목리 성소 681-4번지

원불교소남훈련원•완도청소년수련원 한 켠에는 무시무시한 돌거울이 있다

표면이 진짜 거울처럼 평평하고 매끄럽다

 

이 웅장한 석경(石鏡) 앞에 서면

얼굴이 안 보여서; 눈도 안 보이고, 코도 안 보이고, 입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보여서, 아무것도 비춰주지 않아서 겁이난다

 

세상 거울의 잔망함이 아닌 이 석경의 숭고는

슬슬 내빼는 내 마음을 압도하고

이상하게도 분명 나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나는 표본실의 청개구리 마냥 거울 속에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을 훤히 비추고 구석구석 비추고, 점점 깊이 비추어서, 나는 쫄아서 나무 몽뎅이가 되어 붙박히고 만다

 

어디, 네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자 들여다보면서 서로 묻지 말고 대답하지 말자 아무 말도 하지 말자... 돌거울은 자애로우시지만

 

혼내키는 부모님 회초리 앞에서

무얼 잘못했는지도 미처 모르면서 우선 빌뿐인 가여운 아이처럼

나는 그저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손을 싹싹 빌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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