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글로 남기기로 했다. 매일 특별할 수는 없다. 작은 일에 생각과 감정을 더 하는 소소한 작업이다. 날 것 같은 내용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용기를 낸다. 쓰기로 했으니 쓴다. 하고자 마음먹은 것을 하려면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마음속에 엄격한 상사 한 명쯤 두어야 한다. 허무할 만큼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하니까.
20여 년 가까이 운동했었다. 사회 초년생일 때 직장에서 만난 동료의 다이어트 친구로 시작했지만 정작 본인은 한두 달 만에 그만두고 나는 50 넘어까지 꾸준히 했다. 먹고살기 힘들다며 쓸 돈이 없어도 운동은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운동비는 나온다. 중간에 몇 달씩 쉰 적도 있지만 꽤 오랜 시간을 건강에 투자한 셈이다. 어느 날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오십견이 찾아왔다. 상상 초월의 아픔에 운동이고 나발이고 일상이 멈추다시피 했다. 치료에 전념해 보기도 했지만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아 포기했다. 4.5년을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본 듯하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통증으로 인해 짧은 몇 년 사이에 늙어 버린 것 같다. 제 나이보다 덜 들어 보인다는 소리도 들었던 나지만 이제는 제 나이만 봐주어도 감사하다. 그렇게 운동이 멀어졌다.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걷기부터 시작한다.
가정주부이자 직장인이다.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기에 출근을 반으로 나눈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30분은 걷고 나머지는 지하철을 탄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하천을 따라 걷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를 매일 느끼며 걷는다. 계절별로 피는 꽃을 보면 나도 꽃처럼 예쁘게 느껴진다. 매일 보는 하늘은 하루도 같은 색깔 인적이 없다. 아침 햇살이 물 위로 부서져 내리면 그물 무늬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걷는다. 같은 길이고 같은 나무지만 처음 보는 듯 새롭다. 그래서 좋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아침을 달리는 아이들을 만나는 기쁨이다. 비슷한 시간, 비슷한 장소에서 매일 아침을 뛰는 어느 초등학교의 반 아이들과 선생님을 만난다. 주말 빼고 벌써 1년 가까이 만나다 보니 얼굴이 익숙한 녀석들도 꽤 된다. 안경을 끼고 나이가 있어 보이는 선생님은 게으름 피우는 아이들을 재촉하거나 격려하며 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좋은지 “선생님 더 빨리요” 농담을 던지며 까르르 웃는다. "그렇게 뛰어서는 운동 안 된다. 배에 힘줘라. 00이 어디만큼 갔나 봐라." "오늘은 아주 에너지가 좋구나!" 스치듯 지나가는 사이지만 그들의 아침 일상이 내게는 다 보인다. 아이들은 매일 습관처럼 달린다.
배울 점이 저절로 생긴다. 운동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내게는 같다. 매일을 달리는 아이들처럼 나도 쓰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어떤 날은 내 글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싫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하루가 다 가기도 한다. 오늘도 생각만 하다 보낸 하루지만 이 순간 쓰고 있다. 다독 다상량이라고 했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이 특별할 게 있겠는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다 보면 편안히 써질 날이 올 것이다. 내일도 나는 걸어서 출근할 것이고, 달리는 아이들을 만나겠지. 내일은 오늘보다 한 줄만 더 길게 써야겠다.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