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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Jan 17. 2024

자녀에게 의지해야 하는 투병 생활의 두려움


아들을 어제 퇴원시켰다. 병원을 나서며 집에 가는 길에 우판 사판이라는 일산의 고깃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는 분이 몸 보신시켜 준다며 데리고 간 식당이었다.   

   

소고기인데도 질기지 않으며 맛도 일품, 금액도 일품이다. 미국산 갈빗살로 우리의 입맛을 배반하지 않았다. 갈 때마다 만족스럽게 먹고 온다.     


어제는 1.2 kg를 양념 반 생고기 반을 주문했다공깃밥과 된장찌개를 곁들여 아들딸과 나는 푸짐하게 먹었다. 가끔 오는 곳이긴 한데 거리가 있어 자주는 못 온다. 몸이 약한 아들은 차 타고 식사하러 가는 걸 힘들어한다. 아들 덕에 집 근처 식당이나 배달 음식이 최고가 되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누나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병원에서 고열과 기침이 심했던 아들이지만누나의 곁에서는 모든 아픔을 잊는 듯했다.      


누나는 아니라고 말하지만서로가 좋아하고 의지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고맙다. 투병 생활 10년 동안 아이들이 가장 걱정되었지만, 둘이 협조하며 성장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큰 위안이자 기쁨이었다.      


특히 아들 혼자 있으면 먹는 거부터 모든 게 걱정되지만, 딸과 있으면 안심이 된다. 공부도 누나와 하면 싫어하지 않는다. 누나의 어떤 말에도 토를 달지 않는다. 말이 없는 아들은 누나와 같이 있으면 말도 잘한다. 함께 공부하고 대화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그들의 미래를 밝게 그려본다.     

 

고기를 배불리 먹은 밤이지만티처스를 보면서 떡볶이와 케이크를 또 먹었다배가 부르다면서도 웃으면서 끝까지 즐겁게 먹는 가족. 다 먹고 나서는 고스톱을 1시간 이상 했다. 귀찮긴 하지만 고스톱은 우리에게 많은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병원에 들어온 밤은 12시가 넘었다. 오랜만에 혼자 있는 병실은 나를 편안하게 반겼다아들을 키워 본 엄마들은 알 것이다. 아들은 딸보다 몇 배는 힘들다. 함께 입원해 있는 동안 귀한 상전을 보시는 기분이었다  

   

다들 순한 아들이라고 하지만, 말 없는 아들은 고열로 매일 링거를 맞으면서 아기가 되어버렸다내 몸도 힘들고 고통스럽지만엄마는 모든 시중을 들어 주어야 하는 위치이다. 같이 링거를 맞아도 엄마는 식사부터 모든 걸 챙겨주어야만 했다. 

    



나도 2주 후에 퇴원할 예정이다. 걱정이 많다. 몸이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팔도 계속 아프고다리 통증도 완전치 않다. ‘집에 가면 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밥 챙겨 먹기도 쉽지 않을 거 같다.     


몇 주 전에 딸에게 다짐받았다. 

엄마 퇴원하면 예전처럼 식사 못 해줄 거 같은데 어떻게 하지?”라며 두 아이에게 물었다. 아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 딸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만 쳐다보았다. 민망했다.


이쁘나엄마 오면 지금처럼 이쁜 딸이 밥하고 멋진 아들이 설거지하고 엄마는 수저 하나만 더 놔 주 면 안될까?”라고 묻자, 웃기만 하다가     


“엄마! 내가 하는 건 밀키트 음식인데 괜찮겠어? 엄마처럼 모든 걸 만들지 못해. 맛도 그렇고?”라며 까다로운 엄마 입맛을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걱정하지 마엄마 아무 말 안 하고 해주는 대로 먹을게.”라고 말하자 ‘하하하’ 큰소리로 둘 다 웃기만 했다.     




3주 전 딸은 나와 함께 이 교정을 위한 병원에 가기로 했다. 전날 밤, 1분도 잠을 자지 못한 나는 약속을 어겼다. 속상해하던 딸은 “그럼 나 혼자 갈게이렇게 계속 미루면 언제 갈지 모르니깐.”이라고 말하고선 혼자 다녀왔다. 오면서 딸은 나에게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이쁘나! 이게 뭐야.”라고 묻자,

“교정 가격이야.”라며 말해주는데 600이 넘었다.


저번에 알아본 곳에서 300만 원 정도로 말하지 않았어?

“430만 원짜리는 해야 한 데그리고 나머지는 그때도 추가로 들어간다고 했어.”라며 나를 설득했다.     


“엄마 생각해 볼게. 어디까지 해주어야 할까? 아빠에게 좀 내라고 해야지. 그리고 딸도 좀 보태지?”라고 웃으면서 말하자,     


엄마내 용돈 줄이지 말고 엄마 밥해줄게. 아무 말 없이 엄마가 먹는다고 했으니깐 맛없다고 불평하지만 않으면.”이라며 나에게 협상을 제의했다. 나는 크게 웃었다. 해주지 않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다음 주, 딸과 병원에 가서 현금으로 모든 비용을 내고 오자, 딸은 만족에 만족하면서 좋아했다. 딸이 어느 정도 내 식사를 챙겨줄지는 모르겠지만이런 약속을 해야만 하는 내가 씁쓸했다.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벌써 어린 딸에게 밥을 해달라고 해야 하나처음 계획은 어제 아들 퇴원할 때 나도 같이 퇴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다. 실비가 아직 남아 있어서 이번 달 말일이나 2월 2일에 퇴원할 예정이다.      


마음이 아프다. 퇴원할 때까지 최대한 몸이 회복되어서 나갔으면 좋겠는데. 생리가 멈추어야 할 텐데. 빈번한 하혈만 멈추면 점점 나아질 텐데.      


소원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살아있는 한은 내 역할을 다하는 거였는데마음이 아려온다. 어린 자식들에게 해준 것도 없이 부탁하다니.      




나는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내가 죽었을 때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또한 그들을 위한 재테크도 잘하려고 노력한다. 마음대로 잘 되진 않지만, 아이들이 나 없을 때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자식들의 사랑과 지지 속에서나는 다시 힘을 얻는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가족은 서로를 의지하며 삶의 희망을 준다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그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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