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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Feb 02. 2024

퇴원의 기쁨과 두려움 : 무의식의 죄를 용서하며…

     

퇴원할 날이 모레로 다가왔다. 침대에 누워 퇴원 전 마지막 링거를 바라보며 기쁨과 걱정이 뒤섞여 마음을 흔들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건 분명 기쁜 일이지만, 많은 암 환자들이 경험하듯이 병원과 다른 가정에서의 삶은 새로운 도전이다.      


나에게도 가장 큰 고민은 식사 문제이다. 병원 밖 집에서의 생활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오래 있고 싶다. 2월 한 달만이라도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퇴원 전에 딸이 나의 식사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감동적인 말이었다. 얼마나 신경 써줄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노력할 거라는 건 안다. 아들도 누나가 하는 걸 보면 말없이 따라 나를 최대한 편하게 해줄 거다.     


내 마음은 무겁고 슬프다. '이 나이에 내가 돌봐야 하는 자녀들에게 돌봄을 받아야 한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나를 돌아보니 지난 과거의 잘못들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많은 잘못을 하면서 살았다는 걸 요즘 들어 깨닫게 되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무의식적으로 살면서 무수한 잘못을 저질렀다. 뒤돌아보니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다. 나 자신도 용서 못 할 잘못을 서슴없이 지은 죄가 의외로 컸다. ‘남의 잘못은 그리 잘 보이더니만 내 잘못은 이리도 못 보다니?’ 글을 쓰면서 많은 걸 배우고 깨닫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노력하며 살았던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무엇을 얻고자 뒤도 안 돌아보고 욕심에 눈이 멀어 살았을까?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보잘것없는 나를 내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고, 잘못된 행동을 하며 살았을까? 이래서 암이라는 병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는 것일까?’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심란한 마음으로 치료받는 도중, 치료사의 말이 나에게 와닿았다. “모든 건 기대 때문에 실망이 생겨나며, 기대가 없으면 남을 미워할 일도 시기할 일도 없다.”라는 것이다.     


우선 나에 대한 기대부터 버리라고 했다. 내가 뭐 그리 잘났다고. 나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욕심이 많아지고,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죄를 짓게 된단다.     


어릴 때부터 남보다 못하다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아무것도 없는 내가 누구의 도움 없이 이 정도면 훌륭하다’라는 자만에 빠져 ‘잘난 척하고 살지는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하도 날뛰어서 나를 누르기 위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벌일까? 암이라는 병을 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끊임없이 죄짓는 나를 용서 못 해 이렇게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게 하신 건가?’     


모르겠다. 마음이 아프고 나 자신이 싫어진다. 과거의 나쁜 기억들이 올라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몸이 약해지면서 나쁜 기억들이 더 자주 찾아온다. 그러던 중 드라마에서 한 주인공이 “총을 쏘면 날아간 총알은 돌아오지 않는다.”라며 과거는 후회해도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맞다. ‘떠난 버스에 손 흔들어도 돌아와 나를 태워주지 않듯이, 과거의 안 좋은 사건은 모두 잊고 현재를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나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위로 속에서도 공허함과 외로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나쁜 사람처럼, 위선자처럼 느껴진다. 나의 아픔과 투쟁을 핑계로 남을 괴롭혔던 그 보이지 않는 죄에 대해, 여전히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크다.     




이제는 조금씩 깨닫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으로서, 나의 실수와 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든 인간은 실수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우고 성장한다. 내 잘못이 실수일까? 죄일까? 실수와 죄는 완전히 의미가 다르다. 이것도 딜레마이다.     


내 죄가 실수이든 잘못이든 이제 나는 과거를 놓아주어야 한다.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현재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에게 감사함을 더 많이 표현할 것이다. 그들의 사랑과 돌봄 속에서, 나는 더 나은 내일을 꿈꿀 것이다. 과거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미래의 빛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나에 대한 사랑과 가치를 잃지 않으며, 삶의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 갈 것이다. 퇴원을 앞둔 병원의 창가에서, 나는 새로운 삶을 향한 다짐을 해본다.     


과거의 죄책감과 싸우며, 동시에 나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 여정은 쉽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라면, 분명히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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