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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Aug 10. 2021

다 같이 그리워서, 수박화채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에 과일이 맛있게 익을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다른 야채와 과일들도 볕에 다 녹아버렸다. 보통 만원대로 사 먹을 수 있었던 커다란 수박 한 통이 올해는 3만 원, 4만 원까지 올랐다. 수박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딜레마를 주는 과일이다. 먹고 싶을 때 금방 사서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작은 컵에 담긴 수박은 위생 문제도 걱정될 뿐만 아니라 두 번 정도 먹고 탈이 난 후에는 손대지 않는다. 커다란 수박 한 통을 혼자 먹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서 독립을 한 이후로 수박은 가족끼리 모였을 때나 먹는 과일이었다. 여름이면 본가에는 직접 기른 수박이 냉장고에 커다랗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했다.


 예전부터 손이 지저분해지고 물이 많이 떨어지는 과일이 싫었다. 주면 잘 먹기야 하지만 더운 여름 제대로 닦지 않으면 끈적끈적한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수박을 먹고 남은 껍질 부분에 다른 사람의 잇자국이 남아있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수박 껍질을 처리하기는 또 얼마나 곤란했던지. 수박보다 달콤한 과일이 산재해있는 세상에서 수박은 늘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수박이 가끔 생각날 때는 늘 우유와 함께였다. 경남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매년 여름 시골로 향했다. 읍내에서도 20분을 들어가야 하는 작은 촌동네였다. 바로 앞에는 꽤 큰 하천이 흘렀고 온 동네가 고추, 콩, 옥수수나 토란 같은 작물 밭과 쌀농사를 짓는 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사촌들도 종종 방문하곤 했다. 아주 예전에는 다이얼을 돌리는 TV도 있었던, 뒤주와 자물쇠가 달린 장롱이 있는 아주 오래된 집. 여름방학 숙제로 무엇인가를 해야 했던 내게 수박은 좋은 이야깃거리였다.


 수박 반통을 통 크게 자른다. 아이들 서넛이 둘러앉아서 숟가락으로 속살을 파낸다. 중간중간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수박도 적지 않다. 뭐든지 욕심내고 언제나 배고픈 아이들에게 수박은 퍼도 퍼도 간식이 계속 나오는 화수분 같았다. 파낸 속살을 냉장고에 차갑게 식혀두고 흰 껍질이 보일락 말락 하는 수박 껍질 그릇에 흰 우유와 밀키스, 과일 칵테일 통조림을 넣는다. 통조림의 국물을 다 넣으면 달기만 한 맛이 나니 과일과 젤리 건더기만 건져서 넣어준다. 그렇게 수박 그릇의 반 정도를 채운 후, 나머지는 차갑게 식혀둔 수박이 차지한다. 냉동실에서 얼음도 꺼내어 담아준다. 금방 녹아버리니 별 소용은 없지만.

 

 어머니나 큰어머니, 혹은 할머니, 때로는 고모들의 손에서 가끔은 중학생쯤 되었던 손윗형제들의 손에서 수박화채가 탄생하곤 했다. 다 만들고 나면 손 주변은 끈적끈적 거려 얼른 씻고 오라는 타박을 들어야 했고, 방바닥을 닦는 것도 아이들의 몫이었다. 한 명씩 수박화채를 끙끙거리면서 들고 여름 방학용 증거사진을 남기고 나면 밥그릇이나 국그릇이 하나씩 배달되었다. 본격적으로 맛볼 시간인 것이다.


 수박과 우유의 조합을 생각해 낸 사람은 누굴까. 맹맹하고 덜 큰 한 수박의 맛이 우유의 고소함과 함께하면 왜 그렇게 맛있는 걸까. 밀키스(집집마다 사이다를 넣는 곳도 있지만)는 왜 그렇게 잘 어울리는 걸까. 수박화채 속에 숨어있는 노란 파인애플 조각이나 빨간 체리 조각을 찾아내 먹는 것에 쾌감을 느끼면서도 아이들은 수박화채의 국물까지 싹싹 비우곤 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달다 달다 하면서도 땀이 뻘뻘 흐르는 여름에는 당분과 수분 보충을 해 주는 수박화채가 생각났다.  어른들의 손마다 조금씩 재료가 다르고, 그때그때 넣고 싶은 것들도 달랐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간식이었다.


 수박화채가 소중한 줄도 모르고 잊고 산지가 몇 년이나 지났다. 그러던 사이에,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는 일도 더 드물어졌다. 1년 고생하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는 여전히 지구 상에 남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다 같이'라는 단어를 써 본 것이 언제였는지 이제 큰 도시들에선 저녁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조차 보기 힘들어졌다. 어쩌면, 그래서 수박이 비싸도 큰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너덧명이, 많게는 대여섯 명이 모여 앉아 수박을 먹으며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모일 수 있는 그날이 오면, 아마 내년 여름쯤이 되면 수박화채를 만들어야겠다. 커다란 수박을 비싸더라도 사서, 이젠 아이들이 아니라 네 사람만 둘러앉아도 자리가 꽉 차는 어른이 된 또래들과 함께.  


pixabay. TheDigitalArtist





사진: unsplash. おにぎ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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