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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Jan 27. 2024

내 고통이 행복을 얻는 대가라면 감사히 받으리!


며칠간 주체할 수 없이 힘들었던 시간이 내게 많은 걸 깨닫게 했다. 병상에서의 시간은 육체적으로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 안에서도 아들딸과 함께한 따뜻한 순간들이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점점 약해지는 몸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링거주사의 차가운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침대에만 있었다. 잠깐씩 정신을 잃었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본 간호사는 혈압과 체온을 잰다는 핑계로 내 옆에서 나를 살폈다.      


눈물이 나왔다. 기운이 너무 없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쪽팔렸다. ‘남 앞에서 이런 일로 눈물이 나오다니.’ 간호사는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괜찮아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져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점점 나약해진 몸, 힘겹게 맞서는 정신.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시련이고, 고통이었다. 또한 동시에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톡했다. “내일 고기 먹으러 가자고.” 딸은 그래도 컸다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이유를 물었다.     


“엄마가 지금 죽을 거 같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귀도 아프고, 책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터지려고 해. TV도 못 보겠어. 생리가 정신없이 나와. 이렇게 한 달에 2번씩 하면 엄마 죽을 거야. 미쳤나 봐. 병원 식사로는 안 돼.”라며 어린 딸에게 나를 봐달라는 듯이 외쳤다.     


엄마 급한 대로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어.”


엄마 혼자서? 난 혼자 안 먹어. 무슨 맛으로 먹니? 너희가 있을 때는 너희 먹는 모습 보면서 신나서 먹지. 나도 딸 나이 때는 회사에서 건강 검진한다고 피 뽑거나, 생리하면 혼자 KFC 가서 먹었지만, 지금은 혼자 안 먹지.”     


내가 엄마 닳았구나! 난 가끔 혼자서 한 마리 시켜 먹고 남은 건 엄마 아들 학교에서 오면 주거든.”이라고 말하며 힘든 나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내일 소고기 먹으러 가자. 엄마가 나갈 때 전화할게. 너희도 그때 출발해.”     


“알았어. 근데 거기까지 운전해서 올 수 있어?”라며 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말 이젠 생각이 깊은 어른이 되었구나!’라는 마음에 감사했다. 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힘들면 내일 다시 말해줄게. 그리 알고 있어.”라며 전화를 끊었다.     


아까와는 다른 눈물이 났다. 딸과의 대화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고기를 먹으러 가자는 나의 제안에 그녀의 걱정 어린 대답이 내게는 큰 의미를 주었다. 이것이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과 이해의 표현이구나! 이젠 나만 주는 사랑에서 벗어나 내가 사랑을 받는 입장이 되었구나!’        

  



아침까지 맞은 링거를 뽑고, 자주 가는 “우판 사판”이라는 소갈비 집에 가서 아들딸과 1.2kg의 고기를 먹고 집으로 갔다.  딸은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케이크와 푸딩을 사다 놓았다. 행복했다. 깊은 곳에서 진정한 사랑을 받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나만 사랑을 준다고 생각했던 딸이 나를 사랑해 주고 있었다. 내리사랑이 아니라 올림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오랜만에 맥주가 마시고 싶었다. 혈압도 낮았고, 며칠 고생하고 나니 시원한 맥주가 땡겼다. 맥주를 찾자, 아들이 시원한 거 있다며 가지고 와서 잔에 따라 주었다. 아들딸에게 여왕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며칠 고생한 괴로움은 아들딸의 사랑스러운 웃음으로 사라져갔다. 외롭고 고통의 시간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고기와 달달한 케이크를 먹고 나니 라면이 생각났다. “진라면 매운맛이 먹고 싶다 하자, 딸이 얼마 전에 혹시나 해서 사다 두었단다. 엄마가 찾을까 봐? 나를 위해 준비해 둔 아들딸에게 감사했다. 부모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자식들에게 받고 있었다.      


딸이 끓인 라면은 맛이 기깔나다. 내가 끓이는 것과 2%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그 2%가 환상적이다. 단순한 진라면이 아니라, 딸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 담긴 요리였다.      


맛나게 먹고 배를 두들기며 만족해하는 동안 자동으로 아들이 식탁을 정리하며 설거지까지 싹 해주었다. ‘! 이게 정말 내가 말한 사랑스러운 행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셋이 모였으니 고스톱을 하자고 했다. 배가 부르니 소화를 시키기엔 고스톱이 딱 맞다. 1~2시간 하고 나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웃으면서 모두 소화 시킬 수 있다. “고스톱” 치는 내내 우리의 얼굴은 환하게 웃는다.      


오늘도 내가 돈을 땄다. 평상시 몇천 원은 여기저기 굴러다녀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고스톱에서 1,000원 이상 잃게 되면, 왜 그렇게 큰 금액으로 변화되는지 서로가 긴장하며 성격이 나타난다. 이때 우리는 잘못된 성격을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고쳐준다.     


고스톱은 우리에게 단순한 게임을 넘어 서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또한 각자가 가진 피로와 스트레스를 웃음과 배려로 모든 아픔을 잊게 만들어 준다. 이 순간들이 내게 큰 행복을 주고, 삶의 소중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병원에 돌아와서 자고 싶은데, 좀전의 즐거움이 지금까지 나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힘든 몸이 금방 잠이 들것 같지 않아 노트북을 켜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남들이 겪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나는 또한 남들이 쉽게 갖지 못하는 행복을 얻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고통과 행복, 실패와 성공이 공존하는 균형은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끝없이 사랑해 주어 행복하다. 내 삶의 순간들이 아픔과 기쁨이 모두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의 고통이 행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감사히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며 깊은 잠을 청해보고자 한다.

    

202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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