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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Jan 24. 2024

10년의 세월 : 암과의 공존에 끝은 있을까?


무거운 몸을 침대에 맡기며, 나는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았다. 오랜 병원 생활유방암과 끝없는 싸움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나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까?     


세상은 변함없이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지만나의 내면은 어렵고 힘든 긴 시간을 보내면서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고통 속에서 늙어버린 내 모습처럼 병과의 싸움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에 국한되지 않았다.      




10년이란 세월을 직장도 아닌 병원에서 암 환자로 병원 근무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나의 영혼에 관한 근본적인 탐구를 하게 되었다     


왜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남들과 다른 암과 싸워야 하는가이제는 끝내도 되지 않을까아직도 내가 지은 죄를 다 용서받지 못한 걸까내가 겪는 이 모든 고통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한 번씩 죽음을 맛보는 세상을 보고 올 때마다 이런 질문들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투병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일상의 단순한 기쁨, 어린 자녀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꾸준히 해야만 만족감을 얻는 운동, 심지어는 내 자신의 정체성마저도 때때로 잃어버린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듯이, 암은 나에게 소중한 가정을 지켜주었다. 내 자녀들에게는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나에게는 나의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사람임을 알려주었다. 

    

나의 투병은 나에게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균형 찾는 법을 가르쳐주었다어떤 날은 통증이 나를 압도 하고또 어떤 날은 나의 의지가 그것을 이겨냈다.     




생리할 때가 되었나?’ 이틀 동안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오전 치료 후, 링거를 맞았다.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링거였는데. 퇴원하기 전 마지막일까? 아니면 한 번 더?     


링거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이런 증상은 어렸을 때, 길에서 몇 번 쓰러지면서 생겼다. 결혼하고 남편과 시댁의 스트레스로 다시 왔지만 잘 지나갔다. 유방암 첫 수술 후 어지러움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나만의 지옥을 또 찾아왔다.    

  



첫 유방암 수술 후, 저혈압으로 동네병원에 입원했을 때이다. 한 여의사가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면서, 

“너무 힘드시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해보시겠어요?”

“네. 뭔데요?”라며 나는 절실하게 물었다.     


음식을 자극적으로 드시면 효과가 있어요맵고 짜고 달게하지만아시다시피 그건 또 다른 부작용이 올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면서 모든 판단은 나에게 맡겼다.     

 

갈등이 생겼다. 어린 자녀들 입맛을 위해 싱겁게 먹으려고 노력할 때였다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려고 외식도 거의 하지 않았다. 힘들어도 가능한 내가 직접 만들어 주었다. 나를 위해 강한 음식을 택해야 할까?      


나만 먹기 시작했다. 최대한 반찬을 많이 먹으면서 짜고 맵게 먹었다. 아이들이 없을 땐, 밖의 음식을 주로 먹었다. 몇 년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혈압이 정상으로 오면서 공황 장애와 같은 증상이나 기절하는 건 사라졌다.     


잊고 살았다 몇 년간. 2년 전 2차 코로나 백신 이후 다시 시작되었다횟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오늘은 링거를 맞고 10분도 지나지 않았다정신을 잃었다낮잠을 자는 것과는 다르다. 마취에서 깨어날 때처럼 아무것도 기억에 없다.     


눈을 뜨면 딴 세상에 온 것 같다지금이 몇 시인지어디인지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다아무것도 기억이 없다.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이때는 꿈도 꾸지 않는다. 여러 번 일어나려고 애쓴 기억은 난다. 눈을 떠야 해일어나야 해정신 차려.’라며 누군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눈을 뜨지 못하고 다시 기절한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눈을 뜨는 순간 공포감이 밀려온다공포감이 사라지고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감사함을 느낀다. ‘아! 내가 사는 세상이구나!’라며 나는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진다.      


핸드폰을 본다. 나의 모든 흔적이 있는. 그러면서 ‘내가 여전히 이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냥 계속 자도 되는데.’라는 양가감정이 오가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침대에 의지하며, 나의 현실을 되돌아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돌아왔구나감사해야겠지나는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는 엄마니까멋지고 이쁜 아들딸의 영원한 지지자인 내가 힘을 내야지.’라며 아이들 얼굴을 떠올린다.     




 어제 읽은 “황금종이 2”가 생각난다. 1권과 2권을 읽으면서 돈과 죽음에 대한 여러 관점을 제공했다부모로서인간으로서 나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심도 깊이 생각했다. 나의 아이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의 삶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부모는 절대로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도 안 된다. 2권의 처음 이야기가 엄마의 악착같은 노력으로 장만한 빌딩을 아들에게만 유산으로 주었다. 남에게 독하다는 소리 들으면서 모은 재산을 딸들에게도 주지 않고 아들에게 전부 주어다.      


그 아들은 친구와 강원랜드에 가서 200억짜리 건물을 한 달 만에 날렸다. 그 충격에 엄마가 쓰러졌다. 하지만, 어떤 딸도 엄마를 보러오지 않았다. 끝내 엄마는 돌아가시고, 그 아들도 자살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결국 돈 때문에 자신도 자식도 다 잃었다.     


또 하나 마음을 아리게 한 이야기는 갓 대학 졸업한 여성이 75세 할아버지를 돈 때문에 모신다. 돈 500만 원에 팔려 갔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니다. 15억이라고 해야 했을까?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그 집을 차지할 마음에 간 거니깐.     


더 기가 막힌 건 그 자리를 권유한 사람이 그녀의 엄마이다가난에 찌든 엄마는 친구가 파출부로 있는 집에 딸을 보내 노인을 모시게 한 것이다.      


그 여성은 일하기 전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부추겼다. 거기서 열심히 일해서 할아버지 마지막 재산을 받아 나오라고할아버지를 남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늙은 남체에게 잘해서 팔자 바꾸라고     


일하는 몇 달간, 여성은 할아버지와 목욕하면서 할아버지의 욕구까지 채워주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모든 유산을 자기 강아지를 잘 돌봐주는 조건으로 이 여성에게 주었다.     


여성은 개만도 못한 자신의 인생에 화가 나서 강아지를 버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돈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아이들에겐 아무런 풍파 없이 평범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겪은 모든 고통과 시련의 의미이자, 나의 삶을 통해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교훈이다.      


그러려면 내가 살아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병실에 올라온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이 자리 잡고 사는 모습을 보고 죽고 싶다지금은 내 삶의 끝자락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아도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그래야 자식들도 나를 아끼고 사랑해 줄 것이다.     


기절하는 횟수가 많아지면 외출하지 않으면 된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추억을 쌓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영원한 지지자가 있다는 걸 알려주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나의 의무이자 지금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다음 주 주말엔 퇴원할 예정이다. 거의 4~5개월 동안 병원에 있었다. 몸이 좋아지기를 희망하며 입원했지만, 현실은 더 약해진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도 삶과 죽음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균형을 찾았다.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았다내가 겪은 이 모든 고통과 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나는 그 강함을 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다나의 삶은 내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한 사랑의 증거이며나는 그것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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