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피아노의 곁을 맴돌고 있는 것
과연 나의 이야기를 하면 피아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피아노를 너무 사랑해서 너무 미워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피아노는 내 곁을 계속 맴돌았다. 아니 사실 내가 계속 피아노의 곁을 맴돈 것이다. 해외에서 살면서도 피아노를 찾았고, 그게 이어져 나는 어린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트레이닝부터 시작해 거의 반년째 되어 가는 시점이지만 다음 주를 마지막으로 티칭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유는 여러 가지가 되겠지만 가장 큰 건 학생으로의 삶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일정에 지정이 가기 시작해서이고. 다른 이유로는 투잡이라는 게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챙기지 못하게 되어서 과부하가 오는 신호를 느꼈기 때문이다. 우선순위를 생각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는 건 다행인 일이다. 이 말은 즉슨 어떤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도 나를 챙기는 선택을 먼저 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피아노 티칭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다른 것보다 자아실현과 가장 맞닿아 있다. 그걸로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시간을 더 투자하면서 수업 준비를 하고 티칭 공부를 했다. 그저 피아노와 관련된 일이라면 그게 티칭이 아니었어도 했었을 것이다. 오히려 티칭에 대한 매력은 나중에 깨달았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돈을 떠나서 내 재능을 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내가 판 재능으로는 그림과 영어, 피아노 이렇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좋아하던 건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이긴 했고 그중 가장 자신 있는 일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집 근처에서 다녔던 피아노, 피아노 전공을 고민하며 받았던 수업들, 성인이 되어 찾아간 피아노 학원까지. 내가 가장 많이 배운 것이라고는 피아노였는데, 그만큼 다양한 선생님들도 거쳐왔으니까 말이다.
티칭을 시작할 때 티칭 선배는 그랬다. 나를 가르친 사람들을 떠올리고 뭐가 도움이 많이 되었는지, 어떤 선생님 캐릭터를 내가 가져갈 것인지 고민해 보라고. 나는 일하는 동안 너무 무르지도 또 너무 기가 센 선생님이 되지 않으려고 했다. 할 때는 하되 굳이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무섭게 할 필요도 없고, 또 내가 살고 있는 호주는 그런 분위기도 아니다.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또 나와 가장 관련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 피아노를 계속 치게끔 만드는 것. 피아노를 배우는 걸로 동기부여를 받고 또 어느 정도는 욕심이 생기게 하는 것. 그리고 성인반도 아니고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실력으로 힘들어하기 전에 재미부터 느끼게 하는 거였다.
어떤 친구들은 처음부터 피아노를 잘 친다. 그건 분명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고 나는 그걸 아이들에게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근무시간 외에 일을 하더라도 기꺼이 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가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주고 싶었다. 되게 희한한 일이다. 다른 일에서는 이런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데 그 아이들을 보면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평소 내가 생각하는 프로세스가 다르게 흘러갔다. 그래서 생계에 주가 되는 일에서는 추가 근무 시간을 딱딱 받아내더라도,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에서는 나는 관대해지곤 했다. 내가 연주하는 영상을 찍어서 연습할 때 보여주겠다는 학부모님도 매주 일이 끝나면 따로 시간을 냈다. 내가 그러고 싶었던 마음도 있지만 그것 이외에도 어떤 능력을 맥시멈으로 늘리려면 어떤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면 그렇게 내가 성장하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이런 생각과 다르게 아이들을 위해서 개인 시간도 내어주는 건 내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 근데 그렇기 때문에 했다.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기뻤기 때문에.
피아노는 나에게 언제까지 이런 깨달음들을 주려는지 모르겠다. 어디까지 깊게 나를 이끌 건지, 나를 배우게 할 건지. 도대체 왜 다른 것들과 다르게 나에게 이리 큰 의미가 되어준 건지. 내 오래된 꿈 중 하나는 나중에 집을 사서 거실 한가운데 그랜드 피아노를 두는 거다.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머물러 줄 피아노에게 고맙고 또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