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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복댕이 Feb 01. 2024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이야기

나의 직업은 전업주부입니다.

강화도 교산리 저수지가 얼어 엘사가 나와 노래를 부르며 뛰어갈 것 같다.



아이와 사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풍경을 느끼며 살기 위해 강화도로 들어온 지 1년 하고 7개월이 되었다.

원래 살던 김포도 도시는 아니지만 여기처럼 아주 시골도 아니었기에 여기에서의 삶은 더 느긋하고

여유롭다.

그런 이유로 더 전업주부의 자리가 크고 책임감도 커지는 듯하다.

남편의 출. 퇴근 시간이 30분 정도 더 걸리고 딸아이 학원도 왕복 2시간이 걸리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아늑하고 편안한 함. 엄마가 아내가 해 주는 따뜻한 밥. 차 한잔의 여유를 더 찾기에 그 자리가 더 크다는

걸 이곳에서 느끼며 산다.




원래 전업주부가 꿈은 아니었고 좋은 엄마. 좋은 아내도 꿈은 아니었던 거 같다.

아이들의 상담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의 능력을 발휘하며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결혼 생각이 없이 친구들의 결혼 생활과 육아를 보며 도움을 주며 지내기만 했다.

워킹맘으로 지쳐하던 친구들의 아이들과 함께 그림도 그리고 체험도 하며 함께 지내며 

내가 엄마가 된다면 이런 것들을 아내가 된다면 하고 픈것들을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선택하고 잠시 일을 쉬는 동안 첫 아이가 생겼다.

갑작스럽게 생긴 아이여서 처음에는 당황도 했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아이에게 집중할 나의 

모습을 그리며 지내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아이를 조산하고 7개월에 응급 수술로 태어난 첫아이


그 아이를 몇 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에서 10일 만에 하늘의 별로 먼저 떠나보냈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와 이별을 하고 다시 일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재판도 해야 했었고 나  스스로 몸도 마음도 추스르기 힘든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 순간 나의 

마음을 다스리고 모두 내려놓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 전업주부를 선택했던 것 같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듯한 시간

전업주부를 하며 나를 돌아보고 남편을 돌아보며 서로 의지하는 시간이었던 날이었다.

무언가에 집중을 해야 했기에 문화센토도 다니고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고 아침을 준비하고

집을 더 단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다.


모든 걸 다 내 손으로 하고 싶다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그래서 작은 빵 하나라도 더 열심히 만들고 음식도 더 열심히 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지내다 보니 일이 다시 하고 싶어 치료센터에 이력서를 넣어 출근을 해 보려던 때

지금의 딸아이가 생겼다.


처음엔 임신인 줄도 모르고 쇼핑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는데 너무 힘들고 지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를 해 보니 임신 두줄이 보이는 

순간 눈물이 흐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재판이 끝난 1년... 세상의 단비처럼 

지금까지 고생했다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선물로

찾아와 준 아이


이 아이를 위해 다시 전업주부가 되어 더 좋은 

엄마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신도시에서 김포 끝동네 시골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아이와 함께 느린 삶을 살며 자연에서

육아도 하고 자연 교육을 하며 언스쿨링을 해야지

하는 마음에 벅차 있었다.


임신이 어려운 상황에 와준 보물 같은 아이가 수술로 이른 둥이로 태어났지만 너무 건강해서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안으며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이를 안고 모유를 먹이며 이아이의 쌕쌕 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교감하고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기분은

난생처음 느끼는 기분이기에 뭐라 표현할 수 없었다.


이작은 생명체를 내가 정말 나았을까?

내가 정말 잘해 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까칠함의 절정이라고 할 정도로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살았기에 정말 잘해 낼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고 조금 무섭기도 했던 거 같다.


그런 내가 이 아이의 미래를 만드는 일에 꽃길을 만들어 주고 싶고 일거수일투족 새로운 것들을 함께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모든 신경과 생각은 아이로 꽉 차 이런 계획 저런 계획들로 들뜨고 매료되어 있어

풀타임 양육자를 택했다. 그럼과 동시에 정말 일과 멀어지고 관심 밖의 일이 되고 육아라는 새로운 일에

주인공이 되고 주체가 되어 모든 걸 아이와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을 1막, 육아를 시작하는 삶을 2막이라고 한다면 나의 2막은 열정과 즐거움과 행복이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재우고 먹이고 놀아주고 모든 게 반복이지만 그 속에서 아이와 눈 맞춤. 아이의 웃음소리. 아이의 잠자는 숨소리를 들으며 조금은 힘들지만 내 시간을 들이는 것에 큰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내 손으로 내가 주체가 되어 이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엄청난 우주의 변화만큼이나 큰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반복되는 노동 시간 속에서 아이는 자라고 있음을 느끼고 증명을 해 주고 있었다.

다리의 힘이 좋아 49일 만에 뒤집기를 해 친정엄마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이 터지고 다시 두집지 못하자

울음이 터진 아이를 기특하다 안아주며 달래주고 끙끙 거리며 고개도 세우고 조금 배밀이를 하나 싶더니

무언가를 잡고 일어나 걸어 다니게 되고 9개월이 되자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너무 행복하고 즐겁고 더 많은 걸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아이가 커가며 육아도 교육도 스스로 해결하며 아이의 유년기를 꽉 채워줘야 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시골로 들어와 살며 아이에게 느리게 사는 방법. 여유를 즐기는 방법.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눈으로 익히는 방법 등을 가르치며 나 자신도 그렇게 변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게에 무언가를 해주기 위해 하나라도 더 공부하고 더 찾아보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니 모든 게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시골로 들어와 살며 전업주부의 역할도 더 늘어났다.

아이의 교육을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치며 언스쿨링을 선언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기질이 빠르기도 했고 가지고 있는 아이의 능력이 컸음을 알게 되어 생각의 확장을

더 넓혀 주고자 언스쿨링을 선택했다.


잠시 마을 교육을 하던 3살에 교육기관을 다니기는 했지만 5살 때 겪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겪어 그런 

결심을 더 굳히게 된 것도 있었다.


발도르프 교육을 시작하며 자연을 가까이하는 시간은 꼭 가졌다.

흙놀이. 나뭇잎과 열매를 주워 놀이도 하고 색 분류도 하며 소꿉놀이도 하고 산책을 하며 몸으로 표현하며 

놀기도 하고 계절의 변화를 몸을 눈으로 느끼며 느리게 사는 방법도 익히기도 했다.


전업주부로 아이에게만 집중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에게도 아이에게 집중하는 만큼 집중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햅쌀로 남편이 좋아하는 막걸리도 담그고 땡감을 이쁘게 깎아 주렁주렁 엮어 곶감도

말리고 퇴근한 남편과 저녁 식사 후 예쁜 차를 준비해 차를 마시며 하루 일과를 이야기를 한다.


육아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남편이 잘 들어주는 편이라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나의 속 이야기도 

하며 하루 피곤을 풀기도 한다.


물론 마냥 좋을 수만은 없기에 투정 아닌 투정을 남편에게 부리기도 한다.

그럼 남편은 최선을 다하는 나의 모습에 칭찬도 지지도 해 주며 그래도 나의 시간을 즐기기를 바란다며

응원을 해 준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편으로 인해 더 넓어졌다면 아이로 인해 더 많은 다각도의 렌즈를 착용한 것 

같다. 

많은 경험을 해보고 많은 상담을 하며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를 통해 배운 세상을 더 큰 것 같다.

그걸 받아들이며 더 성숙해지고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걸 느낀다.

아이가 자라며 나와 다른 존재로 자라는 모습 속에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경험하게 됨으로써 낯선 자극이나 사람들 간의 관계에 조심스럽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다른 사람들의 성향이나 행동에 더 깊게 이해를 하게 된다. 그걸 깨달으며 나 스스로도 즐거움을 찾는 듯하다.


이곳 강화에서 살면서 아이가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몸으로 느끼며 아이의 표현이 더 풍부해 짐을 느낀다.



아이가 이곳에서 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표현을 경이롭게 해 줄 때 나 또한 알고 있는 것이었음에도

다시 일깨워주고 새로움을 선물해 주어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전업주부로서 이런 경이로움이나 즐거움을 밖으로 표현하는 일은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직까지도 전업 주부라 하면 철없는 사람. 특별히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을 하며 무시 아닌 무시를 

하기 때문인듯하다.

나 또한 자발적 전업주부라 이야기를 하면 그 능력이 아깝게 왜 집에만 있냐며 능력이 좋으시거나 남편이

돈을 잘 벌어다 주어서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신다며 그 주부의 삶의 일부분을

들여다보며 배우고 싶고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난 주부는 매일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떤 누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기적을 만들어 내 

가정의 평화를 건강을 지키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거나 다른 나쁜 생각을 하면 내 가정이 흔들리고 내 가족이 아프기도 하고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주부는 살림을 살리는 가족을 살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모든 게 전업주부의 손길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고 있으니 어떤 누구도 전업 주부의 직업을 우습게 

알거나 업신여기지 않고 스스로 낮춰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고 하려 하지 말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서로 배려하는 공간으로

만들며 전업주부의 일도 웃으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 덕후, 아이 덕후가 되고 엄마 덕후가 되어 서로 

배려하고 공간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그런 모습으로 살면 전업주부의 일도 즐거울 수 있다.     


돌봄 노동의 전업주부 경제적 보상은 없고 경력도 인정 안 해 주지만 내가 주부로서의 역할을 하며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를 만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섬세해지고 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이 작은 소반상 차림에도 주부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았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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