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최고의 긍정적 사나이를 떠나보내며

영화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의 배우 페트리를 추모하며

by 어나미

“이 영화는 인생의 찬가이며, 적은 예산 속에서도 독창적 아이디어와 무한한 용기로 만들어진 ‘작은 거인’ 같은 영화입니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영화평 중 일부)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원래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라는 핀란드 영화가 개봉됐던 2021년에 썼던 글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던 페트리 포이코넨과 감독 테무 니키와 전화 인터뷰까지 하며 열심히 썼던 글인데, 오늘 핀란드 신문에서 페트리의 부고 기사를 읽었다.

전화로만 통화했었지만 마치 잘 아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난 것처럼 느껴져서 다시 예전에 썼던 글을 찾아봤다. 그의 초긍정의 에너지를 다시 한번 느꼈고, 특히 지금 나에게 바로 그의 그런 에너지가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는 더 좋은 곳에서 평안하기를.
Rest in peace.. Petri.


나에게 좋은 영화란 다른 사람의 삶에 나도 모르는 사이 깊이 들어가 볼 수 있는 영화다. 이런 영화를 만나는 날에는 극장 불이 꺼진 후에도 마음의 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라는 특이한 제목의 핀란드 영화도 나에게는 그런 영화였다.


주인공 야꼬는 다발성경화증(MS)으로 시력을 잃고 하반신까지 마비된 40대 중반 남성이다.

(*다발성 경화증: 환자의 면역체계가 건강한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으로 한 번 발병하면 회복되지 않는 희귀 난치성 질환)


어느 날 그는 전화로만 데이트하던 여자친구로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집에서만 지내던 그가 그 얘기를 듣고 그녀를 만나러 집을 나서면서 영화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 영화는 시각 장애인인 야꼬의 관점으로 촬영됐다. 그래서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내내 우리는 희뿌옇게 처리된 화면을 쳐다봐야 한다. 이 불친절해 보일 수 있는 방식은, 감독이 관객을 주인공과 같은 높이에 세우기 위해 선택한 대담한 장치였다.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연히 장애를 입은 사람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라는 이 영화의 감독 테무 니키(Teemu Nikki)의 발언에서도 그 의도를 알아챌 수 있다.


뿌연 화면과 주인공의 얼굴 클로즈업만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신기하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액션은 없지만, 액션 영화처럼 흐름이 빠르고 몰입도 또한 최고다. 이 영화에는 휴먼 드라마, 스릴러, 서바이벌, 로맨스 모두 다 들어있다. 202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관객 인기상인 오리존티상을 충분히 받을 만하다.


긴박감 속에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주인공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특히 돋보였다. 야꼬 역의 페트리 포이꼬라이넨(Petri Poikolainen)씨는 시각 장애와 하반신 마비가 겹친 중복 장애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https://youtu.be/sauB4Od0pxk?si=JkTtif-E-sChzcDD


트릭 없이 연기한 배우, 페트리 포이꼬라이넨

장애인이 등장한 영화로 ‘나의 왼발’이란 유명한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은 대배우 다니엘 데이루이스는 신체에서 왼발만 자유롭게 움직이고 다른 부분은 완전히 마비된 장애인 연기를 훌륭히 해냈다. 그런데 그의 훌륭한 연기에는 트릭이 필요했다. 배우가 왼발을 잘 움직이지 못하자 거울을 사용해서 오른발을 왼발처럼 보이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페트리 씨는 이런 아무런 트릭 없이도 중복 장애인의 역할을 완벽하게 펼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그가 장애를 ‘연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극 중 주인공과 똑같이 다발성경화증으로 시각 장애와 하반신 마비가 온 중복 장애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엄연한 극영화다. 페트리 씨도 지금은 연기를 쉬고 있지만 원래 전문 배우 출신이다. 10년 전 병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그는 연극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했었다.


그렇다면 10년 후 갑자기 그는 어떻게 그와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을 연기하는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일까? 영화감독과의 27년 전의 인연이 단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감독 테무 니키(Teemu Nikki)와 페트리는 군대 동기였다. 군에서 연극에 함께 참여하며 영화감독과 배우가 되고 싶다는 서로의 꿈을 이야기했었다. 제대 후 연락은 끊어졌지만, 각자의 꿈을 실현해 나갔다.


테무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돼지 농장에서 돼지를 돌보는 일을 그만두고 (그는 당시 돼지가 너무 싫었다고 한다) VHS비디오를 보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처럼 독학으로 영화 공부를 했다. 영화사 밑바닥에서 무급으로 일하며 한 계단씩 밟아 나간 그는 끝내 영화감독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페트리도 핀란드 최고의 연기학과를 졸업하고 촉망받는 연극배우가 됐다. 그러던 중, 2008년 가을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게 된다. 그날 그는 ‘눈물이 났었다’는 것 외에 기억나는 게 없을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고 한다. 불치의 병 진단을 받고 한동안은 발병 사실을 동료들에게 숨기며 무대를 끝까지 지키려 했었다. 그러나 급격히 악화되는 병세로 2011년 12월 13일 (페트리 씨는 이 날짜를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고 한다) 마지막 공연을 뒤로하고 연극 무대를 완전히 떠났다.


그 후 1년 동안이 가장 어려운 기간이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병세가 얼마나 더 나빠질지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2013년에는 휠체어를 타게 되었고 2016년에는 시력까지 완전히 잃었다. 아내와도 이혼하게 된다. 인생이 끝났다고 절망도 했지만, 절망의 끝에서 그는 두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절대로 인생에 투덜거리거나 분노하지 않겠다’

‘나도 다른 사람처럼 귀중한 사람이다.’


지금도 그의 좌우명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다 귀중하다” 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인생을 허비하게 만들 뿐이기에 그는 대신 '무한 긍정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2018년에는 휠체어를 타고 하프 마라톤에 도전해서 완주에 성공하기도 했다.


24년 만의 재회, 그리고 영화의 시작

그즈음 페트리와 테무는 다시 만나게 된다.

테무도 페트리와 비슷한 자가면역 질환으로 고생하는 누나가 있다. 누나와 페트리가 환우로 같은 병원에서 만나 친교를 나누며 영화감독 동생 얘기가 나오게 되었고, 페트리는 그가 자신이 알았던 테무임을 알게 됐다.


페트리가 먼저 테무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 연극 같이 했던 미치광이 사보(핀란드 중부에 있는 한 지방) 촌뜨기 기억나?


그렇게 이 둘은 24년 만에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테무는 물론 친구에게 벌어진 일을 듣고 놀랐다. 그럼에도 삶을 초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감동한 나머지 놀라운 제의 하나를 하게 된다.

”혹시 아직도 배우 하고 싶어?”

페트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치도록…”


눈물과 웃음으로 만들어진 영화

예전에 연극배우로 활동했지만 원래 페트리의 꿈은 영화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테무는 그 꿈을 이루어 주고 싶었다. 그는 페트리에게 몸이 아프다고 촬영을 살살하지는 않을 것이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네가 싼 배우라서 영화에 출연시키는 거라며 오랜 친구 사이에서만 오갈 수 있는 유머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편 영화로 기획됐지만,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며 이 영화가 생각보다 길고 의미 깊은 영화가 될 것을 감독은 직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작비를 지원할 제작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일단 페트리 대학 친구들의 우정 출연으로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돼, 제작자의 큰 입김 없이 감독이 원하는 독창적인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페트리는 대사를 귀로 들으며 외웠다. 촬영 중 다리에 마치 끓는 물을 붓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찾아올 때도 많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고 배역에 몰두하며 혼신의 힘을 발휘하는 그를 보며 촬영장은 눈물바다가 되곤 했다고 한다. 어떤 날은 촬영 감독이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모니터를 확인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그래도 웃는 날이 더 많았다. 페트리의 무한 긍정의 태도와 유머 감각은 울음을 웃음으로 바꿔주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그의 손과 발, 그리고 눈이 되어 준 19세 아들 라쎄도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핀어 제목:Sokea mies, joka ei halunnut nähdä Titanicia)이다.


https://youtu.be/WU-e1UM2Yco?si=N1hKv7Z3kzmyfa3q


마침내 이루어진 인생의 꿈, 그리고 마지막 선물들

페트리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이 영화에 쏟아부었고 영화 주인공의 꿈은 늦었지만 이루어졌다. 또 그에게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들이 연달아 벌어졌다. 그가 스스로 ‘8월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표현한 핀란드 국내 개봉 프리미어에 턱시도까지 입고 참석할 수 있었다. 그날이 더 의미 깊었던 것은 아들 라쎄의 말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곧바로 그 해 9월에 열린 베니스 영화제까지 참석해서 관객이 투표한 인기상까지 받았다. 영화제 수상으로 전 세계 보급의 길이 트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될 수 있었다.


그는 그 특유의 유머를 구사하며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전화하지 않는 한 컴백은 없다”고 즐겁게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지금은 자신의 고향인 사보 지방으로 돌아가 살고 있다. 21세에 큰 꿈을 품고 떠났던 고향에 꿈을 다 이루고 46세가 되어 돌아왔다. 이제 고향을 그의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그릴 수 있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어릴 적 살던 집과 가까운 곳에 있다. 그 집에는 여전히 노모가 살고 계시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그의 모든 것들을 차곡차곡 앨범에 모아두고 있다. 이번 영화로 기사가 너무 많이 나서 새로운 앨범을 사셨다고 한다.


그가 이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두 번이나 힘주어 그는 말했다.


“YOU CAN IF YOU WANT!

YOU CAN IF YOU WANT!”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다시 조금의 힘이라도 얻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와의 마지막 통화

영화를 찍은 지는 벌써 2년이 흘렀다. 페트리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손도 마비되어 좋아하던 기타도 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의 입에서는 뜻밖에도 핀란드 오래된 전통 가요인 'Elämä on ihanaa(인생은 멋진 거야)'의 한 구절이 흘러나온다.


“Elämä on ihanaa kun sen oikein oivaltaa~”

(제대로 이해만 한다면, 인생이란 얼마나 멋진지요~)


P.S. 페트리와 영화 속 야꼬는 유머 감각과 초긍정적인 삶의 자세까지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페트리는 영화 속 야꼬와 다르게 영화 타이타닉의 열성 팬이다. 그는 개봉 첫날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했고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타이타닉을 보지 않은 사람은 감독 테무였다. 그가 타이타닉을 보지 않은 이유는 극 중 야코와 같은 이유다. (그 이유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보면서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테무는 타이타닉 관람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은 닫아두고 있지 않다. 그 조건은 한 가지다.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사나이’인 소중한 친구 페트리의 요청이라면 한번 고려해 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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